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말씀의 초대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핑계를 대며 거절한다. 모두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길거리에서 만난 이들을 데려와야 했다.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 초대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그들 대신에 이방인들이 구원의 잔치에 초대되고 있다는 비유다(복음).
    복음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5-24 그때에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늘 나라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약은 유다인만이 초대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알리십니다. 그것이 복음의 비유 말씀입니다. 처음에 초대받은 이들은 모두 하찮은 이유로 거절합니다. 그들은 ‘현실의 삶’을 핑계 대며 불참을 선언합니다. 잔치를 베푼 주인의 호의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이렇듯 구원의 장애는 ‘핑계’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도 여차하면 반대할 ‘구실’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기적을 보면서도 엉뚱하게 해석했습니다. 한쪽만 보는 ‘편견’의 결과입니다. 스스로 구원의 잔치를 거절하는 행동들입니다. 우리 역시 핑계를 만들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성당 일을 부탁받으면 피하려 들고, 교회 단체에 들라고 하면 난처한 표정이 되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언젠가 하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입니다. 세례성사로 이미 그러한 자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는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격에 어울리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불공평도 받아들이고, 억울함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구원의 힘’은 반드시 우리 삶을 격상시켜 줍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가 너를 불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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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말씀의 초대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핑계를 대며 거절한다. 모두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길거리에서 만난 이들을 데려와야 했다.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 초대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그들 대신에 이방인들이 구원의 잔치에 초대되고 있다는 비유다(복음).
      복음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5-24 그때에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늘 나라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약은 유다인만이 초대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알리십니다. 그것이 복음의 비유 말씀입니다. 처음에 초대받은 이들은 모두 하찮은 이유로 거절합니다. 그들은 ‘현실의 삶’을 핑계 대며 불참을 선언합니다. 잔치를 베푼 주인의 호의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이렇듯 구원의 장애는 ‘핑계’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도 여차하면 반대할 ‘구실’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기적을 보면서도 엉뚱하게 해석했습니다. 한쪽만 보는 ‘편견’의 결과입니다. 스스로 구원의 잔치를 거절하는 행동들입니다. 우리 역시 핑계를 만들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성당 일을 부탁받으면 피하려 들고, 교회 단체에 들라고 하면 난처한 표정이 되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언젠가 하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입니다. 세례성사로 이미 그러한 자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는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격에 어울리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불공평도 받아들이고, 억울함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구원의 힘’은 반드시 우리 삶을 격상시켜 줍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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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말씀의 초대
      신앙인은 서로 다른 은사를 지니고 있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다. 봉사의 은사를 받은 이는 봉사하는 일에 전념해야 하며,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가르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그것이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는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2,5-16ㄴ 형제 여러분, 우리는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에 맞게 예언하고, 봉사면 봉사하는 데에 써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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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비자교리를 받았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당신이 좋아 당신의 자녀가 되고 싶어 스스로
    성당에 가서 예비자교리를 받으면서 동네사람들한테
    성당에 다닌다고 자랑을 하며 함께 가자고 했던 기억들이^*^
    그때는 교리를 잘 몰랐어도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조용했던 동네에 성당이 들어서서 시끄럽다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성당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개신교신자였지요
    당신을 믿는 사람답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사람들이 당신을 모욕하고 동네 한가운데 성당이 있어
    불편하다고 불평을 하여도 그런 동네사람들한테도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니!
    당신이 좋아서 그랬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도 변하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요즈음...
    예전처럼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한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전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예전보다 변한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믿음도 사람도 신앙도 ...
    모두 다...
    참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세례를 받기 전보다 못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할 수 있는지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합리화를 시키는 저를 봅니다
    오늘은 이래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하고
    어제는 저래서 하지 못했고
    내일은 어쩔 수 없어서 성당의 행사에 가지 못하고...
    이래저래 핑계를 대면서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핑계를 대지 않으며
    예전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할때의 일시적인 기분이 아닌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려 예비자교리를 받았을 때처럼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비자교리를 받았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당신이 좋아 당신의 자녀가 되고 싶어 스스로
    성당에 가서 예비자교리를 받으면서 동네사람들한테
    성당에 다닌다고 자랑을 하며 함께 가자고 했던 기억들이^*^
    그때는 교리를 잘 몰랐어도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조용했던 동네에 성당이 들어서서 시끄럽다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성당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개신교신자였지요
    당신을 믿는 사람답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사람들이 당신을 모욕하고 동네 한가운데 성당이 있어
    불편하다고 불평을 하여도 그런 동네사람들한테도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니!
    당신이 좋아서 그랬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도 변하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요즈음...
    예전처럼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한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전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예전보다 변한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믿음도 사람도 신앙도 ...
    모두 다...
    참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세례를 받기 전보다 못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할 수 있는지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합리화를 시키는 저를 봅니다
    오늘은 이래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하고
    어제는 저래서 하지 못했고
    내일은 어쩔 수 없어서 성당의 행사에 가지 못하고...
    이래저래 핑계를 대면서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핑계를 대지 않으며
    예전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할때의 일시적인 기분이 아닌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려 예비자교리를 받았을 때처럼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묵상하며

  5. guest 님의 말: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

    1. 말씀읽기:루카14,15-24 혼인 잔치의 비유 (마태 22,1-10)

    2. 말씀연구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누구에게 초대를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기쁨입니다. 그런데 그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나입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내 일이 우선인 사람. 그가 바로 나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식사를 하는 중에 한 사람이 하느님 나라를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될 사람.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을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이것은 하느님 나라에서 있을 의인의 행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사람도 자신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당연히 자신이 하느님 나라의 빵을 먹게 될 것임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충실하게 율법의 규정을 지키고 있었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느님의 잔치에도 특별한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초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비유를 드십니다. 세상에 대한 근심을 잊고 초대에 알맞은 응답이 있어야 만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아마 잔치를 연 사람은 지위가 높은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주인은 친절하게도 약속을 다시 환기시키고 혹시 길 안내를 위해 종들을 보냈습니다. 초대받은 이들을 향한 예의는 모두 갖춘 것입니다. 이 종들은 예언자들을 의미합니다. 즉 유다인을 회개와 믿음으로 이끌려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잔치에 초대한 이의 마음을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밭을 샀기에, 겨릿소 다섯 쌍을 샀기에, 장가를 들었기에…이렇게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보잘것없는 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기할 수도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려고 잔치 초대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기 싫은 것이 있으면 무슨 핑계를 대서든지 빠지려고 합니다. 그 자리가 나를 위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빠져 나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를 초대 안 해주면 얼마나 서운할까요?


     오늘 이 잔치는 하느님 나라에로의 초대입니다. 회개하라고 부르시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그런데 회개에는 관심이 없고, 하느님 나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수님께도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바로 오늘 이 식탁에 자리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구원에 참여할 것이라고 장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영세를 받았다고 해서, 내가 성직자 수도자라고 해서, 내가 본당이나 공동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100% 구원 받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회개하고 깨어있으면서 그분의 초대에 응해야 만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주인은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거절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잔치에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이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부릅니다. 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말하는 죄인, 즉 세리나 창녀나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주인은 이들을 억지로 끌어서 잔치에 초대했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억지로일까요? 사실 억지로 끌려갔다는 것이 그들이 들어가기 싫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삶의 모습이 죄로 얼룩져 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인인 자신들과 함께 식사를 같이 하고, 치유해 주시고, 말씀을 전해 주시니 그들은 황송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하느님 나라에 초대를 받았지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재산에 대한 애착과 이기적으로 희생을 피하려고 하는 마음은 하느님 나라의 발전을 가로 막습니다. 이와는 달리 모든 것에서 벗어난다면 내 안에서 하느님은 쉽게 역사하실 것이며, 나를 통해서 당신 나라를 키워 나가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영화 보러 가야하고, 내일은 등산하러 가야하고, 다음주는 결혼식 가야하고, 또 그 다음주는 친구와 약속이 있고…

    하느님의 초대에는 언제나 뒷전인 나는 과연 하느님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복음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너무도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이끄심에 의해서 황송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억지로 자리에 앉게 해 주셨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그 일을 잊어버리고 당연히 자격이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당연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은 나의 권리가 아니라 은총인데 그것을 까먹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② 내가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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