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가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연중 제14주간 월요일(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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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가시면 살아날 것입니다.에 1개의 응답


    말씀의 초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은 예수님께 마지막 기대를 건다. 그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여인의 믿음은 기적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그녀를 구원했음을 확인해 주신다(복음).
    복음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가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6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혈루’란 피가 샌다는 한자 말입니다.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니 분명 수치스러운 병입니다. 더구나 ‘사막 문화’에서 피는 신성한 것이었기에, 이 병에 걸리면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레위기 15장 25절 이하에는 ‘혈루증’을 앓는 사람과 가까이만 해도 부정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의 옷이나 앉았던 자리에 닿기만 해도 부정이 옮겨 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철저히 외면받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여인은 애절하게 매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면 화를 낼 일입니다. 여인은 부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건네십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율법을 뛰어넘는 말씀입니다. 몸에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레위기의 기록을 무색케 하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나 병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조금씩은 병을 안고 살아갑니다.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혹한 ‘혈루증’이었지만 자기 몸의 일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축복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의 음성과 눈빛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여인의 감격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숨은 가르침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탈리다쿰  / 강수정 선교사



 


연중 제14주간 월요일(7/06)


    말씀의 초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은 예수님께 마지막 기대를 건다. 그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여인의 믿음은 기적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그녀를 구원했음을 확인해 주신다(복음).
    복음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가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6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혈루’란 피가 샌다는 한자 말입니다.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니 분명 수치스러운 병입니다. 더구나 ‘사막 문화’에서 피는 신성한 것이었기에, 이 병에 걸리면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레위기 15장 25절 이하에는 ‘혈루증’을 앓는 사람과 가까이만 해도 부정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의 옷이나 앉았던 자리에 닿기만 해도 부정이 옮겨 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철저히 외면받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여인은 애절하게 매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면 화를 낼 일입니다. 여인은 부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건네십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율법을 뛰어넘는 말씀입니다. 몸에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레위기의 기록을 무색케 하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나 병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조금씩은 병을 안고 살아갑니다.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혹한 ‘혈루증’이었지만 자기 몸의 일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축복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의 음성과 눈빛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여인의 감격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숨은 가르침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탈리다쿰  / 강수정 선교사



 
 


  • guest 님의 말:


    연중 제14주간 월요일(7/06)


      말씀의 초대
      야곱은 하란으로 가던 도중에 야영을 하다가 꿈을 꾼다. 땅에 세워진 층계가 하늘에 닿는 꿈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약속의 땅과 후손들의 축복에 대한 말씀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주님을 찬미하며 그곳을 ‘베텔’이라 불렀다(제1독서).
      제1독서
      <야곱은 하느님의 천사들이 층계를 오르내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8,10-22ㄱ 그 무렵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면서, 두려움에 싸여 말하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고는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성읍의 본이름은 루즈였다. 그런 다음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탈리다쿰  / 강수정 선교사
    
    
    
     
     
    


  • guest 님의 말:

     

    “나의 하느님, 나 그분께 의지하네.”

    화답송의 후렴구인데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여인의 모습이 담긴 듯 합니다.

    지치고 힘들어 그냥 주저앉았을 것같은데, 그녀의 믿음이 기적을 안았습니다. 사랑의 은총~~~

    사랑의 간절한 청을 저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

    저의 모습은 어떤지요.

    늘 고백하지만 한결같은 생각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랍니다.

    제게 그런 간절한 믿음이 있었는지 되돌아 봅니다.

    이렇게 해 주시면 더 열심히 아버지를 믿겠노라고 거래아닌 거래를 하면서

    정작 자신이 진실로 기도하는 사람처럼 교만을 모른 채 살아온건 아닌지요.

    무엇을 청하기보다 그저 하염없는 감사와 사랑을 드리면서 제 사랑의 힘으로

    온전히 아버지를 믿으면 되는 것인데 먼저 거래의 손을 내민건 아닌지도 반성해 봅니다.

    어제 주일 오후에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시간나는 틈틈이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한답니다.

    처음엔 가슴아릴 정도로 눈물이 흘렀는데 이젠 서로가 정리가 되어가나 봅니다.

    서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거니까요.

    이젠 애잔함을 감춘채 서로가 웃으면서 농담도 하지요.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아버지께 맡겨드리고도 불안해 했는데~~

    이또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을 압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못다 믿으면서 제 자식을 부탁하는 모습이란~~ ㅎㅎ

    아들이 아빠에게 묻더군요. 성당 다녀오셨냐고~~

    그러니까 당연한걸 물어보냐고 남편이 아들한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아빠더러 열심히 성당 나가시라고 당부를 했답니다.

    얼마나 기특하던지요. 사실 웃기기도 했지요.

    아들을 보내고 슬펐던 마음을 잊고 그렇게 기쁘게 웃어 본것도 오랜만이었답니다.

    무엇보다 제가 기뻤던 것은 아들의 변화였거든요.

    군대가기전엔 지금처럼의 기쁨은 없었는데 이젠 저도 깨달았나 봅니다.

    저의 힘으로는 엄마,아빠를 지켜드리지 못함을~~

    아마도 제맘과 꼭 같지않을까 싶네요.

    그럴거예요. 그치요?

    누군가 주입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아버지의 사랑을 담고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한번도 빠지지 않은 아들이 정말 대견스러웠지요.

    그리고 이젠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듯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간절한 믿음의 힘으로 병을 고친 여인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인의 간절한 믿음이 하루아침에 다져진 것은 아닐거라는 생각에

    저의 모습도 더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버지께로 향하는 그 믿음은 저절로 성장하는게 아니라

    제가 얼마나 노력하냐에 달여 있음을 새삼 되뇌여 봅니다.

    병자를 고치시며 아버지께서는 한결같은 말씀으로 안아주시지요.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

    모든 것을 저희에게로 돌리시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에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 봅니다.

    너무나 부끄러워서지요.

    제겐 그런 믿음이 없는 것 같은 생각에 더 노력하여 멋진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한 여인을 고쳐주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적을 바라며 한 행위가 아니고

    믿음에서 나오는 간절함이었기에 아버지께서 그녀의 병을 고쳐주셨음을 압니다.

    그리고 딸이 죽었지만 아버지께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이라며 청하는 회당장의 믿음을 보시고

    딸을 살려주십니다.

    과연 제겐 그런 믿음이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를 사랑함에 나오는 믿음은 자리잡지 않고 그저 요행을 바라는 자세로 아버지께 고백하는

    그런 속빈 모습의 신앙인은 아니었는도 반성해 봅니다.

    많은 것을 바라시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깨닫지 못한 채

    작은~ 아니 당연한 것을 드리면서 무언가를 바라는 어리석은 저는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실날같은 믿음이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주어지는게 아니라 제가 노력하는 만큼 비례하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임을 알게 하시어

    사랑의 은총을 기다리며 목을 빼고 있는 저가 되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들이 온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제 부족한 믿음에 불을 피워 주소서.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에 기뻐하는 이들에게 더 큰 기쁨으로 함께 해 주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 user#0 님의 말:

     

    “나의 하느님, 나 그분께 의지하네.”

    화답송의 후렴구인데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여인의 모습이 담긴 듯 합니다.

    지치고 힘들어 그냥 주저앉았을 것같은데, 그녀의 믿음이 기적을 안았습니다. 사랑의 은총~~~

    사랑의 간절한 청을 저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

    저의 모습은 어떤지요.

    늘 고백하지만 한결같은 생각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랍니다.

    제게 그런 간절한 믿음이 있었는지 되돌아 봅니다.

    이렇게 해 주시면 더 열심히 아버지를 믿겠노라고 거래아닌 거래를 하면서

    정작 자신이 진실로 기도하는 사람처럼 교만을 모른 채 살아온건 아닌지요.

    무엇을 청하기보다 그저 하염없는 감사와 사랑을 드리면서 제 사랑의 힘으로

    온전히 아버지를 믿으면 되는 것인데 먼저 거래의 손을 내민건 아닌지도 반성해 봅니다.

    어제 주일 오후에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시간나는 틈틈이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한답니다.

    처음엔 가슴아릴 정도로 눈물이 흘렀는데 이젠 서로가 정리가 되어가나 봅니다.

    서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거니까요.

    이젠 애잔함을 감춘채 서로가 웃으면서 농담도 하지요.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아버지께 맡겨드리고도 불안해 했는데~~

    이또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을 압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못다 믿으면서 제 자식을 부탁하는 모습이란~~ ㅎㅎ

    아들이 아빠에게 묻더군요. 성당 다녀오셨냐고~~

    그러니까 당연한걸 물어보냐고 남편이 아들한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아빠더러 열심히 성당 나가시라고 당부를 했답니다.

    얼마나 기특하던지요. 사실 웃기기도 했지요.

    아들을 보내고 슬펐던 마음을 잊고 그렇게 기쁘게 웃어 본것도 오랜만이었답니다.

    무엇보다 제가 기뻤던 것은 아들의 변화였거든요.

    군대가기전엔 지금처럼의 기쁨은 없었는데 이젠 저도 깨달았나 봅니다.

    저의 힘으로는 엄마,아빠를 지켜드리지 못함을~~

    아마도 제맘과 꼭 같지않을까 싶네요.

    그럴거예요. 그치요?

    누군가 주입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아버지의 사랑을 담고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한번도 빠지지 않은 아들이 정말 대견스러웠지요.

    그리고 이젠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듯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간절한 믿음의 힘으로 병을 고친 여인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인의 간절한 믿음이 하루아침에 다져진 것은 아닐거라는 생각에

    저의 모습도 더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버지께로 향하는 그 믿음은 저절로 성장하는게 아니라

    제가 얼마나 노력하냐에 달여 있음을 새삼 되뇌여 봅니다.

    병자를 고치시며 아버지께서는 한결같은 말씀으로 안아주시지요.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

    모든 것을 저희에게로 돌리시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에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 봅니다.

    너무나 부끄러워서지요.

    제겐 그런 믿음이 없는 것 같은 생각에 더 노력하여 멋진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한 여인을 고쳐주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적을 바라며 한 행위가 아니고

    믿음에서 나오는 간절함이었기에 아버지께서 그녀의 병을 고쳐주셨음을 압니다.

    그리고 딸이 죽었지만 아버지께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이라며 청하는 회당장의 믿음을 보시고

    딸을 살려주십니다.

    과연 제겐 그런 믿음이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를 사랑함에 나오는 믿음은 자리잡지 않고 그저 요행을 바라는 자세로 아버지께 고백하는

    그런 속빈 모습의 신앙인은 아니었는도 반성해 봅니다.

    많은 것을 바라시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깨닫지 못한 채

    작은~ 아니 당연한 것을 드리면서 무언가를 바라는 어리석은 저는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실날같은 믿음이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주어지는게 아니라 제가 노력하는 만큼 비례하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임을 알게 하시어

    사랑의 은총을 기다리며 목을 빼고 있는 저가 되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들이 온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제 부족한 믿음에 불을 피워 주소서.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에 기뻐하는 이들에게 더 큰 기쁨으로 함께 해 주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 guest 님의 말: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떠들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
    사실은 아직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자신있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신의 자녀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비록 아직도 당신의 자녀로 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마음만은 당신의 자녀로  무늬만이라도 당신의 자녀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제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만이라도 당신의 자녀로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에게는 위로가 되기 때문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에 용기를 갖으며
    언젠가는 당신께서 저에게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해주시리라 믿으며 기쁜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해봅니다
    아니!
    다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겠다고 ...
    당신의 자녀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고 싶은마음
    간절합니다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묵상하며
    ♬ 탈리다쿰 / 강수정 선교사


  • user#0 님의 말: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떠들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
    사실은 아직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자신있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신의 자녀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비록 아직도 당신의 자녀로 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마음만은 당신의 자녀로  무늬만이라도 당신의 자녀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제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만이라도 당신의 자녀로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에게는 위로가 되기 때문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에 용기를 갖으며
    언젠가는 당신께서 저에게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해주시리라 믿으며 기쁜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해봅니다
    아니!
    다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겠다고 ...
    당신의 자녀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고 싶은마음
    간절합니다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묵상하며
    ♬ 탈리다쿰 / 강수정 선교사


  • user#0 님의 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전에 영세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생각이 나네요
    그때는 신부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처럼 믿었지요
    신부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도 섣불리 듣지 않고
    설사 신부님께서 농담을 하셔도 무조건 믿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딸아이가 감기가 걸려  업고 성당에
    갔었는데 미사시간 내내 아파서 울어 진땀이 났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께서 딸아이에게 사탕을 주실 때
     딸아이에게 신부님의 수단을 만지게 하였습니다
    신부님의 수단이라도 만지면 딸아이의 감기가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딸아이와 제가 신부님의 수단을 만지니 신부님께서
    웃으셨습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요즈음...
     신부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처럼 믿었던 
    천진하고 순수한 저의 마음은 어디에 갔는지...

    복음을 묵상하면서

     천진하고 순수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제 멋대로 제 생각대로 판단하지 않으며
    겸손하고 믿음있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부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처럼 굳게 믿으며
    수단이라도 잡으면 병이 날 것이라고 믿었던 순수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의 믿음을 보신 당신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씀하신다면
    기쁘고 행복할텐데...
    신앙생활을 한지 20여년이 지났는데 초신자였을때보다
    믿음이 없어진 것같아  우울합니다
     어느때는 세례를 다시 받는다면 더 잘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지만 ...
    흰개꼬리 삼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듯이 세속의 욕심과
    교만과 이기심을  보물처럼 움켜지고 있는 저의 생각이
    아니!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세례를 다시 받는다해도
    세속적인 저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초신자였을때 신부님의 수단을 만지면 병이나을 것이라고
     순수하게 생각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죽음을 없애시고,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도다.
    ◎ 알렐루야.
    아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묵상하며


    ♬ 주님의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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