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하루 생활비를 헌금으로 바친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칭찬하신다.
헌금의 기본 정신은 이렇듯 정성에 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고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생활비였기에 선뜻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복음).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헌금은 정성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헌금함 앞에 섰는지요?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바치는 헌금이어야 합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여기에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닢’을 봉헌합니다.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바칩니다.
하루를 ‘기쁨으로’ 희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정성에 감격해하십니다.
렙톤은 그리스 화폐 가운데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두 닢’의 헌금이라면 주목받을 액수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난한 여인의 ‘마음’을 읽으셨기에
주님께서는 칭찬하십니다.
그녀의 소박한 믿음을 제자들에게 알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물질이 부족한 것만 가난이 아닙니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가난이고, 마음이 바쁜 것도 가난입니다.
일상에 떠밀려 허겁지겁 살고 있다면,
물질이 넘쳐도 부자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주님께 바치는 시간도 주일 미사가 거의 전부입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바치고 있는지요?
한 주간 살아온 삶을 바쳐야 합니다.
좋은 일이건 ‘궂은일이건’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다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봉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분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헌금을 보고 계십니다.
한 주간의 ‘아픔’도 헌금 속에 함께 담아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마음이 가난한 이에게
| | | | | | | | | |
연중 제34주간 월요일(11/23)
말씀의 초대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하루 생활비를 헌금으로 바친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칭찬하신다. 헌금의 기본 정신은 이렇듯 정성에 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고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생활비였기에 선뜻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복음).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헌금은 정성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헌금함 앞에 섰는지요?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바치는 헌금이어야 합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여기에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닢’을 봉헌합니다.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바칩니다. 하루를 ‘기쁨으로’ 희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정성에 감격해하십니다. 렙톤은 그리스 화폐 가운데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두 닢’의 헌금이라면 주목받을 액수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난한 여인의 ‘마음’을 읽으셨기에 주님께서는 칭찬하십니다. 그녀의 소박한 믿음을 제자들에게 알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물질이 부족한 것만 가난이 아닙니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가난이고, 마음이 바쁜 것도 가난입니다. 일상에 떠밀려 허겁지겁 살고 있다면, 물질이 넘쳐도 부자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주님께 바치는 시간도 주일 미사가 거의 전부입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바치고 있는지요? 한 주간 살아온 삶을 바쳐야 합니다. 좋은 일이건 ‘궂은일이건’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다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봉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분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헌금을 보고 계십니다. 한 주간의 ‘아픔’도 헌금 속에 함께 담아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34주간 월요일(11/23)
말씀의 초대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은 전쟁 포로였다. 하지만 그들은 궁중 교육을 받고 임금을 섬기는 신분이 된다. 모든 것은 주님의 섭리였다. 다니엘은 그런 상황에서도 율법을 지키며, 우상 숭배를 멀리하려고 애썼다. 하느님의 지혜가 다니엘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만 한 사람이 없었다.> ☞ 다니엘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6.8-20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통치 제삼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주님께서는 유다 임금 여호야킴과 하느님의 집 기물 가운데 일부를 그의 손에 넘기셨다. 네부카드네자르는 그들을 신아르 땅, 자기 신의 집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기물들은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임금은 내시장 아스프나즈에게 분부하여,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다. 그들은 아무런 흠도 없이 잘생기고, 온갖 지혜를 갖추고 지식을 쌓아 이해력을 지녔을뿐더러, 왕궁에서 임금을 모실 능력이 있으며, 칼데아 문학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임금은 그들이 날마다 먹을 궁중 음식과 술을 정해 주었다. 그렇게 세 해 동안 교육을 받은 뒤에 임금을 섬기게 하였다. 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다. 다니엘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자기가 더럽혀지지 않게 해 달라고 내시장에게 간청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 내시장에게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 주셨다. 내시장이 다니엘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 주군이신 임금님이 두렵다. 그분께서 너희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정하셨는데, 너희 얼굴이 너희 또래의 젊은이들보다 못한 것을 보시게 되면, 너희 때문에 임금님 앞에서 내 머리가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다니엘이 감독관에게 청하였다. 그는 내시장이 다니엘과 하난야와 미사엘과 아자르야를 맡긴 사람이었다. “부디 이 종들을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십시오. 저희에게 채소를 주어 먹게 하시고, 또 물만 마시게 해 주십시오. 그런 뒤에 궁중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과 저희의 용모를 비교해 보시고, 이 종들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감독관은 그 말대로 열흘 동안 그들을 시험해 보았다. 열흘이 지나고 나서 보니, 그들이 궁중 음식을 먹는 어느 젊은이보다 용모가 더 좋고 살도 더 올라 있었다. 그래서 감독관은 그들이 먹어야 하는 음식과 술을 치우고, 줄곧 채소만 주었다. 이 네 젊은이에게 하느님께서는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다.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젊은이들을 데려오도록 임금이 정한 때가 되자, 내시장은 그들을 네부카드네자르 앞으로 데려갔다. 임금이 그들과 이야기를 하여 보니, 그 모든 젊은이 가운데에서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만 한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임금을 모시게 되었다. 그들에게 지혜나 예지에 관하여 어떠한 것을 물어보아도, 그들이 온 나라의 어느 요술사나 주술사보다 열 배나 더 낫다는 것을 임금은 알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주님!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봉헌하는 가난한 과부의 복음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는지...
주일마다 헌금을 봉헌 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헌을 했는지
교무금이나 2차헌금을 봉헌 할때에도 정성을 다했는지...
참 많은 생각이 오고 갔습니다
양심이 찔려서이지요
아이들이나 제가 필요한 물건이나 갖고 싶은 것들은
과소비를 하면서까지 소유했었는데...
주일에 헌금을 봉헌하면서 대충 대충 어쩌다 많은 액수를
봉헌 할 때는 자신만이 참 신앙인인 척 개선장군처럼
제대 앞에 나가서 봉헌을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봉헌하는 과부의 마음을 닮으면 좋을텐데
세속의 계산으로 따지고 또 따지고 손익계산을 하는 저의
이기적인 모습이 오늘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반성이 됩니다
저의 그런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좋을텐데...
복음을 묵상 할 때 일시적인 기분임을 제 자신 잘 알고 있지요
참 어렵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풍성하게 뿌리는 사람은
풍성하게 거둡니다 각각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대로 내되 아까와
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 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고린도후서9,6-7)
우리본당 주일헌금봉투 겉면에 쓰여 있는 성서말씀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헌을 할수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겉치례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봉헌을 해야한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묵상하며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 마음이 가난한 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