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구원의 역사’를 1년 주기로 기념한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종말에 있을 재림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순서에 따라
‘1년 주기’로 기념하는 것을 ‘전례주년’이라 한다.
전례주년의 핵심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이다.
따라서 ‘예수 성탄 대축일’과
‘예수 부활 대축일’은 전례력의 두 기둥이 된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므로
전례주년은 대림 시기를 출발점으로 한다.
그 뒤로 성탄 시기, 사순 시기, 부활 시기가 이어지고,
그 사이에 연중 시기가 있다.
연중 시기는 두 번 있다. 성탄 시기가
‘끝난 다음’과 부활 시기가 ‘끝난 다음’이다.
‘주님 세례 축일’ 다음 날부터 ‘재의 수요일’ 전날까지는
성탄 시기와 연결되는 연중 시기다.
그리고 부활 시기에 이어지는 연중 시기는 ‘성령 강림 대축일’
이튿날부터 ‘대림 첫 주일’ 전날까지다.
연중 시기에는 예수님과 교회에 관한 다양한 축일을 지낸다.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도 많고, 독서와 복음의 내용도 풍부하다.
연중 마지막 주일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종말에 권능을 떨치며 오실 예수님을 기억하는 주일이다.
연중 시기 동안 사제는 삶의 기쁨과
희망을 나타내는 녹색 제의를 입는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신다.
첫 번째 일은 당신의 협력자가 될 제자들을 모으시는 일이다.
그리하여 어부 네 사람을 부르신다.
제자단의 중심이 될 분들이다.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따라간다.
부르심에는 망설이지 말아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복음).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십니다.
마음먹으신 일을 실행에 옮기십니다.
그러기에 함께 일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시몬 형제와 야고보 형제입니다.
길을 가시다가 우연히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전부터 만남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분을 따르는 청중 속의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부르심을 받자, 그들은 ‘즉시’ 그물을 버리고 따릅니다.
요한 형제를 부르시는 대목은 더욱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따라나섰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일하다가 ‘옷 입은 그대로’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말이 됩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만사 팽개치고 떠난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주님의 첫 제자들이 그런 식으로 스승님을 따랐을 리 없습니다.
그들은 고뇌했고, 수없이 망설였습니다.
‘갈 것인가? 가지 말아야 할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에는 모든 갈등이 ‘생략’되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즉시’
응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소명과 추종은 ‘빠르면 빠를수록’,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더욱 복음적이 됩니다.
그분을 따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나를 따르라 - 김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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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월요일(1/11)
교회는 ‘구원의 역사’를 1년 주기로 기념한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종말에 있을 재림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순서에 따라 ‘1년 주기’로 기념하는 것을 ‘전례주년’이라 한다. 전례주년의 핵심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이다. 따라서 ‘예수 성탄 대축일’과 ‘예수 부활 대축일’은 전례력의 두 기둥이 된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므로 전례주년은 대림 시기를 출발점으로 한다. 그 뒤로 성탄 시기, 사순 시기, 부활 시기가 이어지고, 그 사이에 연중 시기가 있다. 연중 시기는 두 번 있다. 성탄 시기가 ‘끝난 다음’과 부활 시기가 ‘끝난 다음’이다. ‘주님 세례 축일’ 다음 날부터 ‘재의 수요일’ 전날까지는 성탄 시기와 연결되는 연중 시기다. 그리고 부활 시기에 이어지는 연중 시기는 ‘성령 강림 대축일’ 이튿날부터 ‘대림 첫 주일’ 전날까지다. 연중 시기에는 예수님과 교회에 관한 다양한 축일을 지낸다.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도 많고, 독서와 복음의 내용도 풍부하다. 연중 마지막 주일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종말에 권능을 떨치며 오실 예수님을 기억하는 주일이다. 연중 시기 동안 사제는 삶의 기쁨과 희망을 나타내는 녹색 제의를 입는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신다. 첫 번째 일은 당신의 협력자가 될 제자들을 모으시는 일이다. 그리하여 어부 네 사람을 부르신다. 제자단의 중심이 될 분들이다.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따라간다. 부르심에는 망설이지 말아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복음).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십니다. 마음먹으신 일을 실행에 옮기십니다. 그러기에 함께 일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시몬 형제와 야고보 형제입니다. 길을 가시다가 우연히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전부터 만남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분을 따르는 청중 속의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부르심을 받자, 그들은 ‘즉시’ 그물을 버리고 따릅니다. 요한 형제를 부르시는 대목은 더욱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따라나섰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일하다가 ‘옷 입은 그대로’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말이 됩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만사 팽개치고 떠난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주님의 첫 제자들이 그런 식으로 스승님을 따랐을 리 없습니다. 그들은 고뇌했고, 수없이 망설였습니다. ‘갈 것인가? 가지 말아야 할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에는 모든 갈등이 ‘생략’되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즉시’ 응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소명과 추종은 ‘빠르면 빠를수록’,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더욱 복음적이 됩니다. 그분을 따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1주간 월요일(1/11)
교회는 ‘구원의 역사’를 1년 주기로 기념한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종말에 있을 재림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순서에 따라 ‘1년 주기’로 기념하는 것을 ‘전례주년’이라 한다. 전례주년의 핵심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이다. 따라서 ‘예수 성탄 대축일’과 ‘예수 부활 대축일’은 전례력의 두 기둥이 된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므로 전례주년은 대림 시기를 출발점으로 한다. 그 뒤로 성탄 시기, 사순 시기, 부활 시기가 이어지고, 그 사이에 연중 시기가 있다. 연중 시기는 두 번 있다. 성탄 시기가 ‘끝난 다음’과 부활 시기가 ‘끝난 다음’이다. ‘주님 세례 축일’ 다음 날부터 ‘재의 수요일’ 전날까지는 성탄 시기와 연결되는 연중 시기다. 그리고 부활 시기에 이어지는 연중 시기는 ‘성령 강림 대축일’ 이튿날부터 ‘대림 첫 주일’ 전날까지다. 연중 시기에는 예수님과 교회에 관한 다양한 축일을 지낸다.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도 많고, 독서와 복음의 내용도 풍부하다. 연중 마지막 주일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종말에 권능을 떨치며 오실 예수님을 기억하는 주일이다. 연중 시기 동안 사제는 삶의 기쁨과 희망을 나타내는 녹색 제의를 입는다.
말씀의 초대
사무엘은 에프라임 지파에서 제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한나는 본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지만, 기도 끝에 사무엘을 얻게 된다. 훗날 사무엘은 예언자가 되었고, 사울과 다윗을 임금으로 선택하여 이스라엘 왕정의 기초를 놓았다(제1독서).
제1독서
<프닌나는 주님께서 태를 닫아 놓은 한나를 괴롭혔다.> ☞ 사무엘기 상권의 시작입니다. 1,1-8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카나였는데,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토후의 증손이고 춥의 현손이었다.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이고, 다른 아내의 이름은 프닌나였다.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카나는 해마다 자기 성읍을 떠나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주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주님의 사제로 있었다. 제사를 드리는 날, 엘카나는 아내 프닌나와 그의 아들딸들에게 제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적수 프닌나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주님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프닌나가 이렇게 한나의 화를 돋우면,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남편 엘카나가 한나에게 말하였다. “한나,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만 하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
오늘이 경인년새해가 시작되고 열흘이 지났지요?
열흘동안 참 많이도 다짐도 하고 맹세도 하고
새해부터는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모두 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고 다짐을 했는데 작심삼일인가요?
아니!
하루가 지나서부터 다짐도 맹세도 모두 다...
당신께 약속을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닌 세속에 찌들은
중년의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계 모임 날이면 웃고 떠들고 외인들과의 모임이라서 그렇다고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그리고 집에 오면서 후회하고 또 하면서
그런데요 주님!
습관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 제가 대단한 사람갔지요?주님!
사실은 언제나 그랬는데 세속적이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그랬지요?주님!
그리고 자신이 대단한 신앙인인 척하면서 잘난체를 했지요?
그랬습니다 주님!
당신의 말썽꾸러기 헬레나가 이렇게 살았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시몬과 안드레아와 제배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처럼
당신을 따르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고 싶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짐했던 모든 일들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묵상하며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믿지 않은 이들에게,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 얼마나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일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깊이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안에는 그 말씀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 기쁨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갈릴래아는 유다인들에게 있어서는 의롭지 못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 죄인들, 율법도 모르고, 이방인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갈릴래아는 “이방인들의 갈릴래아”라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이니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결국 나는 하느님 나라를 알아본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로 돌아와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를 통하여,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당신 백성과의 계약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백성들을 다스리셨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특별한 것을 의미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분께서 다스리셨지만 이제 약속하셨던 것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메시아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서 병자들이 치유되고, 악령을 몰라내고, 죄의 용서와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지게 되는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구원의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그 구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표징을 감지한 이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숙제는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악명 높은 법과 질서의 파괴자나 세리들, 창녀들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선포되는 이 “하느님의 복음”은 미움과 시기와 사악함과 폭력이 가득 찬 세상에 비춰지는 희망과 사랑의 손길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방법은 바로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안드레아를 보셨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십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 자신의 모습에 충실한 모습. 그리고 그들 안에 있는 믿음과 열정을 보셨을 것입니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십니다.“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예수님을 따라가면 제자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낚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나 또한 사람을 낚는 어부 입니다. 나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하느님께로 향해야 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에 참여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큰 축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이제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어부였는데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뒤로 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을 보았을 수도 있고, 가르침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께서 자신을 부르십니다. 완전히 “봉 ” 잡은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저기 예수님! 연봉은 얼마나 주시는지요!”“숙식은 제공되는지요?”“그래서 저희가 앞으로 받게 될 것은 무엇이며…..”이러한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부르심과 응답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파견한 사람의 부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의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이 부르심에는 절대적이고 강력하며 철저함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거기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부름 내용은 “따르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을 받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따름입니다.
스승을 따르는 제자는 이제부터 스승을 자신의 삶과 야망을 정해 주는 존재로서, 자기에게 가르침을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며 자기를 위하여 세상에서 걸어야 할 길을 찾아 주는 동시에 자신을 그의 과제에 참여케 하는 그러한 스승과 함께 하는 일상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입니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셨을 것이고, 그들 마음 안에 담겨 있는 것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외적인 나의 행동뿐만 아니라 내적인 나의 마음 자세까지도. 그분께 뽑힐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스승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것을 찾고, 내세우며,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는 스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스승을 따른다고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사람은 스승의 제자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나도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모든 것을 함께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방해하는 것들도 많이 있고, 방해받고 싶은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버리고 따른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과감하게 버리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자존심도 버리고,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기심도 버리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도 버리고…, 무엇을 버리시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의 무엇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을까요?
②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