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자 아주 고요해졌다.


연중 제 13주간 화요일(6/30)


    말씀의 초대
    제자들은 두려웠다. 호수의 풍랑이 배를 뒤집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스승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신다. 차마 깨울 수 없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흔들었다. “왜 겁을 내느냐?” 기적의 주님과 함께 있는데 무엇이 두렵느냐는 질책이다(복음).
    복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자 아주 고요해졌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3-27 그 무렵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자들은 풍랑이 두려웠습니다.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던 그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사 풍랑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저 정도라면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들은 초조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누군가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예수님을 흔듭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진심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라앉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생각입니다. 바람을 다스리는 분과 함께 있음을 잊은 것입니다. 기적의 주님을 모셨으면서도 생각해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르기에’ 두려워합니다. ‘모르기에’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매일 듣는 ‘어두운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매일 만나는 ‘불안한 소식’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 역시 초조해하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께서도 매일 아침 ‘모든 정보’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깨닫는다면 믿음은 행복으로 바뀝니다.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1975년에 작고한 시인 김현승의 노래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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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자 아주 고요해졌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 13주간 화요일(6/30)


      말씀의 초대
      제자들은 두려웠다. 호수의 풍랑이 배를 뒤집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스승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신다. 차마 깨울 수 없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흔들었다. “왜 겁을 내느냐?” 기적의 주님과 함께 있는데 무엇이 두렵느냐는 질책이다(복음).
      복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자 아주 고요해졌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3-27 그 무렵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자들은 풍랑이 두려웠습니다.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던 그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사 풍랑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저 정도라면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들은 초조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누군가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예수님을 흔듭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진심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라앉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생각입니다. 바람을 다스리는 분과 함께 있음을 잊은 것입니다. 기적의 주님을 모셨으면서도 생각해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르기에’ 두려워합니다. ‘모르기에’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매일 듣는 ‘어두운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매일 만나는 ‘불안한 소식’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 역시 초조해하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께서도 매일 아침 ‘모든 정보’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깨닫는다면 믿음은 행복으로 바뀝니다.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1975년에 작고한 시인 김현승의 노래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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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 13주간 화요일(6/30)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재앙을 내리려 하신다. 그곳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다. 천사들은 롯과 그의 가족을 구하려고 그들을 재촉한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주님께서는 롯에게 자비를 내리신다(제1독서).
      제1독서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셨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9,15-29 그 무렵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며 말하였다. “자, 이 성읍에 벌이 내릴 때 함께 휩쓸리지 않으려거든, 그대의 아내와 여기에 있는 두 딸을 데리고 어서 가시오.” 그런데도 롯이 망설이자 그 사람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읍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주님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롯의 가족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 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그러나 롯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리,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이 종이 나리 눈에 들어, 나리께서는 이제껏 저에게 하신 것처럼 큰 은혜를 베푸시어 저의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재앙에 휩싸여 죽을까 두려워, 저 산으로는 달아날 수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저 성읍은 가까워 달아날 만하고 자그마한 곳입니다. 제발 그리로 달아나게 해 주십시오. 자그마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 목숨을 살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롯에게 말하였다. “좋소. 내가 이번에도 그대의 얼굴을 보아 그대가 말하는 저 성읍을 멸망시키지 않겠소. 서둘러 그곳으로 달아나시오. 그대가 그곳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내가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그리하여 그 성읍을 초아르라 하였다. 롯이 초아르에 다다르자 해가 땅 위로 솟아올랐다. 그때 주님께서 당신이 계신 곳 하늘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셨다. 그리하여 그 성읍들과 온 들판과 그 성읍의 모든 주민, 그리고 땅 위에 자란 것들을 모두 멸망시키셨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가 주님 앞에 서 있던 곳으로 가서 소돔과 고모라와 그 들판의 온 땅을 내려다보니, 마치 가마에서 나는 연기처럼 그 땅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그 들판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롯이 살고 있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롯을 그 멸망의 한가운데에서 내보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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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선미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

    풍랑이 일자 두려움에 가득찬 제자들!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어부였던 그들은 풍랑의 강도를 알았기에 두려움에 떨었나 봅니다.

    그치만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기적이 이루어짐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누구신지는 깨닫지 못했기에 그렇게 두려움에 떨면서 결국은 아버지를 깨웠나 봅니다.

    함께 계신분이 아버지신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앎과 모름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봅니다.

    안다는 자체가 단정적인 말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그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자들은 풍랑의 위험은 알았지만 아버지가 누구신지는 알지를 못해 두려움으로 가득했겠지요.

    저도 같은 모습일거라 생각을 해 봅니다.

    아버지를 믿는다 하면서~ 사랑한다 하면서 과연 얼마나 노력하였는지요.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위해 얼마나 노력하였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지를 돌이켜 봅니다.

    정작 따라나서기는 하였는데 어디로 가는지도~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하염없는 발걸음에 몸을 싣고 힘없이 거닐면서

    주위의 모든 유혹에 무릎을 꿇으며 깜깜한 암흑을 향해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저가 아니었는지요.

    제가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려 노력하는 만큼

    제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의 물살도 세찰 것인데

    저의 무지로 인해 늘 두려워하면서 겁에 질려 허둥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믿음도 저의 마음상태에 따라 성숙해짐을 알고 있습니다.

    제 마음의 문이 닫혀 있어서 아직 잔뿌리도 내리지 못함이지요.

    바로 오늘 제자들의 모습이 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아니 그들보다 훨씬 더 부족한 모습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새삼 깨달아 봅니다.

    사랑의 은총이 기적이 되어 제게 안긴다 할지라도 제 마음이 닫혀 있다면

    금새 사라지는 비눗방울에 불과하겠지요.

    보지도 듣지고 못하기에 늘 불안해하며 초조히 살아갑니다.

    아버지께서 늘 저를 지켜주시고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며 함께 하심을 알지 못하기에~~

    현재를 살아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고백하지 못하기에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없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강한척 스스로 노래하면서

    정작은 늘 불안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돌이켜 봅니다.

    큰 무엇을 위해 신기루를 쫓는 듯한 허황된 모습으로 고백하기 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는 저가 되어 아버지를 알기 위해 끝없는 노력이 함께 해야 함을 깊이 새깁니다.

    말씀에 귀기울이고 전례속에서 저의 부족한 모습을 다잡으면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작은 움직임이

    결국은 온전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청하는 그런 모습으로

    저역시 다른 이를 위해 아버지께 자비를 청하면서 믿음으로 가득한 저가 되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선미에서 주무시고 계시는데 풍랑이 일자 두려움에 가득찬 제자들이 아버지를 깨웁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매 순간 함께 하심에도 깨닫지 못하는 저를 두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믿지 못하고 불안해 할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를 생각해 봅니다.

    부모의 사랑을 보았음에도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는 저가 아니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매 순간 사랑한다 고백하지만 경우의 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요.

    사랑하고 믿음에 저의 모든 것을 맡기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되는 것인데

    정작 저의 모든 것을 걸고 평화로움 속에 아버지의 사랑으로 기쁨을 만끽하였는지요.

    그리하여 그것이 삶으로 드러났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그런 저의 믿음에 말씀의 힘으로 강한 불길을 내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그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저가되게 하시어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주소서.

    그리하여 현재를 살아감에 아버지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더 당당히 사랑을 전하며

    아버지의 딸로 서게 하소서.

    사랑의 눈으로 매순간 아버지를 느낄 수 있게 하시어 불안에 떨며 두려움에 가득한 움츠림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힘찬 기지개를 펴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아버지께 자비를 청하는 그런 모습으로 서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헬레나야!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헬레나야!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헬레나야!
    아직도 겁이 나느냐!
    너는 내가 언제나 네 곁에 있는데...
    아직도 겁이 나느냐?
    예! 주님!
    아직도 저는 겁이 납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원인이 저에게 있는 것같아
    비가 오면 비가 오는 원인이 저에게 있는 것같아
    눈이 오면 눈이 오는 원인이 저에게 있는 것같아
    이래면 이래서 겁이나고 저래면 저래서 겁이 납니다
    이유는요?
    단 한가지 저에게 “믿음”이 없어서지요
    아니!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믿음”이 부족해서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입니다
    당신을 믿는 마음이 부족해서입니다
    당신을 믿는마음이 부족하니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말씀이 저에게 하신 것같아 뜨끔합니다
    당신께서 저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꾸짖으시는 것같아
    두려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사랑이신 당신을 무서운 존재로 생각하는 저의 부족한 믿음이
    사랑이신 당신을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는 저의 부족한 믿음이
    사랑이신 당신을 괴로운 존재로 생각하는 저의 부족한 믿음이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부끄럽습니다 죄스럽습니다 괴롭습니다 주님!

    주님!
    신앙생활을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당신을 무서운 존재로
    두려운 존재로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는 저의 부족한 믿음이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새삼 깨닫습니다
    저의 부족한 믿음을 반성하며 사랑이신 당신을 믿으며
    오늘복음의 말씀을 화두로 생각하며 
    당신을 굳게 믿으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힘들고 지칠지라도 당신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굳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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