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1515년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태어났다.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평생을 완덕의 길에 정진하며 사셨다. 건강이 약해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수도회 개혁을 추진하였고, 수도 생활과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1582년 세상을 떠났으며, 1622년 시성되었다. 1970년에 바오로 6세 교황은 성녀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자신들의 일을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주님께서는 ‘율법의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시지만 그들은 오해하고 있다. 오히려 율법을 해친다고 판단하여 예수님을 없애려 한다(복음).
    복음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옛 중국의 요순 시대 이야기입니다. 요 임금은 왕위를 ‘허유’라는 사람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하지만 허유는 싫다고 사양하며 도망을 갑니다. 도피하던 그가 어떤 사람의 집에 묵었는데, 집주인은 허유가 자신의 모자를 훔쳐 갈까 봐 감춰 둡니다. 허유는 천하를 마다하고 도망쳐 온 사람인데, 집주인은 모자를 잃을까 봐 방비를 한 것입니다. 허유라는 사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엉뚱하게 대합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예수님을 몰랐기에 독한 앙심을 품습니다. 예수님을 옭아매고 곤경에 빠뜨리려 합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을 율법을 망가뜨리러 오신 분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 오해가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멈추시거나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조용히 당신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누구나 오해하고 오해를 받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앙심과 보복이 떠오른다면 극복해야 합니다. 감정에 휩쓸리면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내와 기도로써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애쓴다면 ‘예수님을 닮는 행동’이 됩니다. 내 인생을 떠받칠 또 하나의 ‘십자가를 지는 행위’가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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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1515년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태어났다.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평생을 완덕의 길에 정진하며 사셨다. 건강이 약해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수도회 개혁을 추진하였고, 수도 생활과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1582년 세상을 떠났으며, 1622년 시성되었다. 1970년에 바오로 6세 교황은 성녀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자신들의 일을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주님께서는 ‘율법의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시지만 그들은 오해하고 있다. 오히려 율법을 해친다고 판단하여 예수님을 없애려 한다(복음).
      복음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옛 중국의 요순 시대 이야기입니다. 요 임금은 왕위를 ‘허유’라는 사람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하지만 허유는 싫다고 사양하며 도망을 갑니다. 도피하던 그가 어떤 사람의 집에 묵었는데, 집주인은 허유가 자신의 모자를 훔쳐 갈까 봐 감춰 둡니다. 허유는 천하를 마다하고 도망쳐 온 사람인데, 집주인은 모자를 잃을까 봐 방비를 한 것입니다. 허유라는 사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엉뚱하게 대합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예수님을 몰랐기에 독한 앙심을 품습니다. 예수님을 옭아매고 곤경에 빠뜨리려 합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을 율법을 망가뜨리러 오신 분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 오해가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멈추시거나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조용히 당신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누구나 오해하고 오해를 받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앙심과 보복이 떠오른다면 극복해야 합니다. 감정에 휩쓸리면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내와 기도로써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애쓴다면 ‘예수님을 닮는 행동’이 됩니다. 내 인생을 떠받칠 또 하나의 ‘십자가를 지는 행위’가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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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10/15)


      말씀의 초대
      인류는 예수님을 통하여 의롭게 되었다.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지만,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으로 되찾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믿음을 굳건히 하여 주님의 의로움을 지켜 나가야 한다. 하느님은 온 인류의 주님이시다(제1독서).
      제1독서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3,21-30ㄱ 형제 여러분,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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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려니 온갖 잡념들로 머릿 속이 복잡합니다
     몇 시간째 복음말씀을 읽고 또 읽어보지만
    묵상은 되지 않고 정신이 몽롱합니다 술에 취한 것처럼...
    왜 그럴까? 
    복음묵상을 한 두해 한 것도 아닌데...
    정신 줄을 놓고 사는 것같습니다
    어느 때는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헛것이 보이기도 하지요
    겁도 나고 무섭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성호경을 긋고 또 긋고 주모경을 외우기도 하지만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밤마다 생각이 나서 무서워 잠이 
    오지 않아 피곤하고 정신이 몽롱합니다
    두렵고 무섭고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말씀이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
    당신을 믿고 세례를 받은지도 20여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
    저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요즈음...
    저의 믿음이 부족해서인 것같습니다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저에게는 부족한 것같습니다
    저에게 끊임없이 시련이 있다고 생각이 되는 것은
    저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저에게는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부족한가 봅니다
    끊임없는 시련을 겪으면서 좌절도 하고 오기도 생기고
    당신께 저에게만 고통을 주신다고 심술도 부려보지만
    아직도 저에게는 시련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우울합니다
    지치고 또 지치고 어느 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요
    저의 부족한 믿음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 씩 변덕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하루종일 수시로 성호를 굿고 있는
    저를 보면서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은 저의 믿음보다는 크다는 생각에
    위로가 됩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찰도 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저의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묵상하며


    ♬ 아무것도 너를

  4. user#0 님의 말: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려니 온갖 잡념들로 머릿 속이 복잡합니다
     몇 시간째 복음말씀을 읽고 또 읽어보지만
    묵상은 되지 않고 정신이 몽롱합니다 술에 취한 것처럼...
    왜 그럴까? 
    복음묵상을 한 두해 한 것도 아닌데...
    정신 줄을 놓고 사는 것같습니다
    어느 때는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헛것이 보이기도 하지요
    겁도 나고 무섭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성호경을 긋고 또 긋고 주모경을 외우기도 하지만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밤마다 생각이 나서 무서워 잠이 
    오지 않아 피곤하고 정신이 몽롱합니다
    두렵고 무섭고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말씀이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
    당신을 믿고 세례를 받은지도 20여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
    저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요즈음...
    저의 믿음이 부족해서인 것같습니다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저에게는 부족한 것같습니다
    저에게 끊임없이 시련이 있다고 생각이 되는 것은
    저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저에게는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부족한가 봅니다
    끊임없는 시련을 겪으면서 좌절도 하고 오기도 생기고
    당신께 저에게만 고통을 주신다고 심술도 부려보지만
    아직도 저에게는 시련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우울합니다
    지치고 또 지치고 어느 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요
    저의 부족한 믿음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 씩 변덕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하루종일 수시로 성호를 굿고 있는
    저를 보면서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은 저의 믿음보다는 크다는 생각에
    위로가 됩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찰도 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저의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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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user#0 님의 말: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을 믿기만 하면…
    당신을 사랑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해결이 되는 줄 알았던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외인들은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는데
    저만 당신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미움을 받았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나만 ?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은지…
    정말 힘들고 괴롭고 억을 할 때도 많았지요
    그리고 당신을 원망도 하면서 때로는 신앙생활을 포기할까도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그렇게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대충 대충 그렇게 신앙생활도 적당히…
    사회생활도 적당히 세상과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타협하면서
    기회주의자처럼 살았습니다
    당신의 뜻이 어디에 계신지 모르는체….
    그동안의 저의 삶은 수박 겉 핣기 식이었습니다
    뜨겁지도 않으면서 차갑지도 않게…
    한마디로 당신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모습으로 살았지요
    하지만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 할 것이라는 말씀에….
    사랑이란 달콤한 것만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랑이란 참고 견디는 인내라는 것을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말씀을 성찰하며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당신을 믿는 것은
    행복만이 아닌 인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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