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곧 단식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날을 ‘신랑을 빼앗길 날’이라고 표현하셨다.
당신의 수난을 가리키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7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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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간 토요일(7/04)
말씀의 초대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곧 단식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날을 ‘신랑을 빼앗길 날’이라고 표현하셨다. 당신의 수난을 가리키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7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유다인들의 단식은 율법의 규정입니다. 율법의 명에 따라 음식을 끊었습니다. 이후 단식은 조상들의 전통이 되어 누구나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식의 이유’에 앞서 단식 자체에 매달리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단식은 음식을 먹지 않는 행위입니다. 목적 없는 단식은 ‘이유 없이’ 육체를 괴롭히는 고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단식의 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라고 하셨습니다. 신랑은 예수님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는 ‘당신의 일’을 하자는 말씀입니다. 단식은 하느님께로 가는 수단입니다. 음식을 절제함으로 주님께로 마음을 향하게 하는 ‘보조 수단’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니 단식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함께 계시는 날은 잔칫날입니다. 우리 인생의 많은 날을, 우리는 성체를 모심으로써 ‘잔칫날’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삶은 늘 축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신앙생활이 힘겨워질 때는 사순절이 아니더라도 단식할 수 있습니다. 단식을 통해 내 감정과 욕망의 절제를 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다시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과 연관된 단식은 언제라도 은총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13주간 토요일(7/04)
말씀의 초대
이사악은 큰아들 에사우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전하려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둘째 아들 야곱에게 있었다. 그러기에 모든 일은 야곱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어머니 레베카까지 그를 도와준다. 이사악은 야곱을 축복하며 자신의 후계자로 삼는다(제1독서).
제1독서
<야곱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다(27,36 참조).>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7,1-5.15-29 이사악은 늙어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큰아들 에사우를 불러 그에게 “내 아들아!” 하고 말하였다. 에사우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보다시피 나는 이제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그러니 이제 사냥할 때 쓰는 화살 통과 활을 메고 들로 나가, 나를 위해 사냥을 해 오너라. 그런 다음 내가 좋아하는 대로 별미를 만들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그것을 먹고, 내가 죽기 전에 너에게 축복하겠다.” 레베카는 이사악이 아들 에사우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 있었다. 그래서 에사우가 사냥하러 들로 나가자, 레베카는 자기가 집에 가지고 있던 큰아들 에사우의 옷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을 꺼내어, 작은아들 야곱에게 입혔다. 그리고 그 어린 염소의 가죽을 그의 손과 매끈한 목둘레에 입힌 다음, 자기가 만든 별미와 빵을 아들 야곱의 손에 들려 주었다. 야곱이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그가 “나 여기 있다. 아들아, 너는 누구냐?” 하고 묻자,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르신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니 일어나 앉으셔서 제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저에게 축복해 주십시오.” 그래서 이사악이 아들에게 “내 아들아, 어떻게 이처럼 빨리 찾을 수가 있었더냐?” 하고 묻자, 그가 “아버지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일이 잘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아, 가까이 오너라.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사우인지 아닌지 내가 만져 보아야겠다.” 야곱이 아버지 이사악에게 가까이 가자, 이사악이 그를 만져 보고 말하였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사우의 손이로구나.” 그는 야곱의 손에 그의 형 에사우의 손처럼 털이 많았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축복해 주기로 하였다. 이사악이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사우냐?” 하고 다져 묻자, 그가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사악이 말하였다. “그것을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너에게 축복해 주겠다.” 야곱이 아버지에게 그것을 가져다 드리니 그가 먹었다. 그리고 포도주를 가져다 드리니 그가 마셨다. 그런 다음 아버지 이사악이 그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입 맞춰 다오.” 그가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자, 이사악은 그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였다. “보아라, 내 아들의 냄새는, 주님께서 복을 내리신, 들의 냄새 같구나.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하늘의 이슬을 내려 주시리라.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 뭇 민족이 너를 섬기고, 뭇 겨레가 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너는 네 형제들의 지배자가 되고, 네 어머니의 자식들은 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에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말씀이 어느 때보다 더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맞아요 주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하지요?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생각이 났는데요
해마다 인사이동으로 신부님들이 가시고 오실 때마다
새로오신 신부님들을 뵐 때마다 다짐하게 됩니다
새로오신 신부님과 새로운 마음으로 그동안의 묵은 때
저의 찌들은 영혼까지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섭섭했던 기억들과 슬펐던 기억 형제자매들과의 복잡했던
마음까지 모두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다짐으로 끝날 때가 많았지요
그리고 언제 다짐했냐는듯이 예전처럼 또 지지고 볶으며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언제나...
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했듯이...
그리고 작심삼일도 못가 다짐도 작심삼일로 끝났지요
그리곤 언제나 후회를 했지요
헛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언제나 공수표만 날리고 있는 저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오늘복음을 묵상할때마다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말씀을 묵상할때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또 다시 헛맹세를 할지라도 다짐하고 싶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마음으로
새롭게 다짐해봅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마음으로
깨어있으며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해야한다고...
새롭게 다짐해봅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마음으로...
몸도 마음도 행동도 신앙생활도 모두 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상하며
♬ Pie Jesu (자비로운 예수)
– Soprano. Barbara Hendricks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말씀이 어느 때보다 더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맞아요 주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하지요?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생각이 났는데요
해마다 인사이동으로 신부님들이 가시고 오실 때마다
새로오신 신부님들을 뵐 때마다 다짐하게 됩니다
새로오신 신부님과 새로운 마음으로 그동안의 묵은 때
저의 찌들은 영혼까지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섭섭했던 기억들과 슬펐던 기억 형제자매들과의 복잡했던
마음까지 모두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다짐으로 끝날 때가 많았지요
그리고 언제 다짐했냐는듯이 예전처럼 또 지지고 볶으며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언제나...
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했듯이...
그리고 작심삼일도 못가 다짐도 작심삼일로 끝났지요
그리곤 언제나 후회를 했지요
헛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언제나 공수표만 날리고 있는 저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오늘복음을 묵상할때마다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말씀을 묵상할때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또 다시 헛맹세를 할지라도 다짐하고 싶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마음으로
새롭게 다짐해봅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마음으로
깨어있으며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해야한다고...
새롭게 다짐해봅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마음으로...
몸도 마음도 행동도 신앙생활도 모두 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상하며
♬ Pie Jesu (자비로운 예수)
– Soprano. Barbara Hendricks
사랑하지만 보내야하는 아픔이 기다릴지라도 아직은 가지 않았기에 그를 위해 기뻐해야 되는거지요?
아니 보내야만 하는 사실을 모른다 할지라도 우선은 함께 계시기에 기뻐해도 되는거지요?
철없어 보이는 모습이고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뒤늦게 알게 된다면 가슴으로 사랑을 드러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살아계신 부모와의 작별을 생각지 못하고 받은 사랑을 무시하지만
가신뒤에는
가슴으로 사랑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이요.
서운해하고 슬프하면서 그를 보내야 하는 마음을 드러내 보이진 않지요.
지난 오월에 군대를 간 아들이 생각납니다.
보내야 함에 슬프지만 드러내지 않았지요.
제 눈물을 보고 더 슬퍼할까봐요.
오늘 말씀에서 율법학자들이 아버지께 묻지요.
제자들이 왜 단식을 하지 않냐고~~
율법의 규정인 단식!
그 기준이 그렇게 대단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누구를 위한 규정인진 잘 모르겠지만 형식보단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애잔함이 묻어나는
그런 사랑의 규정이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선은 함께 함에 그냥 그렇게 기뻐해야 함이 바른 것 같은데
그들은 형식의 틀이 우선이었나 봅니다.
그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나 봅니다.
형식만 남아있고 마음이 다하지 않는다면 그또한 헛된 사랑임일텐데요.
주어진 형식에 우선시하느라 제게 주어진 열정과 사랑과 정성을 무시한다면
신랑을 보낸 뒤에 진정 사랑의 깨달음을 알수 없겠지요.
반면 사랑이 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랑하는 신랑을 생각하며 자신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기리며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바칠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메여진 형식에 저를 가두고 넓게 보지 못한다면 저의 존재는 겨울잠을 자는 뱀에 지나지 않음을 되새겨 봅니다.
기준에 상대를 비추어 보면서 참견을 하기보다
그런 편견을 버리고 저부터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함을 가슴에 새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사랑이 있는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은 형식에 젖은 규정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스스로 단식하며 그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선을 베풀며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며 가련한 이들을 위해 자비를 청하는 멋진 사람이겠지요.
바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그런 사람이겠지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아버지표 사랑의 부대에 담는 저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형식에 얽매여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저가 되지 않도록 늘 말씀에 귀기울이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율법의 규정인 단식을 하지 않는다고 반문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라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정작 저는 형식에 얽매인 신앙생활을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규정된 율법의 기준으로 다른 이를 판단하고 채찍하며 믿음이 없다고 손가락질 한적은 없었는지요.
아버지의 말씀을 멋지게 인용하면서 정작 저는 변화되지 않는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언젠가 봉사자들이 쉽게 말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핑계로 이유아닌 이유를 댑니다.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부끄러움이 몰려 옵니다.
그런 모습속에 저가 서 있지 않았는지요.
제 멋대로 말씀을 인용하면서 정작 사랑을 제대로 담지 못함이
단식을 운운하는 그들과 같음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부족한 저이지만 저의 작은 정성과 사랑을 부풀려 아버지의 사랑에 담게 하소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시어 형식이 아닌 사랑에 움직이는 저가 되게 하소서.
정해진 옛틀에 얽매여 저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보다
사랑의 돋보기로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사랑을 실천하는 지혜로운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사랑하지만 보내야하는 아픔이 기다릴지라도 아직은 가지 않았기에 그를 위해 기뻐해야 되는거지요?
아니 보내야만 하는 사실을 모른다 할지라도 우선은 함께 계시기에 기뻐해도 되는거지요?
철없어 보이는 모습이고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뒤늦게 알게 된다면 가슴으로 사랑을 드러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살아계신 부모와의 작별을 생각지 못하고 받은 사랑을 무시하지만
가신뒤에는
가슴으로 사랑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이요.
서운해하고 슬프하면서 그를 보내야 하는 마음을 드러내 보이진 않지요.
지난 오월에 군대를 간 아들이 생각납니다.
보내야 함에 슬프지만 드러내지 않았지요.
제 눈물을 보고 더 슬퍼할까봐요.
오늘 말씀에서 율법학자들이 아버지께 묻지요.
제자들이 왜 단식을 하지 않냐고~~
율법의 규정인 단식!
그 기준이 그렇게 대단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누구를 위한 규정인진 잘 모르겠지만 형식보단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애잔함이 묻어나는
그런 사랑의 규정이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선은 함께 함에 그냥 그렇게 기뻐해야 함이 바른 것 같은데
그들은 형식의 틀이 우선이었나 봅니다.
그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나 봅니다.
형식만 남아있고 마음이 다하지 않는다면 그또한 헛된 사랑임일텐데요.
주어진 형식에 우선시하느라 제게 주어진 열정과 사랑과 정성을 무시한다면
신랑을 보낸 뒤에 진정 사랑의 깨달음을 알수 없겠지요.
반면 사랑이 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랑하는 신랑을 생각하며 자신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기리며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바칠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메여진 형식에 저를 가두고 넓게 보지 못한다면 저의 존재는 겨울잠을 자는 뱀에 지나지 않음을 되새겨 봅니다.
기준에 상대를 비추어 보면서 참견을 하기보다
그런 편견을 버리고 저부터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함을 가슴에 새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사랑이 있는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은 형식에 젖은 규정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스스로 단식하며 그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선을 베풀며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며 가련한 이들을 위해 자비를 청하는 멋진 사람이겠지요.
바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그런 사람이겠지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아버지표 사랑의 부대에 담는 저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형식에 얽매여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저가 되지 않도록 늘 말씀에 귀기울이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율법의 규정인 단식을 하지 않는다고 반문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라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정작 저는 형식에 얽매인 신앙생활을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규정된 율법의 기준으로 다른 이를 판단하고 채찍하며 믿음이 없다고 손가락질 한적은 없었는지요.
아버지의 말씀을 멋지게 인용하면서 정작 저는 변화되지 않는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언젠가 봉사자들이 쉽게 말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핑계로 이유아닌 이유를 댑니다.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부끄러움이 몰려 옵니다.
그런 모습속에 저가 서 있지 않았는지요.
제 멋대로 말씀을 인용하면서 정작 사랑을 제대로 담지 못함이
단식을 운운하는 그들과 같음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부족한 저이지만 저의 작은 정성과 사랑을 부풀려 아버지의 사랑에 담게 하소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시어 형식이 아닌 사랑에 움직이는 저가 되게 하소서.
정해진 옛틀에 얽매여 저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보다
사랑의 돋보기로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사랑을 실천하는 지혜로운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