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소녀야,내가 너에게 말한다.일어나라(마르5,21-43)



 

믿음!

늘 생각하는 말이지만 언제나처럼 부족함도 느낌이 사실입니다.

나병환자의 믿음에서도~

백인대장의 믿음에서도~

회당장의 믿음에서도~

열두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인의 믿음에서도 간절함과 애절함이 함께하는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늘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그 믿음에 비유해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고백임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믿음과 기도에 대해서 큰소리를 내지만 과연 진정한 믿음을 가진 저였는지요.

제가 마음을 다해 아버지께 청한다면 물리치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께 향하는 그 순간에도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진 않았는지요.

아버지께선 늘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그 말씀을 돌이켜보면 정작 제겐 그런 마음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바꾸어 생각도 해 봅니다.

제 마음을 다 헤아리시는 아버지이신데 하물며 저의 등불같은 흔들림을 모를리 없으시겠지요.

제 움직임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주시하시다가 움직임이 잠잠해지면

결국 아버지께서 제게 손을 주심을 알지만 제 노력이 부족함였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회당장의 딸을 고쳐주시려 가는 중에

열두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한 여인이 아버지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에

군중을 헤치고 나아가서 그리합니다.

근데 더 신기한 것은 아버지께서도 그 느낌을 아셨다는 것에 전 한참 머물렀습니다.

그 많은 사람중에 누가 아버지를 건드렸다는 느낌을 아신다는게 어찌나 놀랍던지요.

그게 아버지의 사랑이신가 봅니다.

간절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미 아버지께선 아시고

그의 손을 잡으려 준비하고 계심을 새로이 다져 보기도 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회당장의 집으로 들어갔을 때 이미 죽은 아이를 어찌 살릴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말씀하시지요.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라고~

정작 제 마음을 꾀뚫어 보시는 것 같습니다.

늘 손을 내밀지만 완전한 믿음보다는 의심을 갖고 나아가는 저의 모습을 보시는 듯 했습니다.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선 계산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제 믿음이 완전한 믿음인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은 회당장의 집에 몰려있는 그 사람들중에 한사람이었음을 몰랐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청하면서 제 마음엔 이미 결정을 내리고 다른 방법을 물색하는 이가 바로 저는 아닌었는지요.

늘 그러하듯이 말씀속에서 저를 보면서 청할 것은 청하면서

인내를 가지고 바라기보다 먼저 저를 변화시키면서 사랑으로 물들여야 하는데

아직 쓸데없는 힘이 남아있어서 다른 엉뚱한 생각이

믿음이 충만한 것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지도 반성해 봅니다.

늘 저희곁에 계시면서 제가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께로 향한다면

맨발로 나오시어 저를 반겨주실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힘찬 걸음마를 시작할 것을 다짐해 보는 봅니다.

누가 뭐라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믿음으로 나아감을 잊지 않고

늘 귀를 열어 아버지의 말씀을 담으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회당장의 딸을 고치러 가셨는데

그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이미 죽은 아이를 살릴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수로롭게 할 필요가 있냐고 얘기하자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속마음이 들킨것처럼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하루하루 신앙을 고백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늘 의혹을 가지고 아버지를 대한적은 없었는지도 돌이켜 봅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을 새긴다고는 하지만

제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완전한 믿음보다 늘 다른 방법을 모색하려 분주하진 않았는지요.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늘 두려워하면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간보다

다른 곳을 바라본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에게 완전한 믿음이 생기게 하소서.

늘 기도하며 오롯한 마음으로 사랑을 키워 언제 어디서나 두려움없이 당당한 믿음으로 서게 하소서.

모든 것은 아버지께 맡기고 그저 제가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랑속에서 참 믿음을 얻게 하소서.

그리하여 한치의 의심없는 사랑의 고백을 하면서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아버지께 기대어 잠드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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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소녀야,내가 너에게 말한다.일어나라(마르5,21-43)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요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믿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분이 계획하신 오묘한 섭리는 당신이 이루고자 하신다면
    환경,상황 그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본다.
    어떠한 처지가 됐든 꼭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말이다.

    세상과 인간 그리고 복음을 통해서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믿음이란
    그분의 뜻에 맡기는 자세라는 생각을 해봤다.
    고로 철저한 순명을 바탕으로 나의 믿음이 형성되야 한다는 것임을 깨달아 본다.
    반항하고 도망 가봤자 결국은 아버지 앞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무얼 요구하기보다 그저 그분 앞에 믿음으로써 기다려야 한다.
    그분의 숨소리가 느껴지지 않는가…
    참으로 부족하고 하찮은 나 지만
    그분에게 있어 나역시 소중한 존재가 아니던가…
    내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살아야 겠음을 다짐해 본다.

    때론 나의 염원이 이루어지지 않을수 있다.
    그것이 옳은 염원이든 그른 염원이든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인 것이고…
    그분이 보기엔 아닐수도 있지 않은가.

    암튼 믿음은
    죽을때까지 그분을 절실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비록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 마저 그분의 섭리임을 확신하고 사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믿음은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도 해봤다.
    왜냐하면 태어남도 그분의 뜻이고 죽음도 그분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분은 인간에게 있어 절대적이으로 믿어야만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믿어야 되는가… 고민을 하고 산다.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버지가 아버지이신데 왜 고민하는가.
    아버지가 아닐까봐서…
    아버지가 그럴수 있을까… 해서?

    내가 그분께 항상 드리는 좋은 말이 있다.
    ‘당연함”이라는 말이다.

    사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잘 알것이다.
    줄 것과 주지 않을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 피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부모의 의를 끊고 산다해도
    이씨의 피가 최씨가 될수 없고
    염색체를 인간이 어떻게 할수가 없다.

    그분은 그것 마저도 할수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을 향한 믿음은 ‘당연함”이다.
    그러기에 나역시 나를 만드신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한다.

    하혈하는 여인처럼…
    회당장이 처럼…
    아브라함 처럼..
    내 숨이 다해 헐떡거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믿음은 영원해야 함을 깨달아 보는 하루다.

  2. 지나가는나그네 님의 말:

    눈이 감깁니다.
    피곤도 하고…
    왜그리 바쁜지…
    저만 바쁜가…다들 바쁘지요?… 후힛
    오늘도 영적인 묵상글을 통해 맛난 샘물을 마시고 갑니다.

    깊은 밤
    좋은 꿈 꾸시고 안녕히 주무셔요..^ ^

  3. 엘리사벳 님의 말:

    《Re》지나가는나그네 님 ,
    맛이 없음에도 마셔주시기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 감사해 더 노력함이지요.
    맛이없어도 맛없다 하지 않는 그 사랑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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