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예수님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예수님

-사천명을 먹이신 기적-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배고픈 군중들을 빵으로 배불리시는 예수님. 그분이 바로 참된 목자이십니다. 참된 목자는 양들의 어려운 사정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일로 보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보시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봅시다.



29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갈릴래아 호숫가로 옮겨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십니다.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오자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십니다. 평지보다는 당신 백성을 가르치지 쉬운 곳이 바로 언덕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군중들 하나하나를 내려다보시며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예수님의 소문이 사방으로 퍼지자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치유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지도자였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가르치신다는 그 말씀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군중들은 병자들을 예수님 발치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바로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리 저는 이들이 기뻐 뛰고, 눈먼 이들이 보며, 벙어리들이 말을 하게 되는 것. 이 모든 일이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또한 이 일들은 나를 통해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그들의 다리가 되고, 눈이 되고, 입이 되어 그들이 나를 통해서 걷고, 보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사람들. 예수님과 함께 사흘을 같이 했으니 먹을 것이 걱정 될 만도 합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예수님.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양들을 사랑하는 착한 목자의 마음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 나도 조금은 예수님 마음을 헤아려드리려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먹이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을 먹일 음식은 없습니다. 또 사올 곳도 없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대책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 또한 그것을 믿어야합니다.

제자들의 이 대답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이 무슨 수로 이들을 먹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 앞에는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예수님, 그래서 “예수님! 저희는 불가능합니다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에게는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있었습니다. 혼자서라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그것 가지고는 군중을 배불리 먹일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그냥 알아서 가라고 하시지요?”라고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한 편으로는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기에 기적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좌우지간 지금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입만 쳐다보는 것입니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시고, 빵과 물고기를 손에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가 나누어 주었습니다. 꺼내도 꺼내도 줄어들지 않는 빵 광주리. 그것을 나누어 주는 제자들의 기쁨은 어떠했을까요?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38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사천 명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먹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일곱 바구니가 되었습니다. 먹은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들고 있는 바구니는 꺼내도 꺼내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도 사천 명이 배불리 먹었는데 남은 조각을 모으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군중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놀랐을까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 기적의 현장, 사랑의 현장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39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배를 타고 마가단 고장으로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당신 백성을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을 따라온 백성들을 굶겨서 보내지 않으시고 배불리 먹여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기적을 내가 행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능한 것은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눈다면,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한 끼를 해결 할 수 있다면 예수님의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배불리 먹여서 돌려보내신 다음 배를 타고 마가단 고장으로 가십니다. 이 마가단은 달마누타 가까이 있던 지금의 메제르시로서,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달마누타는 갈릴래아 호숫가 서북쪽 겐네사렛 평야에 있던 도시로 추정되지만 그 곳이 지금 어디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를 가시든 그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당신 백성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신 다는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사랑을 전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은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나눔입니다. 나는 어떤 나눔을 하고 있습니까? 또 어떤 나눔을 해야 합니까?



③ 내가 속한 공동체를 사랑한다면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비록 그것이 어렵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일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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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예수님에 1개의 응답

  1. 노랑풍선 님의 말:

    “저 군중이 가엾구나.~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면서

    오늘도 이렇게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그분이 계시기에
    하루하루 고달픈 마음을 그분 가슴에 내려놓고 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위로 받은 저는
    그분께 뭘 봉헌했고 이웃에 뭘 내려놓고 가는가…

    나란 존재마저도 그분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아직까지도 주님한테나 이웃에게나
    아벨의 봉헌이 아닌 카인의 계산된 봉헌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갈무리하는 한해속에
    얼마만큼 받았느냐가 아닌
    주신 것들…얼마나 많이 이웃과 계산없이 나누었는가를… 돌아보면서

    굶주리는 이웃에게 오직 희망은
    아까워 하지 않고 내 호주머니를 기꺼이 터?는 것임을 깨달아 봅니다.
    오늘 빵 일곱개와 물고기 몇마리를 다 내 놓았던 사람들처럼
    공동체를 위해서 나를 털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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