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6/22)


    말씀의 초대
    남을 심판하기는 쉽다. 본인이 모르는 곳에서는 무슨 말이든 한다. 하지만 판단은 되돌아온다. 심판한 그대로 판단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비판에 앞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남의 눈의 티는 보지만 자기 눈의 들보를 못 보는 것이 인간이다(복음).
    복음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건물을 지을 때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바닥이나 천장에 대는 지지대를 ‘들보’라고 합니다. 금방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티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남의 눈의 티끌’은 쉽게 찾아냅니다. 그러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사람인지요?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타인을 심판하기는 쉽습니다. 본인이 없는 곳에서 허물을 말하기는 정말 쉬운 일입니다. 순간적으로 방심하면 누구나 빠지는 실수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자신의 눈에 들보를 채우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할까?’ ‘어찌하여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 무의식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본인도 모르게 ‘비판의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꾸려면 ‘긍정의 시각’을 훈련해야 합니다. ‘아, 그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쁨을 갖고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만나는 이들에게 ‘당신의 힘’을 주셨습니다. 병자들은 병이 나았고, 악한 기운에 붙잡힌 이들은 자유를 선물받았습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남을 판단하는 자체가 ‘삶의 기쁨’을 감소시키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성령의불로나를비추소서(심령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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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2주간 월요일(6/22)


      말씀의 초대
      남을 심판하기는 쉽다. 본인이 모르는 곳에서는 무슨 말이든 한다. 하지만 판단은 되돌아온다. 심판한 그대로 판단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비판에 앞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남의 눈의 티는 보지만 자기 눈의 들보를 못 보는 것이 인간이다(복음).
      복음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건물을 지을 때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바닥이나 천장에 대는 지지대를 ‘들보’라고 합니다. 금방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티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남의 눈의 티끌’은 쉽게 찾아냅니다. 그러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사람인지요?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타인을 심판하기는 쉽습니다. 본인이 없는 곳에서 허물을 말하기는 정말 쉬운 일입니다. 순간적으로 방심하면 누구나 빠지는 실수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자신의 눈에 들보를 채우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할까?’ ‘어찌하여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 무의식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본인도 모르게 ‘비판의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꾸려면 ‘긍정의 시각’을 훈련해야 합니다. ‘아, 그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쁨을 갖고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만나는 이들에게 ‘당신의 힘’을 주셨습니다. 병자들은 병이 나았고, 악한 기운에 붙잡힌 이들은 자유를 선물받았습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남을 판단하는 자체가 ‘삶의 기쁨’을 감소시키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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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12주간 월요일(6/22)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신 그는 받아들인다. 거절할 수 있었지만 즉시 받아들인다. 철저한 순명이다. 주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축복을 약속하신다. 순명과 축복은 동전의 양면이다(제1독서). 남을 심판하기는 쉽다. 본인이 모르는 곳에서는 무슨 말이든 한다. 하지만 판단은 되돌아온다. 심판한 그대로 판단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비판에 앞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남의 눈의 티는 보지만 자기 눈의 들보를 못 보는 것이 인간이다(복음).
      제1독서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2,1-9 그 무렵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아브람은 아내 사라이와 조카 롯과, 자기가 모은 재물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아브람은 그 땅을 가로질러 스켐의 성소 곧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는 그곳을 떠나 베텔 동쪽의 산악 지방으로 가서, 서쪽으로는 베텔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 차츰차츰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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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오늘 하루도 함께 해 주심에 감사를 드리면서 환한 미소로 인사를 드립니다.

    같은 반찬이지만 질리지 않고 한결같은 맛이 바로 이맛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먹을수록 더 맛있는 사랑의 맛!

    하루하루 기쁨의 결과인 당당함과 행복한 모습이 삶에 스며들 때

    의로운 모습으로 순명하면서

    관대한 마음으로 상대를 포용하게 되겠지요.

    아브람에게 아버지께서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브람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시자 아브람은 즉각 순명합니다.

    정말 그럴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독서에서처럼 제가 그런 순명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늘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때 다른 것들이 스며들 여유조차 없겠지요.

    순명하는 의로운 신앙인으로 말씀속에서 날개짓을 하는 저라면

    남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 잣대로 남을 쉽게 단정지으며 깊은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되돌아 봅니다.

    간교한 판단이 죄로 나아가게 함을 모르고 매번 심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가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제가 보는 틀의 눈으로 상대도 저를 볼 것이고

    제가 기준하는 그 기준으로 상대도 저를 판단되는 것인데~~

    그렇죠?

    전 사실 영세를 받고 기쁨의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엔 비교당하는 것도~ 지는 것도~ 누가 제 얘기를 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긴장과 피곤함에 밀려 두곱으로 지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세를 받고 말씀의 힘으로 새로났습니다.

    칠삯동이가 사람구실을 하게 된 것이지요.

    영세를 받음으로 아버지의 딸로 새로나는 것이지만

    변화가 따르지 않으면 전 새로남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답니다.

    교만과 욕심과 아집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늘 반복적인 실수를 하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아버지께 인사드릴 때

    그 사랑의 힘은 배가되어 제게 돌아왔습니다.

    은총의 소나기로~~~

    그래서 말씀에 저를 비추어 매무새를 다듬을 때 저도 모르는 사랑이 저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미움도~ 질투도~ 시기도~ 불인정도~ 판단도~ 다 부질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제 힘으로는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지요.

    저역시 아버지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죄많은 딸이기에 제 힘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인데

    아버지께서 힘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래서 두곱 세곱으로 움직입니다.

    그또한 제 힘으로는 할수없는 삶임을 알고 있습니다.

    아브람처럼 순명하는 자세로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남을 심판하지도~ 남의 얘기로 시간때우지도 않고

    말씀속에서 의로운 저로 늘 살아있음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순명과 사랑의 힘으로 아닌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 저가 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저가 지금껏 남을 심판하며

    그의 가슴에 상처를 낸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시는 말씀같아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입으로 고백하는 얕은 신앙의 샘에서 흙물이 스며나옴을 모른 채

    물만 채우려 하는 그런 어리석은 신앙인으로

    그 샘의 주인되어 서 있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어리석은 저로 인해 그 물을 마셔야 하는 이들에게 더 큰 병을 만들어 주는 썩은 물을 먹게 하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저가 어리석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말씀에서 제눈에 들보를 보게 하소서.

    제 판단이 바로 저의 심판대가 되어 옴을 깨닫게 하시어

    아버지를 위해 사랑의 소리만을 내게 하소서.

    그리하여 상대를 평가하고 제 잣대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없애주시어

    말씀속에 머물면서 의로운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주님!

    며칠동안 참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렇다고 바쁘지 않은 날도 없었지만 요 며칠동안
    정말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친구남편 병문안을 가지 못할 정도로....
    어떻게 지냈는지 딱히 말씀 드릴 것도 없는데 
    언제부터인지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정도로
    정신 줄을 놓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요
    아무리 정신이 없이 바쁘다해도 당신을 잊으면 안되는데
    요즈음의 저의 모습은 신앙인이 맞나?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바쁘다는 이유로...
    신앙생활도 봉사도 희생도 복음묵상조차 어느때는 수박 겉핧기식으로
    하는 것같은 생각마저 들지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으니 사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날이 그날이고 어느 때는 이러다 당신을 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초조감이 들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사는 것이 무엇일까? 초자연인 같은 생각도 들지요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신앙생활을 계속한다면 외인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말씀을 성찰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세속에 얷매여 당신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신앙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가슴 깊이 반성합니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도 봉사도 희생은 더더욱 하지 않는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하며 당신께서 도와주신다는 믿음으로
    타성에 젖어있는 지금의 저의 모습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영세때의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마음 간절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깨달으며 당신의 가슴에 비수를 꼿는 어리석은
    신앙가 헬레나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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