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다.
양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는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만 생각한다.
주님께서도 목자의 심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계신다.
그런데도 자신만을 믿고 살려는 이들이 많다.
회개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행위다(복음).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10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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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목요일(11/5)
말씀의 초대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다. 양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는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만 생각한다. 주님께서도 목자의 심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계신다. 그런데도 자신만을 믿고 살려는 이들이 많다. 회개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행위다(복음).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10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되찾은 양’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때문에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입니다. 목자는 남아 있는 양들에게 변고가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개의치 않습니다. 찾은 뒤에는 꾸중도 하지 않고, 잘못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목자는 자기 양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렇듯 복음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조건 없이’ 용서하시는 그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받아들이며 사랑해야’ 주님을 닮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용서하셨는데, 자신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았건만, 또 고해성사를 봅니다. 때로는 총고백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받은 죄를 다시 들추어냅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주님께서는 용서하셨는데, 자신은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칫 영적 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죄와 연관시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사랑과 연관된 주님’을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밝은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로 끝이 아닙니다. 회개의 활동이 뒤따라야 완결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삶입니다. 그러면 은총이 끌어 줍니다. 뉘우침만 있고 ‘사랑의 활동’이 없었기에,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31주간 목요일(11/5)
말씀의 초대
신앙인의 삶은 주님 안에 있다. 죽은 뒤에도 주님의 계획 아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이로써 산 이든, 죽은 이든 모두 주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4,7-12 형제 여러분,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모든 혀가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한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1. 말씀읽기: 루카 15,1-10
되찾은 양의 비유 (마태 18,12-14)
되찾은 은전의 비유
2. 말씀연구
잃었던 양 한 마리와 잃었던 은전을 찾고 기뻐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드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못 마땅히 여기며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고,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남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내가 바로 죄인이니 하느님께서는 나의 회개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세리들도 있었고, 죄인들도 있었습니다. 이 죄인들은 율법학자들이 보기에 율법을 못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의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세리는 탐욕과 부정의 대명사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여 로마인들에게 바치고 있으니 역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접촉에 의해서도 부정해진다고 생각했기에 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누구나 받아들여주시고,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해 주십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예수님께로 모여 드는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나를 반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반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이들은 왜 예수님을 비난할까요?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어울려서인지도 모르고,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하셔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든 사람들을 이미 죄인으로 단정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율법학자들이 멸시한다고 해서 세리들이 죄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안다는 사람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들을 무시했지만, 그래서 죄인 취급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당신께 오는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하여 두 가지의 비유를 이야기 하십니다. 이 두 가지 비유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양을 백 마리나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은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광야를, 계곡을 누빕니다. 당시에는 짐승들이 구멍이나 우물에 빠지는 것은 늘 있었던 일입니다.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이 양을 어디서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의 주인은 끝내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백 마리나 양이 있는 그 부자에게 한 마리 양은 별것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인은 길 잃은 양에 대한 연민이 있습니다.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그리도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함께 기뻐해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길 잃은 죄인 하나를 구원하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내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회개한 죄인이 공덕이 있어서 죄에 빠지지 않았던 의인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의인 아흔 아홉은 언제나 하느님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길을 벗어난 한명의 죄인은 언제나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녀가 회개를 하니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렇다고 큰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이 여자는 무척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로 큰 돈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에게 있어서 열 닢의 동전은 전 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은전 한 닢은 하루의 노동의 대가가 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과 같은 액수인 듯 합니다.
이 부인이 은전 한 닢을 찾고자 하는 마음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도 그런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의 길을 밝혀 주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까지도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이 여인의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잃어버렸던 은전을 찾았기에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함께 기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하시면서 느끼시는 기쁨이 바로 이런 기쁨입니다. 그들이 바로 잃었던 양이고, 그들이 바로 잃었던 은전입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이웃”(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 함께 기뻐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야 하고, 예수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해 주십니다. 내가 그렇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 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변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받고 있는 나도 사랑밖에는 몰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내가 생각하기에 저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그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② 길 잃은 양과 길을 떠난 양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길 잃은 양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목자와 동료를 잃어버린 양이고, 길을 떠난 양은 목자와 양의 무리가 싫어서 떠난 양입니다. 신앙 안에서 길 잃은 양과 길을 떠난 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