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24세에 사제품을 받은 그는 17년 간 본당 신부로 사목하다가
주교가 되었고, 훗날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레오 13세 교황의 뒤를 이어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된
비오 10세 교황은 교회 혁신을 과감하게 시도했고,
광대한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였다.
1914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1954년에 비오 12세 교황이 그를 성인 반열에 올렸다.
말씀의 초대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질문한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답하신다.
그리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두 번째 계명이라고 하신다(복음).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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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8/21)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24세에 사제품을 받은 그는 17년 간 본당 신부로 사목하다가 주교가 되었고, 훗날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레오 13세 교황의 뒤를 이어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된 비오 10세 교황은 교회 혁신을 과감하게 시도했고, 광대한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였다. 1914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1954년에 비오 12세 교황이 그를 성인 반열에 올렸다.
말씀의 초대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질문한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답하신다. 그리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두 번째 계명이라고 하신다(복음).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삶은 ‘미워하고 있다면’ 복음 정신이 아닙니다. 남에게는 봉사하면서 자신에게는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기쁨의 헌신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자신의 삶에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받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어진 것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생활도 가능해집니다. 예수님 당시 유다교의 율법은 ‘613조항’이었습니다. 복음의 율법 교사는 그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큰 계명이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이른바 ‘사랑의 이중 계명’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 조항에 묶여 전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단순했던 율법 정신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랑은 ‘베푸는 행위’입니다. 많이 받으면 많이 베풀 수 있습니다. 애정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넉넉한 애정의 관계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자주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도와주셨던 사건들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은 따뜻함입니다. 차가운 현실에서 훈훈함을 느끼게 하는 ‘힘’입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8/21)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24세에 사제품을 받은 그는 17년 간 본당 신부로 사목하다가 주교가 되었고, 훗날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레오 13세 교황의 뒤를 이어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된 비오 10세 교황은 교회 혁신을 과감하게 시도했고, 광대한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였다. 1914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1954년에 비오 12세 교황이 그를 성인 반열에 올렸다.
말씀의 초대
룻은 ‘모압’ 여자로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모범적인 여인으로 남아 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극진히 섬겼기 때문이다. 나오미의 가족은 베들레헴 출신이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어 요압 지방에 살러 갔다가, 룻을 며느리로 맞이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섭리였다(제1독서).
제1독서
<나오미는 모압 출신 룻과 함께 베들레헴에 돌아왔다.> ☞ 룻기의 시작입니다. 1,1.3-6.14ㄴ-16.22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그러다가 마흘론과 킬욘, 이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말씀에 당신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할 정도로
사랑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필요에 의해서
제가 아쉽고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제가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바랬습니다
그것도 간절히 아주 절절하게...
그리고 제가 원하는대로 이루워지지 않았을때는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왜? 저에게만 시련을 주시냐고 따지고 당신을 믿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하였습니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요행만을 바라기도 했지요
당신을 도깨비방망이로 생각했지요
예수님! 제가 이렇게 당신을 믿고 있으니 제가 원하는대로
해주셔야합니다 알았죠?
등등 참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신께...
아니! 협박을 했지요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지 않으면
무능한 당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
죄만스럽습니다
저의 무례와 잘못을 용서해주십시오
사랑이신 당신께서 용서해주시라 믿으며
당신의 뜻을 헤아려 당신의 자녀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기를 기도해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당신의 뜻을 따라사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리라 믿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묵상하며
♬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 옹기장이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1. 말씀읽기:마태22,34-40
2. 말씀연구
율법교사는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질문을 합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똑똑한 나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율법에만 전념하는 율법학자들도 못 푸는 문제는 어찌 당신이 풀겠는가? 어디 횡설수설하는 얘기나 들어볼까?”하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질문을 통해서 평생을 바쳐도 풀지 못할 숙제를 하게 됩니다. 그 많은 율법 조항들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큰 것인지를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가끔은 교만한 생각들을 통해서 커다란 것을 배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남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을 놀리기 위해서 물어보지 말고, 내가 배우기 위해서 물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사두가이파의 패배(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7형제와 한 여자와의 천국에서의 혼인 이야기를 꺼냈다가 완패당함)를 보고 기뻐한 사람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있다고 믿었는데 예수님께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 하나인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시비를 걸러 왔습니다. 예수님을 어려운 궁지 속으로 몰아넣어 보려는 속셈입니다. 그런데 본전이나 찾을지 모르겠네요(마르코 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는 독실한 사람이 질문을 하고 칭찬을 받습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유다교의 계명에는 613개가 있었습니다. 248개는 명령(…을 하라)이고 365개는 금령(..을 하지 마라)입니다. 613가지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가벼운 것은 보상을 하면 용서되지만, 무거운 것은 그것을 위반하게 되면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은 그것을 큰 계명, 작은 계명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랍비들 사이에서도 어떤 계명이 첫째가는 계명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무슨 말을 할까요? 아니 이 질문을 “당신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계명을 가장 큰 계명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이 말씀은 신명기 6장4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른이 된 남자 유다인이 매일 아침 외우던 중대한 기도의 시작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계명,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히브리 사람들의 심리학에서 지혜가 담긴 자리였습니다. 목숨을 다하고는 정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물리적인 모든 열정을 가지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다한다는 것, 목숨을 다한다는 것, 정신을 다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기에, 목숨을 다하여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기에, 그리고 정신을 다하여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기에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것입니다. 봉사를 하다가도 냉담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아서고, 나 좋은 대로만 생각하고, 나 중심으로 행동하는 것. 그 이유가 바로 신앙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목숨을 다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정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첫 번째 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그분을 첫 자리에 모시면 이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여 둘째 계명을 가르치십니다. 유다인에게 있어서 이웃은 친구들, 동료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계십니다. 사마리아안과 이방인 그리고 유다인, 세리와 죄인 그리고 생활이 문란한 여인과 의인이라고 보여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 친구, 적 모두가 이웃입니다. 예수님의 이웃 개념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보편적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런 구별 없이, 종교, 지위, 남녀노소 등을 떠나 모든 이가 이웃이고, 우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필요한 경우 용서를 받을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사실 나는 나 자신에게 참 관대합니다. 이해하려고 하고, 언제나 너그럽습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형제자매들에게 돌린다면 참 좋은 관계를 형성할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남을 나처럼 만들려고 하다가 포기를 합니다. 남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나와 다른 부분은 틀리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를 판단하게 되고, 결국에는 단죄하고 멀어지게 됩니다.
나의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틀을 버려야 합니다. 내 틀을 버려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 틀을 버리지 않으면 온전히 그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남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그 자존감이 낮아지면 결국 비교하게 되고, 남이 잘되면 배 아프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시기 질투를 하게 됩니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 또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도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방인 여인 룻이 등장합니다. 모압 여인 룻은 가뭄을 피해 모압 땅으로 이주해온 나오미의 두 며느리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죽고 아이도 죽었지만 어머니 곁에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고향에 기근이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두 며느리에게 “자, 각자 제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남편들과 나에게 해 준 것처럼 주님께서 너희에게 자애를 베푸시기를 빈다. 또한 주님께서 너희가 저마다 새 남편 집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도록 배려해 주시기를 바란다.”하며 며느리들을 돌려보내려 합니다. 사실 결혼을 통해서 가족이 되었지만 아들이 죽고 손자들이 없는 상태에서 며느리를 붙들고 있는 것은 욕심입니다. 하루빨리 재가를 시키는 것이 며느리를 위한 방법입니다.
또 남편이 없고, 아이도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는 며느리의 상황도 쉽지 않습니다. 며느리들은 울며 돌아가려 하지 않았지만 나오미는 끝까지 돌려 보내려 합니다. 그렇게 해서 며느리(오르파) 하나는 떠났지만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룻기 1.16-17)
사실 며느리도 이웃이고, 시어머니도 이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사랑할 때, 아무리 나쁜 시어머니라도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천성이 받쳐 주지 않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욕심만 챙기다가 죽게 됩니다. 또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며느리에게 “네가 가는 곳으로 나도 가고, 네가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겠다. 네 가족이 내 가족이고, 네가 믿는 하느님이 나의 하느님시다. 네가 숨을 거두는 곳에서 나도 죽기를 바라고, 네 곁에 묻히기를 바란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너와 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단다. 나는 내 딸처럼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시어머니가 말한다면 감동하지 않을 며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비록 처음에는 거짓으로 대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진실로 바뀔 것입니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교의 율법 규정을 십계명으로 환원하셨고, 십계명은 다시 이렇게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환원하셨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결국 사랑의 이중계명,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명쾌한 대답입니다. 유다의 랍비들은 율법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계명을 명백한 말로 간추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힐렐르(기원전 20년)는 “네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며 다른 계명은 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명쾌하십니다.
이제 인간은 랍비들이 말하는 248가지의 계명과 365조목의 금령들을 주의해서 준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두 가지 계명만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모든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참된 뜻을 이루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모든 이들을 편히 쉬게 해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계명을 통하여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셔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셨고, 당신의 몸을 바쳐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1요한4,20-21)
이 말씀에 비추어서 내가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이웃과 형제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을 들으면서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실천하기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눠 봅시다.
②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쉬울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족들을 어떻게 더 사랑할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가족들 때문에 상처받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