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가난한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


연중 제32주일(11/8)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입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십니다. 그 여인이 바친 동전 두 닢은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자신의 하루를 봉헌한 셈입니다. 정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역시 매 주일 헌금을 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헌금에도 애정을 담아야겠습니다. 주님의 이끄심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닢을 바쳤다. 그리스 화폐 중 가장 작은 단위가 렙톤이다. 동전 두 닢을 바쳤다는 말과 같다. 결코 주목받을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여인의 마음을 보셨다. 하루 생활비를 바쳤기 때문이다.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헌금의 본질은 정성에 있다는 가르침이다(복음).
    복음
    <저 가난한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생활비를 다 바친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여인은 바쳤습니다. 적은 돈으로 살고 있었기에 쉬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희생을 각오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든 삶에 만족하면 부자이고, 만족하지 못하면 가난한 사람입니다. 여인은 만족하며 살았기에 바쳤을 것입니다. 삶을 저주하고 있었다면 바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은 부자입니다. 가난을 돈으로만 논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가난입니다. 늘 일상에 쫓겨 사는 이들도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바치는 것도 헌금이 됩니다.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알짜배기 시간’을 바치는 정성입니다. ‘주일’에 제일 중요한 일로 ‘미사 참여’를 정하고 만사에 앞서 실천한다면 복음의 여인을 닮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헌금을 보고 계십니다.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어떤 ‘정성으로’ 바치는지 보고 계십니다. 돈을 내는 것만이 봉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 주간 겪었던 억울함과 아픔도 함께 바친다면 봉헌의 깊이는 더해집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좋은 일이건 궂은일이건, 그분께서 주셨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일수록 살아 있는 봉헌이 됩니다. 매 주일 우리가 바치는 헌금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달라진 삶’을 체험하게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Amazing Grace (놀라운 은총) - Jessye N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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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32주일(11/8)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입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십니다. 그 여인이 바친 동전 두 닢은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자신의 하루를 봉헌한 셈입니다. 정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역시 매 주일 헌금을 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헌금에도 애정을 담아야겠습니다. 주님의 이끄심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닢을 바쳤다. 그리스 화폐 중 가장 작은 단위가 렙톤이다. 동전 두 닢을 바쳤다는 말과 같다. 결코 주목받을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여인의 마음을 보셨다. 하루 생활비를 바쳤기 때문이다.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헌금의 본질은 정성에 있다는 가르침이다(복음).
      복음
      <저 가난한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생활비를 다 바친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여인은 바쳤습니다. 적은 돈으로 살고 있었기에 쉬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희생을 각오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든 삶에 만족하면 부자이고, 만족하지 못하면 가난한 사람입니다. 여인은 만족하며 살았기에 바쳤을 것입니다. 삶을 저주하고 있었다면 바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은 부자입니다. 가난을 돈으로만 논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가난입니다. 늘 일상에 쫓겨 사는 이들도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바치는 것도 헌금이 됩니다.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알짜배기 시간’을 바치는 정성입니다. ‘주일’에 제일 중요한 일로 ‘미사 참여’를 정하고 만사에 앞서 실천한다면 복음의 여인을 닮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헌금을 보고 계십니다.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어떤 ‘정성으로’ 바치는지 보고 계십니다. 돈을 내는 것만이 봉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 주간 겪었던 억울함과 아픔도 함께 바친다면 봉헌의 깊이는 더해집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좋은 일이건 궂은일이건, 그분께서 주셨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일수록 살아 있는 봉헌이 됩니다. 매 주일 우리가 바치는 헌금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달라진 삶’을 체험하게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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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32주일(11/8)


      말씀의 초대
      사렙타 마을의 과부는 이사야 예언자를 모셨기에 기적을 체험한다. 단지에 든 밀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이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자들을 제쳐 두고 가난한 과부에게 당신의 기적을 베푸신 것이다(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하늘 나라로 가셨다. 그리고 때가 되면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다(제2독서).
      제1독서
      <과부는 제 밀가루로 작은 빵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가져다주었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7,10-16 그 무렵 [예언자] 엘리야는 일어나 사렙타로 갔다. 그가 성읍에 들어서는데,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자를 부르고는, “마실 물 한 그릇 좀 떠다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그 여자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 “빵도 한 조각 들고 오면 좋겠소.”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엘리야가 과부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24-28 그리스도께서는, 참성소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곳에, 곧 사람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대사제가 해마다 다른 생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듯이, 당신 자신을 여러 번 바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세상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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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봉헌하는 과부의 믿음을 보면서
    미사 때마다 계산하고 또 계산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봉헌하는 모습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는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봉헌금을 성의껏 해야 한다고 떠들어 댔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겉 치례로 신앙생활을 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남에게 보이려고 ...
    신앙생활도 봉헌금도 봉사도 자선을 베푸는 것도
    모두 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겉 치레였음을 ...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이기심과 가식적인 모습이 반성이 됩니다
    자신의 가진 것을 전부 봉헌하는 과부의 믿음을 본받았으면
    참 좋을텐데...
    마음 뿐...
    행동으로 실천하기에는 저의 믿음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는 참 잘하는데...
    신앙생활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데
    참 부끄럽습니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이 아닌 영생을 얻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진심에서 우러나는 봉헌을 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봉헌하는 과부의 믿음을 보면서
    미사 때마다 계산하고 또 계산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봉헌하는 모습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는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봉헌금을 성의껏 해야 한다고 떠들어 댔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겉 치례로 신앙생활을 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남에게 보이려고 ...
    신앙생활도 봉헌금도 봉사도 자선을 베푸는 것도
    모두 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겉 치레였음을 ...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이기심과 가식적인 모습이 반성이 됩니다
    자신의 가진 것을 전부 봉헌하는 과부의 믿음을 본받았으면
    참 좋을텐데...
    마음 뿐...
    행동으로 실천하기에는 저의 믿음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는 참 잘하는데...
    신앙생활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데
    참 부끄럽습니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이 아닌 영생을 얻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진심에서 우러나는 봉헌을 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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