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1/28)


    성 토마스 아퀴나스(토마스 데 아퀴노) 사제는 1225년경 이탈리아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공부한 그는 가족의 반대를 물리치고 20세에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이후 알베르토 성인의 지도를 받으며 학업을 계속하여 사제품을 받았다. 철학과 신학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신학 대전』은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274년 세상을 떠난 그는 1323년 시성되었다. 1880년 레오 13세 교황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모든 ‘학교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하였다.
    말씀의 초대
    아무도 등불을 켜서 침상 밑에 두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둔다. 그리하여 방 안을 환하게 비추게 한다. 사람의 선행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환하게 드러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알려지게 하실 것이다(복음).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방 안을 비춰야 할 등불을 침대 밑에 두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선행을 베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삶이 환하게 밝아지는데 그것을 모릅니다. 영적 생명은 선행 없이는 자라지 않습니다. 교회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신자들의 ‘자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는 곳에 은총은 오지 않습니다. 고통이 없는 곳에 어떻게 축복이 찾아올는지요? 어떤 사람이 거저 축복받은 듯이 보이더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를 위해 자선과 선행을 베풀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자선은 어렵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로 기쁨을 준다면 그것이 자선입니다. ‘행동 하나’가 다른 이에게 희망이 되었다면 이 시대 최고의 ‘선행’입니다. 희생과 절제는 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이더라도 ‘남을 위한 것이라면’ 위대한 것이 됩니다. 좋은 기운이 감싸면 악한 기운은 서서히 떠나갑니다. 그만큼 선행에는 ‘하늘의 힘’이 함께합니다. 교리적으로 말하면, 은총이 감싸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듯 자선은 삶을 바꾸어 줍니다. 인생을 환하게 밝히는 행동이 됩니다. 그런데도 복은 ‘받고 싶어’ 하면서 정작 그 길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작은 선행이라도 ‘실천하면’ 금방 깨달아집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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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1/28)


      성 토마스 아퀴나스(토마스 데 아퀴노) 사제는 1225년경 이탈리아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공부한 그는 가족의 반대를 물리치고 20세에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이후 알베르토 성인의 지도를 받으며 학업을 계속하여 사제품을 받았다. 철학과 신학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신학 대전』은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274년 세상을 떠난 그는 1323년 시성되었다. 1880년 레오 13세 교황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모든 ‘학교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하였다.
      말씀의 초대
      아무도 등불을 켜서 침상 밑에 두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둔다. 그리하여 방 안을 환하게 비추게 한다. 사람의 선행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환하게 드러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알려지게 하실 것이다(복음).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방 안을 비춰야 할 등불을 침대 밑에 두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선행을 베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삶이 환하게 밝아지는데 그것을 모릅니다. 영적 생명은 선행 없이는 자라지 않습니다. 교회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신자들의 ‘자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는 곳에 은총은 오지 않습니다. 고통이 없는 곳에 어떻게 축복이 찾아올는지요? 어떤 사람이 거저 축복받은 듯이 보이더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를 위해 자선과 선행을 베풀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자선은 어렵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로 기쁨을 준다면 그것이 자선입니다. ‘행동 하나’가 다른 이에게 희망이 되었다면 이 시대 최고의 ‘선행’입니다. 희생과 절제는 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이더라도 ‘남을 위한 것이라면’ 위대한 것이 됩니다. 좋은 기운이 감싸면 악한 기운은 서서히 떠나갑니다. 그만큼 선행에는 ‘하늘의 힘’이 함께합니다. 교리적으로 말하면, 은총이 감싸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듯 자선은 삶을 바꾸어 줍니다. 인생을 환하게 밝히는 행동이 됩니다. 그런데도 복은 ‘받고 싶어’ 하면서 정작 그 길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작은 선행이라도 ‘실천하면’ 금방 깨달아집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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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1/28)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통해 다윗의 후손을 축복하신다. 다윗은 감사 기도를 바친다. 그는 자신의 후손이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에 감격한다. 다윗은 지난날을 회상한다. 무명의 목동에서 지도자가 되었고 마침내 임금이 된 것을 돌아본다. 주님의 크신 은총이었다(제1독서).
      제1독서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며, 또 제 집안이 무엇입니까?>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7,18-19.24-29 나탄이 다윗에게 말씀을 전한 뒤, 다윗 임금은 주님 앞에 나아가 앉아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주 하느님, 당신 눈에는 이것도 부족하게 보이셨는지, 당신 종의 집안에 일어날 먼 장래의 일까지도 일러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 이 또한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당신을 위하여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당신의 백성으로 튼튼하게 하시고, 주님, 당신 친히 그들의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주 하느님, 당신 종과 그 집안을 두고 하신 말씀을 영원히 변치 않게 하시고,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위대하게 되고, 사람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 종 다윗의 집안도 당신 앞에서 튼튼해질 것입니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당신 종의 귀를 열어 주시며, ‘내가 너에게서 한 집안을 세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종은 이런 기도를 당신께 드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 하느님, 당신은 하느님이시며, 당신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당신 종에게 이 좋은 일을 일러 주셨으니,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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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에서 새겨 들으라시며
    “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하신말씀에 뜨끔해집니다
    언제나 당신께서 저에게만 인색하시다는 생각에
    가진 것 또한 별로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말씀이
    가진 것마저 빼앗길까 두렵고 무서운 생각마저 듭니다
    반성도 되었지요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감사할 줄 모르고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했던 저의 욕심과 이기심
    복음을 묵상하면서 
    후회와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신앙인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감사해야 하는데
    머리로만 생각하고 마음 속에 담지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이 그러니 기쁨과 행복보다는 원망과 미움
    시기와 질투 등 온갖 세속적인 생각들로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고 저 혼자만 뚝 떨어진 것 같은 외로움까지...
    혼자서 온갖 상상과 공상으로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었지요
    당신께 받은 은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들였다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을텐데...
    언제나 독불장군처럼 혼자 결정하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울고
    세상의 고민은 저 혼자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외인만도 못한 삶을 살았지요?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말씀을 성찰하며
     당신께 받은 많은 은총에 감사드리며 가진 것마저
    빼앗기지 않도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묵상하며 

     

  4. guest 님의 말:

     

    감추어 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1. 말씀읽기 : 마르코 4,21-25  등불의 비유 (루카 8,16-18)

    2. 말씀연구

     등불이 필요한 곳은 어디입니까? 어두운 곳입니까? 아니면 밝은 곳입니까? 책상에 앉아 있으니 오후의 태양이 방안에 가득해서 너무 눈이 부셨습니다. 그래서 커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커튼을 내리니 책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탠드를 키려고 하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왔습니다. 밝은 빛을 가리고 어두운 빛으로 책을 보려 하고 있구나. 커튼을 올리면 다시 환한 햇살이 방에 가득할 텐데…, 단편적인 예지만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버려두고 별것 아닌 것에 마음을 쓰는 것. 그것이 내 모습일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21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갈릴래아의 작은 집안에서 사용되던 등잔은 질그릇으로 된 편편한 접시인데, 방을 어느 정도 밝히기 위해서는 촛대위에 올려놓아야 했습니다. 됫박 혹은 침대 밑에 두는 것은 쓰지 않는 낮 시간에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등불과 같이 높은 곳에 놓여 있는 사도들과 제자들은 때가 온다면 자기들만이 본 기적과 자기들에게만 주신 가르침을 모두에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하나의 보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온 인류를 위하여 그들에게 맡겨 놓은 보배입니다. 그리고 만일 한때 그것을 바로 평가할 수 없는 대중에게 감추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모든 것은 대낮처럼 밝게 나타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등불과 같이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도시를 어떻게 감출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하나의 보배입니다. 온 인류를 위하여 우리 모두에게 맡겨 놓은 보배입니다. 그 보배를 잘 못 이해하고,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대낮처럼 밝게 알려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비밀은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건은 내가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드러납니다. “멋진 신앙의 모습”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말이 아니라 할지라도 행동으로 드러나고, 그 형제자매의 그림자와 발자국으로도 드러납니다.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가갈 방향이 보입니다. 해야 할 일이 보이고,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들립니다. 하지만 하느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는 말씀입니다.

     주변에는 많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내가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고요 속에 머물지 않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또 들을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합니다.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들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삶. 그 삶이 바로 신앙인의 삶입니다.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새겨들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새겨듣는다는 것은 마음에 깊이 각인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을 들을 때 “새겨듣게” 됩니다. 그리고 새겨들은 것은 양심성찰을 통해서 늘 볼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양심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새겨들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됨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자비를 베풀어야 만이 나 또한 자비를 받을 수 있고, 내가 용서를 베풀어야 만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한 것 그 이상으로, 내가 자비를 베푼 것 그 이상으로 받게 됩니다. 이 말씀을 늘 명심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아 갑시다.


     또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혼자만 간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나를 통해 열매 맺어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사명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담아주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신비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하고 또 전하고 또 전해도 부족합니다. 그렇게 세상 곳곳에 복음을 전할 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전할 때, 예수님께서는 흡족해 하실 것입니다.

     영세는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비자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고, 큰 믿음을 가지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신앙인에게 구원은 문은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내가 받은 작은 씨가 싹이 터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여기서 가진 자는 어떤 사람이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가진 사람은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사람이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기도를 통해서 만들어 집니다. 기도하는 이들은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게 되고, 주어진 은총을 감사하며, 그 은총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지 못한 자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고, 나눠줄 것이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또한, 가진 자는 “들을 귀를 가진 자”입니다. 그래서 은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분할 수 있으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들을 귀가 없는 자는 아무리 귀한 것을 말해주어도 소용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고 있는 것은 은혜입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 봉사자가 되고, 사제, 수도자가 되었다는 것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내가 노력하여 이 은혜를 열매 맺게 한다면 하느님께로부터 더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에 관심도 없고, 열매 맺는 일에는 더 관심 없는 사람은 결국 그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커다란 바다는 아무리 가뭄이 심하게 들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작은 연못은 며칠만 더워도 말라 버린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 주변에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드러나는 곳은 어디입니까?


    ② “들을 귀를 가진 자”, “은총을 담을 그릇을 가진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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