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들과 돼지 떼

 

마귀들과 돼지 떼

1. 말씀읽기: 마르코 5,1-20 마귀들과 돼지 떼 (마태 8,28-34 ; 루카 8,26-39)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마귀 들린 사람의 치유를 생각하게 되는지, 돼지가 죽어서 입은 경제적 손실을 생각하게 되는지 한번 내 자신을 바라  보면서 어떤 것을 참된 이익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1 그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게라사 지방을 가다라 지방이라고도 합니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예수님 앞에 섰습니다.

불쌍한 이 사람들은 무덤 근처에서 살았고, 사람들은 무서워서 그들을 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보통 불쌍한 사람들이 상여집에 살기도 했습니다.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 상여가 보관되어 있는 상여집. 그곳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바로 비참함이었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도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문득 어릴 때 집으로 가는 길을 지키고 있던 이상한 여자 아이가 생각이 납니다. 덩치가 얼마나 컸던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한동안 집으로 가는 길이 무서울 때가 있었습니다. 산 속의 집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에 아이 봐 주러 온 것 같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지키고 있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무덤. 마귀 들린 사람의 거주지는 무덤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거주하는 곳.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있는 곳이었고, 그들은 인간적인 사회에서 죽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완전히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이 이제 예수님을 만나서 죽음에서 생명에로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귀 들린 그 사람을 어느 누구도 묶어 둘 수가 없었습니다.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가 없었다는 말은 그만큼 힘이 강했다는 것입니다.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는데 장난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쇠사슬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리는 사람. 그를 얼마나 사람들은 두려워했을까요?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 그가 바로 마귀 들린 사람이고,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도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귀 들린 사람이 아니라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마귀로부터 자유스러워지고 싶지만 마귀는 그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예수님을 쫓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겁도 없이 예수님께 대들 것입니다.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마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마귀는 광야에서 유혹할 때는 “만일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거든…,”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당신 백성의 아픔을 함께 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아픔을 대신 지고자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귀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하느님 눈에는 인간만 보이는데도 말읿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참 겁도 없는 마귀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쫓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이 말에 배꼽 빠지게 웃으셨을 것입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쫓으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예수님께로부터 쫓기게 됩니다. 아무리 쇠사슬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린다 하더라도 예수님 앞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말씀하십니다.“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마귀는 예수님께로부터 간섭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어둠은 빛을 좋아할 리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그 마귀는 자신의 이름이 군대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숫자가 많다고 말을 합니다. 이 마귀 들린 사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자신 안에 너무도 많은 마귀들이 자리 잡고, 자신을 괴롭히니…,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마귀들은 그 고장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지방에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을 합니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유다인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돼지를 기르지 않았고, 돼지고기도 먹지 않았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살던 곳은 거의 이교도들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마귀들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을 합니다. “비슷한 것끼리는 서로 좋아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는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라고 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의 청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돼지가 2천 마리나 되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팔레스티나에는 자신들의 소, 당나귀, 산양, 양 등을 아침마다 목자에게 맡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2,000마리라는 많은 가축이 한데 모여 있었을까? 하고 의심을 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 마귀가 돼지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 달라고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지옥에 가기보다는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마귀에게는 하나의 위안이었다고 해석한 학자도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 만을 구원하러 오셨으니 이방인들의 소유 속으로 들어가면 예수님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청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그럽게 허락을 하십니다. 그런데 돼지 떼는 바다로 돌진하여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어떤 이는 마귀가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는 무엇인가 물질적인 손해를 끼치기에 그것을 하나의 발악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또 아무리 부정한 동물로 취급되는 돼지라 할지라도 자신들 안에 마귀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기 싫어서 그렇게 물속으로 돌진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셔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셨을까요? 이런 질문을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신부님께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께서는 그 학생을 쳐다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은 사람보다는 돼지가 더 중요한가 보지?”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라는 시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돼지 한 마리를 40만원만 쳐도 최소 나의 가치는 8억 원 이상은 된다는 것. 하느님께서 그만큼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하느님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 눈에는 나 밖에 안 보입니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돼지를 치는 이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돼지나 또는 자신들이 맡아서 돌보고 있던 돼지들이 순식간에 죽음을 당하니 당연히 알려야 했을 것입니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사람들은 마귀 들렸던 사람이 멀쩡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뻐하지 않고 두려워합니다. 그럴만도 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습니까?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자체도 두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마을 사람 하나를 살렸다는 것은 결코 기뻐하지 않고, 자신들이 입은 경제적 손실만을 걱정하면서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무서워서 다니지도 못했던 길을 이제는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이익인지, 어떤 것이 손해인지는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이익일까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이익일까요? 재물을 살리는 것이 이익일까요? 물질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영적으로 충만해 질 수 있다면 그것이 이익일까요? 손해일까요? 나 또한 작은 이익 때문에 예수님을 등지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치유 받은 사람은 이제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청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원해 주셨기에, 자유를 주셨기에 당연히 그는 예수님과 함께 머물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십니다. 가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하느님께서 해 주신 자비를 전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예수님의 은총으로 마귀로부터 자유로워진 그 사람은 이제 주님께서 자신에게 해 주신 일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선포하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셨으니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일을 선포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하느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요?



② 마귀 들렸던 이가 치유를 받고 주님을 선포하고 있다면 나의 반응은 어떨까요? 또한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일을 어떻게 선포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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