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1. 말씀읽기:루카11,42-46
2. 말씀연구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불행 선언을 하십니다. 자질구레한 계명은 지키고 있으면서도 중요한 계명은 지키지 않는 사람들.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해 봅시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구약에서는 올리브기름과 포도주와 곡식에 한해 십 분의 일세를 바쳤습니다(민수18,12).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징세 범위가 확대되어 과일과 가축의 경우에도 십 분의 일세를 바쳤습니다(레위27,30; 신명 14,22-23).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는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 따위 양념 향신료에까지 확대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의 지나친 열심에 따라 십일조의 내용에 일반 향료 식물까지 포함시켜 그 규정을 터무니없이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제멋대로 확대시켜 놓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으로 중요한 것들은 소홀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질구레한 계명의 예로서 먹는 야채는 10분의 1을 바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다인은 밀과 포도주와 기름의 세 가지 세를 바칠 의무가 있었는데 경건하다고 자처하고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땅에서 거둔 것이라면 어떤 생산물이라도 그 세를 바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를 바치는 행위를 나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보다는 그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율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호세아서 6 장 6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내가 반기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재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 다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배자들은 제물을 바쳐야 하지만 동시에 가난한 자들을 등쳐서 이익을 얻기를 거부하고 일할 때나 임금을 지불할 때 정직하며 결혼 계약에 충실하고 약한 자와 억눌린 자들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진실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예언자들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요구하였습니다.
즈카르야 예언자는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나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너희는 사실대로 공정한 재판을 하여라. 동족끼리 서로 신의를 지키며 열렬히 사랑하여라. 과부와 고아, 더부살이와 영세민을 억누르지 말고 동족끼리 해칠 마음을 품지 말아라. 이렇게 일러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귀담아 듣기는커녕 오히려 외면한 채 귀를 막았다.”(즈카르야 7,9-11)
정말 중요한 것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의로움이 가득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로움은 정의와 자비와 신의로 드러날 것입니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바리사이들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했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높아지려는 사람은 결국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교만과 허영을 꼬집으십니다. 참으로 존경받을 값진 것은 겸손과 마음의 순결입니다. 그럴 때 더욱 높은 자리에 앉혀 주고, 더욱 깊이 진실한 마음으로 인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제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미사 중에 제일 높은 자리에 앉는 것도 사제요(아참! 성가대가 더 높군요^*^), 신자들과 함께 식당에 가면 중앙에 앉는 것도 사제요, 성당에서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인사 받는 것도 사제이니 말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더욱 겸손하게 신자들을 섬겨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그런데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회장이니까”하면서 어깨에 힘을 주거나, 오랫동안 성당에 다녔다고 해서 텃세를 부리거나 마치 자신이 교회의 중심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을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과월절이 가까워지면 유다인은 무덤을 희게 칠하였습니다. 무덤에 접촉하면 이렛 동안 부정(민수19,16;루카11,44)을 탓기 때문에 무덤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부정을 탄 사람들은 기도나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도 티베리아 근교에 산재한 율사들의 무덤에 가보면 아예 무덤 옆에다가 횟가루와 반죽 통을 마련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덤이라는 것이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그 속은 썩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 고 있습니다. 햇빛을 받은 흰 무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웠으나 안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겉으로는 의로운 사람같이 보이지만 사람들에게 그들의 참된 본질을 속이고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모욕적인 꾸짖음입니까?
화장 발에 속지 말고, 조명 발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감추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을 쓰더라도 감추려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리 좋게 포장을 했더라도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즘은 포장 기술이 발달해서 선물 값 보다는 포장 값이 더 나가는 느낌을 주는 것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 교사들의 유순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 교사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 교사들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생활로 실천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하신 비난은 곧 율법 교사들에게 하신 비난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 율법학자들 까지도 모욕하시는 것입니다.”그럴 만도 합니다. 대놓고 욕을 하고 계시니. 그런데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면 어떻습니까? 그 말을 잘 받아들이는 편입니까?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은 “내가 너랑 친해서 하는 말인데, 너는 이게 나빠!”라고 합니다. 친한 사람의 말도 귀에 거슬리는데 하물며……,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화살이 바리사이에서 율법학자로 넘어갑니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율법교사들은 스스로를 예언자들과 같은 위치에 두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예언자들이나 모세 또는 율법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들의 말에도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백성들에게 자기네가 해석한 율법규정을 엄격히 지키라고 가르쳤으나 자기 자신들에게는 법률상 도피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가르친 것마저 자기네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위선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법대로 살지 않고, 윤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윤리적으로 살지 않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그런데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니 큰일입니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행동으로는 옮기려 하지 않는 나의 모습.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그것에 관심이 없는 모습. 그런 모습을 내 옆에 있는 친구가 알고 있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내가 어떤 말을 할 때, 그냥 웃고 말지 않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예수님은 참으로 멋진 분이십니다. 아닌 것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분.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군중들은 얼마나 속 시원했을까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아닌 것을 아니라고 삶에서 말하고 있습니까?
② 타성에 젖어서 살아가다보면 잊고 사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10년 전의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10년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떤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를 묵상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