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는 겨자씨 같고 누룩과 같다.
작고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밀가루 속에 들어간 누룩이 결국은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과 같다.
작은 선행도 주님을 위해 베풀면 큰 응답으로 돌아온다(복음).
복음
<겨자씨는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그때에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사랑과 집착을 혼동합니다.
사랑하면 행복을 만나지만 집착하면 허무에 부딪힙니다.
사랑하면 자유로워지지만 집착하면 아쉬움에 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랑보다는 집착 쪽으로 쉽게 기울어집니다.
소유욕 때문입니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어설픈 소유욕’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사랑하고 나누고 보듬어 안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집착은 그 반대입니다. 가로채고 쌓아 놓고
자신만 즐기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무간지옥’으로 바뀝니다.
바꿀 수 있는 힘은 믿음뿐입니다.
겨자씨 같은 믿음이라도 능력을 발휘합니다.
작은 믿음이 세상을 바꾼다고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누룩과 흡사합니다.
밀가루 속에 넣으면 금방 부풀게 하는 것이 누룩입니다.
사람 사이도 믿음이 깊어지면 금방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믿음이 빠져나갔기에 집착의 관계로 남는 것이지요.
집착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믿고 사람을 믿고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미래’를 자연스레 만나게 됩니다.
늘 ‘사랑하는 마음’을 훈련을 해야 합니다.
따뜻한 눈길로 세상을 대하면 세상 역시 따뜻하게 대해 줍니다.
그러면 삶은 조금씩 밝은 모습으로 바뀝니다.
-출처 매일 미사-
하늘 나라는 겨자씨 같고 누룩과 같다.
작고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밀가루 속에 들어간 누룩이 결국은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과 같다.
작은 선행도 주님을 위해 베풀면 큰 응답으로 돌아온다(복음).
복음
<겨자씨는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그때에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사랑과 집착을 혼동합니다.
사랑하면 행복을 만나지만 집착하면 허무에 부딪힙니다.
사랑하면 자유로워지지만 집착하면 아쉬움에 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랑보다는 집착 쪽으로 쉽게 기울어집니다.
소유욕 때문입니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어설픈 소유욕’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사랑하고 나누고 보듬어 안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집착은 그 반대입니다. 가로채고 쌓아 놓고
자신만 즐기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무간지옥’으로 바뀝니다.
바꿀 수 있는 힘은 믿음뿐입니다.
겨자씨 같은 믿음이라도 능력을 발휘합니다.
작은 믿음이 세상을 바꾼다고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누룩과 흡사합니다.
밀가루 속에 넣으면 금방 부풀게 하는 것이 누룩입니다.
사람 사이도 믿음이 깊어지면 금방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믿음이 빠져나갔기에 집착의 관계로 남는 것이지요.
집착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믿고 사람을 믿고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미래’를 자연스레 만나게 됩니다.
늘 ‘사랑하는 마음’을 훈련을 해야 합니다.
따뜻한 눈길로 세상을 대하면 세상 역시 따뜻하게 대해 줍니다.
그러면 삶은 조금씩 밝은 모습으로 바뀝니다.
-출처 매일 미사-
모세는 증언판을 들고 시나이 산을 내려온다.
그 판은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은 수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다.
너무나 화가 난 모세는 십계명을 새긴 증언판을 던져 버린다.
그러고는 수송아지 우상을 불태우고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뿌려 버린다(제1독서).
제1독서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2,15-24.30-34
그 무렵 모세는 두 증언판을 손에 들고 돌아서서 산을 내려왔다.
그 판들은 양면에, 곧 앞뒤로 글이 쓰여 있었다.
그 판은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며,
그 글씨는 하느님께서 손수 그 판에 새기신 것이었다.
여호수아가 백성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진영에서 전투 소리가 들립니다.” 하고 모세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모세가 말하였다. “승리의 노랫소리도 아니고,
패전의 노랫소리도 아니다. 내가 듣기에는 그냥 노랫소리일 뿐이다.”
모세는 진영에 가까이 와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과
수송아지를 보자 화가 나서, 손에 들었던
돌 판들을 산 밑에 내던져 깨 버렸다.
그는 그들이 만든 수송아지를 가져다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리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였다.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이 형님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그들에게 이렇게 큰 죄악을 끌어들였습니까?”
아론이 대답하였다. “나리, 화내지 마십시오.
이 백성이 악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나에게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금붙이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빼서 내시오.’ 하였더니,
그들이 그것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불에 던졌더니 이 수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큰 죄를 지었다. 행여 너희의 죄를 갚을 수 있는지,
이제 내가 주님께 올라가 보겠다.”
모세가 주님께 돌아가서 아뢰었다.
“아,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만 내 책에서 지운다.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 준 곳으로 백성을 이끌어라.
보아라, 내 천사가 네 앞에 서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내 징벌의 날에 나는 그들의 죄를 징벌하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딸아이와 함께 타 본당에서 미사참례를 하게 되어 고해성사를 보는데 고해신부님께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보속을 쬐끔 아주 쬐끔 주셔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양심도 찔리고 고해성사를 성의 없이 본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미사참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도를 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고해성사를 보려니 떨려서 성사보기 전 기도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휴대폰에 성사내용을 문자로 찍는 것이었습니다 황당하기도 하고 세대차이가 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어 고해성사 볼때 하는 기도를 알려주었더니 성사를 본 후 딸아이가 눈물이 글썽거리며 고해소에서 나오면서 기도를 하여 뭉쿨하였지요 미사가 끝난 후 집에 오면서 딸아이는 신부님께서 보속도 쬐끔 주시고 자상하게 말씀을 하신다며 좋아하였습니다 사실 딸아이가 공부한다고 몇 년동안 떨어져 지내느라 성당에 함께 미사참례를 하지 못했는데 고해성사도 보고 미사참례를 함께 하여 행복하였습니다 딸아이한테 힘들어도 주일에는 성당에 가라고 당부를 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주일에는 성당에 빠지지 않았다면서 그곳 학생들한테도 신앙심이 두텁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하는 요즈음 죄스러운 마음도 들고 한편으로는 어쩔수 없다고 이만큼이라도 하는 것을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지만 초 신자만도 못한 요즈음의 신앙생활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신앙심이 깊다는 말을 들은 딸아이한테도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딸아이가 신앙심이 깊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부모로써 기본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죄책감을 갖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를 위로 하였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지금의 저의 모습이 초라할지라도 언젠가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변화되리라 굳게 믿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성실하게 비관하지 않으며 기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도다.
연중 제17주간 월요일(7/27)
말씀의 초대
하늘 나라는 겨자씨 같고 누룩과 같다. 작고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밀가루 속에 들어간 누룩이 결국은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과 같다. 작은 선행도 주님을 위해 베풀면 큰 응답으로 돌아온다(복음).
복음
<겨자씨는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그때에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사랑과 집착을 혼동합니다. 사랑하면 행복을 만나지만 집착하면 허무에 부딪힙니다. 사랑하면 자유로워지지만 집착하면 아쉬움에 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랑보다는 집착 쪽으로 쉽게 기울어집니다. 소유욕 때문입니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어설픈 소유욕’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사랑하고 나누고 보듬어 안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집착은 그 반대입니다. 가로채고 쌓아 놓고 자신만 즐기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무간지옥’으로 바뀝니다. 바꿀 수 있는 힘은 믿음뿐입니다. 겨자씨 같은 믿음이라도 능력을 발휘합니다. 작은 믿음이 세상을 바꾼다고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누룩과 흡사합니다. 밀가루 속에 넣으면 금방 부풀게 하는 것이 누룩입니다. 사람 사이도 믿음이 깊어지면 금방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믿음이 빠져나갔기에 집착의 관계로 남는 것이지요. 집착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믿고 사람을 믿고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미래’를 자연스레 만나게 됩니다. 늘 ‘사랑하는 마음’을 훈련을 해야 합니다. 따뜻한 눈길로 세상을 대하면 세상 역시 따뜻하게 대해 줍니다. 그러면 삶은 조금씩 밝은 모습으로 바뀝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생명나무연중 제17주간 월요일(7/27)
말씀의 초대
모세는 증언판을 들고 시나이 산을 내려온다. 그 판은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은 수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다. 너무나 화가 난 모세는 십계명을 새긴 증언판을 던져 버린다. 그러고는 수송아지 우상을 불태우고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뿌려 버린다(제1독서).
제1독서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2,15-24.30-34 그 무렵 모세는 두 증언판을 손에 들고 돌아서서 산을 내려왔다. 그 판들은 양면에, 곧 앞뒤로 글이 쓰여 있었다. 그 판은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며, 그 글씨는 하느님께서 손수 그 판에 새기신 것이었다. 여호수아가 백성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진영에서 전투 소리가 들립니다.” 하고 모세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모세가 말하였다. “승리의 노랫소리도 아니고, 패전의 노랫소리도 아니다. 내가 듣기에는 그냥 노랫소리일 뿐이다.” 모세는 진영에 가까이 와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과 수송아지를 보자 화가 나서, 손에 들었던 돌 판들을 산 밑에 내던져 깨 버렸다. 그는 그들이 만든 수송아지를 가져다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리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였다.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이 형님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그들에게 이렇게 큰 죄악을 끌어들였습니까?” 아론이 대답하였다. “나리, 화내지 마십시오. 이 백성이 악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나에게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금붙이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빼서 내시오.’ 하였더니, 그들이 그것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불에 던졌더니 이 수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큰 죄를 지었다. 행여 너희의 죄를 갚을 수 있는지, 이제 내가 주님께 올라가 보겠다.” 모세가 주님께 돌아가서 아뢰었다. “아,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만 내 책에서 지운다.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 준 곳으로 백성을 이끌어라. 보아라, 내 천사가 네 앞에 서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내 징벌의 날에 나는 그들의 죄를 징벌하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생명나무“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었으면”
주님! 어제는요?
딸아이와 함께 타 본당에서 미사참례를 하게 되어
고해성사를 보는데 고해신부님께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보속을 쬐끔 아주 쬐끔 주셔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양심도 찔리고 고해성사를 성의 없이 본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미사참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도를 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고해성사를 보려니 떨려서
성사보기 전 기도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휴대폰에 성사내용을 문자로 찍는 것이었습니다
황당하기도 하고 세대차이가 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어 고해성사 볼때
하는 기도를 알려주었더니 성사를 본 후 딸아이가 눈물이
글썽거리며 고해소에서 나오면서 기도를 하여 뭉쿨하였지요
미사가 끝난 후 집에 오면서 딸아이는 신부님께서
보속도 쬐끔 주시고 자상하게 말씀을 하신다며 좋아하였습니다
사실 딸아이가 공부한다고 몇 년동안 떨어져 지내느라
성당에 함께 미사참례를 하지 못했는데 고해성사도 보고
미사참례를 함께 하여 행복하였습니다
딸아이한테 힘들어도 주일에는 성당에 가라고 당부를 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주일에는 성당에 빠지지 않았다면서
그곳 학생들한테도 신앙심이 두텁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하는 요즈음 죄스러운 마음도
들고 한편으로는 어쩔수 없다고 이만큼이라도 하는 것을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지만
초 신자만도 못한 요즈음의 신앙생활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신앙심이 깊다는 말을 들은 딸아이한테도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딸아이가 신앙심이 깊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부모로써 기본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죄책감을 갖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를 위로 하였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지금의 저의 모습이 초라할지라도 언젠가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변화되리라 굳게 믿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성실하게 비관하지 않으며 기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도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