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베드로는 갈릴래아 북쪽의 작은 도시 ‘벳사이다’
출신으로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다.
어부였던 그는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
초대 교회를 이끌던 그는 64년경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형으로 순교하였다.
바오로는 벤야민 지파 출신의
유다인으로 율법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다 개종하여 평생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바오로는 초대 교회와 예수님에 관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두 분은 초대 교회의 중심이며 기둥의 역할을 하신 분들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주님을 위해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충직함으로 예수님을 증언하였고,
바오로 사도는 성실함과 열정으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두 분의 일생을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연거푸 하신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암시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그 사랑은 깨달음으로 다가온다(복음).
복음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더 사랑하는지 물으십니다.
더 많이 십자가를 지겠느냐는 다짐입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였습니다.
그러기에 더 많은 고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확신에 찬 대답을 듣습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보다 더한 답변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베드로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십니다.
대답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쉽지만,
‘사랑한다.’는 행동은 쉽지 않습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이렇게 해서 베드로는 목숨을 바쳐야 할 ‘사랑의 대상’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연이어 물으시면 어떻게 답할는지요?
또렷하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응답에 어울리는 삶을 실천한다면 인생은 바뀝니다.
은총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대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전의 그대는 받기만 하는 제자였는데,
이제는 주고 베풀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이전의 그대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 탈바꿈할 수 있겠느냐는 다짐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요한의 아들 시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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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28)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베드로는 갈릴래아 북쪽의 작은 도시 ‘벳사이다’ 출신으로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다. 어부였던 그는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 초대 교회를 이끌던 그는 64년경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형으로 순교하였다. 바오로는 벤야민 지파 출신의 유다인으로 율법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다 개종하여 평생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바오로는 초대 교회와 예수님에 관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두 분은 초대 교회의 중심이며 기둥의 역할을 하신 분들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주님을 위해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충직함으로 예수님을 증언하였고, 바오로 사도는 성실함과 열정으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두 분의 일생을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연거푸 하신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암시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그 사랑은 깨달음으로 다가온다(복음).
복음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더 사랑하는지 물으십니다. 더 많이 십자가를 지겠느냐는 다짐입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였습니다. 그러기에 더 많은 고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확신에 찬 대답을 듣습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보다 더한 답변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베드로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십니다. 대답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쉽지만, ‘사랑한다.’는 행동은 쉽지 않습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이렇게 해서 베드로는 목숨을 바쳐야 할 ‘사랑의 대상’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연이어 물으시면 어떻게 답할는지요? 또렷하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응답에 어울리는 삶을 실천한다면 인생은 바뀝니다. 은총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대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전의 그대는 받기만 하는 제자였는데, 이제는 주고 베풀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이전의 그대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 탈바꿈할 수 있겠느냐는 다짐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28)
말씀의 초대
베드로는 성전 입구에서 불구자 한 사람을 고쳐 준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하며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자 불구자는 걷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놀란다. 사도들에게는 기적의 힘이 주어져 있었다(제1독서). 복음은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주어진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하면서 복음 선교의 위대함을 알리고 있다(제2독서).
제1독서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10 그 무렵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는데,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 온 백성은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1,11-20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헬레나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헬레나야!
내가 원하는대로 실천 할수 있느냐?
예!주님!
하지만 아직은 제가 할 일이 많습니다
세속에서의 삶 또한 중요하기에 ...
아이들 뒷바라지도 아직은 해야하구요
아직은 제가 할 일이 많습니다
아직은...
당신께서 원하시는대로 따르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세속의 일들이 많이 남아 있기에 당신께서 조금만 참아주시면
제가 하던 일 모두 정리하는대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이 저에게 하신 말씀같이 느껴집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당신을 정말 사랑하느냐고...
예!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아쉽고 힘들고 필요에 의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동안의 저의 신앙생활을 성찰해보니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당신을 믿는 것이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기보다 저의 뜻일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필요하고 제가 아쉽고 제가 힘들고 어려울때...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당신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당신을 믿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제가 아쉽고 힘들때 제가 당신이 필요할 때...
참 이기적인 사랑을 했습니다
저는 참 신앙인이 아니라 신앙가였습니다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을 깊이 새기며
제가 필요할 때 제가 아쉽고 힘들때가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을 믿으며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해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그동안의 이기적인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하며
당신의 말씀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묵상하며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믿음!
늘 생각하는 말이지만 언제나처럼 부족함도 느낌이 사실입니다.
나병환자의 믿음에서도~
백인대장의 믿음에서도~
회당장의 믿음에서도~
열두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인의 믿음에서도 간절함과 애절함이 함께하는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늘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그 믿음에 비유해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고백임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믿음과 기도에 대해서 큰소리를 내지만 과연 진정한 믿음을 가진 저였는지요.
제가 마음을 다해 아버지께 청한다면 물리치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께 향하는 그 순간에도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진 않았는지요.
아버지께선 늘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그 말씀을 돌이켜보면 정작 제겐 그런 마음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바꾸어 생각도 해 봅니다.
제 마음을 다 헤아리시는 아버지이신데 하물며 저의 등불같은 흔들림을 모를리 없으시겠지요.
제 움직임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주시하시다가 움직임이 잠잠해지면
결국 아버지께서 제게 손을 주심을 알지만 제 노력이 부족함였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회당장의 딸을 고쳐주시려 가는 중에
열두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한 여인이 아버지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에
군중을 헤치고 나아가서 그리합니다.
근데 더 신기한 것은 아버지께서도 그 느낌을 아셨다는 것에 전 한참 머물렀습니다.
그 많은 사람중에 누가 아버지를 건드렸다는 느낌을 아신다는게 어찌나 놀랍던지요.
그게 아버지의 사랑이신가 봅니다.
간절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미 아버지께선 아시고
그의 손을 잡으려 준비하고 계심을 새로이 다져 보기도 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회당장의 집으로 들어갔을 때 이미 죽은 아이를 어찌 살릴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말씀하시지요.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라고~
정작 제 마음을 꾀뚫어 보시는 것 같습니다.
늘 손을 내밀지만 완전한 믿음보다는 의심을 갖고 나아가는 저의 모습을 보시는 듯 했습니다.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선 계산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제 믿음이 완전한 믿음인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은 회당장의 집에 몰려있는 그 사람들중에 한사람이었음을 몰랐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청하면서 제 마음엔 이미 결정을 내리고 다른 방법을 물색하는 이가 바로 저는 아닌었는지요.
늘 그러하듯이 말씀속에서 저를 보면서 청할 것은 청하면서
인내를 가지고 바라기보다 먼저 저를 변화시키면서 사랑으로 물들여야 하는데
아직 쓸데없는 힘이 남아있어서 다른 엉뚱한 생각이
믿음이 충만한 것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지도 반성해 봅니다.
늘 저희곁에 계시면서 제가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께로 향한다면
맨발로 나오시어 저를 반겨주실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힘찬 걸음마를 시작할 것을 다짐해 보는 봅니다.
누가 뭐라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믿음으로 나아감을 잊지 않고
늘 귀를 열어 아버지의 말씀을 담으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회당장의 딸을 고치러 가셨는데
그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이미 죽은 아이를 살릴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수로롭게 할 필요가 있냐고 얘기하자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속마음이 들킨것처럼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하루하루 신앙을 고백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늘 의혹을 가지고 아버지를 대한적은 없었는지도 돌이켜 봅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을 새긴다고는 하지만
제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완전한 믿음보다 늘 다른 방법을 모색하려 분주하진 않았는지요.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늘 두려워하면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간보다
다른 곳을 바라본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에게 완전한 믿음이 생기게 하소서.
늘 기도하며 오롯한 마음으로 사랑을 키워 언제 어디서나 두려움없이 당당한 믿음으로 서게 하소서.
모든 것은 아버지께 맡기고 그저 제가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랑속에서 참 믿음을 얻게 하소서.
그리하여 한치의 의심없는 사랑의 고백을 하면서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아버지께 기대어 잠드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