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사도 가운데 한 분인
토마스 사도는 언제 제자로 뽑혔는지 전해지지 않는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실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부활하신 스승님을 선뜻 믿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위해 다시 나타나시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며 자신의 믿음을 증언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 사도는
파르티아(고대 이란 왕국)와 인도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부활의 주님께서 처음 나타나셨을 때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스승님에 대한 소식을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용감하고 현실적인 제자였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해 한 번 더 발현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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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사도 축일(7/03)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분인 토마스 사도는 언제 제자로 뽑혔는지 전해지지 않는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실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부활하신 스승님을 선뜻 믿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위해 다시 나타나시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며 자신의 믿음을 증언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 사도는 파르티아(고대 이란 왕국)와 인도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부활의 주님께서 처음 나타나셨을 때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스승님에 대한 소식을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용감하고 현실적인 제자였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해 한 번 더 발현하신다(복음).
복음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4-29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디에나 쉬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한때는 열심했건만 무슨 연유인지 식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원인은 많습니다. 신앙의 의미를 못 느껴 성당에 가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삶이 힘겹고 바빠 잠시 쉰다는 분도 있습니다. 교우들과의 상처 때문에 성당에 발길을 끊기도 하고 성직자들의 차가움에 발길을 돌렸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것과 ‘믿지 못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들은 믿지 못할 뿐입니다. 계기가 오면 십자가 앞으로 다시 나올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제자 토마스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한 번 더 발현하시어 그의 믿지 못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안아 주셨습니다. 토마스가 돌아선 것은 예수님의 애정 때문입니다. 스승님의 배려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느님의 은총을 깨달을 때 감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은총으로 대해 주시는 예수님을 먼저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살다 보면 ‘냉담은 현실’입니다. 가족 중에 ‘쉬고 있는 이’가 있다면 오늘은 토마스 사도에게 도움의 기도를 청해야겠습니다. 그들도 감동하고 감복할 수 있게 마음을 열어 주시길 청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성 토마스 사도 축일(7/03)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셨다. 둘 사이를 가르던 장벽을 없애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한 가족이 된다. 같은 믿음을 지닌 신앙인이 된다. 믿는 이들이 건물이라면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기초를 놓았고, 그리스도께서는 모퉁잇돌이 되어 주셨다(제1독서).
제1독서
<여러분은 사도들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19-22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
오늘이 토마사도 축일이네요
당신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던 토마사도의 불신앙
하지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당신의 말씀 한마디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고백하신 토마사도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많은 생각이 오고갔습니다
저도 토마사도처럼 변했으면 좋을텐데 하는 간절한 바램
그리고 교만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토마사도처럼 당신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본적도 없어도
그 못자국에 저의 손가락을 넣어 본적도 없어도
또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본적이 없어도
저는 당신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도 기본은 되지 않을까?하는 교만한 생각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고 또 해보니 그래도 당신을 믿는사람이
맞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습니다
우쭐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주님!
저 참 철이 없죠?
그래도 기쁩니다
비록 철이 없고 교만하고 믿음또한 아직은 부족하지만
저의 이런 철없는 생각이 당신때문이라는 사실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비록 아직은 당신 보시기에 ㅎ한심할 때도 많으시지만
언젠가는 변화되리라는 믿음으로 토마사도처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고백하며
신앙생활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 중에 헬레나도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삼으며 보지 않고도 믿고 세례를 받았을때 행복했던
그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간절히...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묵상하며
오늘 토마축일을 맞이하신 모든 형제님들과
박상옥(토마)신부님께서 영육간의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 내 영혼의 찬양 / `God Is So Good` 외 5곡 이어듣기
성 토마스 사도 축일입니다.
토마스의 솔직한 고백이 저의 모습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입으로는 믿는다 따른다 고백하면서 매순간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닌지요.
시간이 지남에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함인데
아직도 그 자리에서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렇게 고백하며 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치요?
아무런 의심없이 그저 “아버지!” 라고 고백하며
제게 주어지는 세월을 안고 힘차게 아버지께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리하지 못함을 반성해 봅니다.
허긴 처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답니다.
사랑의 이치를 조금은 깨달았으니까요.
세상은 제게 흉을 남기는 아픔을 주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깨달음의 아픔을 줄지언정
흉이 남지 않음을 깨달았거든요.
새살이 돋아나듯 그렇게 예쁜 성장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조금은 알기에
사랑의 고백을 하려 늘 깨어있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올인한다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세상속에서의 승부와 아버지의 사랑을 두고 잠시 생각해 봅니다.
과연 어느쪽으로 올인을 할것인지를 묻는다면 정작 딸로서 살아가고 있는 저는 어느쪽을 선택할까요?
저도 처음엔 세상으로의 올인이었는데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담으면서 깨달았습니다.
무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에 올인하는게
저를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요. 아주 자신있게~~
어렵고 힘들지만 사다리를 딛고 올아갔을 때, 다른 먼곳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잇고
시원한 바람에 젖은 옷을 말리며 환한 미소로 아버지를 뵈올 여유가 생기기에
그 어떠한 일이 제게 주어진다 해도 주어진 삶을 안고 이겨나갈 수 있는 확신이 아니 힘이 생김을 깨달았으니까요.
그래서 늘 기쁘게 세월을 안고 나가는 저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답니다.
많은 말보다는 그저”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함에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감을 이젠 알게 되었습니다.
전례안에서 매일 고백을 하면서 더 깊은 저가 되려 다짐해 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안에서 머물지 않으면 이끄시는데로 저를 맡기지 않으면
변화된 삶으로 고백하는 저가 될 수 없다고 하지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맞습니다.
그 말씀의 진리를 이제야 깨닫기 시작하고 앞으로도 늘 말씀에서 살아있는 저가 되어 가슴에 아버지를 뫼시렵니다.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넘치는 개구쟁이 딸로 아버지께 수다떠는 저가되어
저의 아버지시기에 당연히 안기고 아버지만을 믿고 따르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토마스의 솔직한 고백에 저의 모습을 돌이켜 봅니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렇게 아버지를 확인하려 한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결국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는 그였기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하는 모습에 가슴이 찡해 왔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고백이지만 먼길을 돌아왔을 그를 생각하면서 저의 모습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토마스의 고백에 저를 보았음에도 아직 변화되지 않은 저는 아닌지요.
말씀에서 저를 비추어 새로나야 함인데 늘 같은 고백을~ 다짐을 하면서
한 자리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아버지시기에 믿고 따르게 하소서.
사랑하는 자식을 아닌 길로 인도해 주실 아버지가 아니심을 늘 잊지 않게 하시어
의심과 두려움의 문을 열고 사랑의 빛을 담게 하소서.
사랑하는 사람은 가슴에 담기에 생각의 변하가 따르지 않음을 깨닫게 하시어
늘 한결같은 사랑의 고백으로 아버지 앞에 서게 하소서.
“아버지, 사랑하는 울아버지!”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