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군중은 예수님을 사흘째 따르고 있다. 먹을 것이 모두 동이 났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음식을 주고자 하신다.
하지만 제자들은 걱정한다. 빵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적의 스승님을 잊고 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적을 베푸신다(복음).
복음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0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일곱 개의 빵으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었던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전승 과정에서 숫자가 바뀌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또 다른 기적이었을 것입니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기적의 빵을 주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건 그분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도 숫자를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신자 수가 얼마이며, 헌금이 얼마고,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많다고 은총도 많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정성이 중요합니다.
은총은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정성’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숫자에 매이지 않는 것도 기적입니다.
숫자에 매달릴수록 삶은 초라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홉’이 되면 ‘열’을 바라고,
‘열’이 되면 ‘백’에 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백’ 뒤에는 ‘천’이 있고, ‘만’과 ‘억’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는지요? 생각하면 숨이 가빠집니다.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면 숫자는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드리면, 더 큰 숫자는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우리는 말씀 한마디로 ‘사천 명’을 먹이신 분을 믿고 있습니다.
어떤 걱정이든 한 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사랑을 드려요
| | | | | | | | |
연중 제5주간 토요일(2/13)
말씀의 초대
군중은 예수님을 사흘째 따르고 있다. 먹을 것이 모두 동이 났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음식을 주고자 하신다. 하지만 제자들은 걱정한다. 빵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적의 스승님을 잊고 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적을 베푸신다(복음).
복음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0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일곱 개의 빵으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었던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전승 과정에서 숫자가 바뀌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또 다른 기적이었을 것입니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기적의 빵을 주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건 그분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도 숫자를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신자 수가 얼마이며, 헌금이 얼마고,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많다고 은총도 많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정성이 중요합니다. 은총은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정성’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숫자에 매이지 않는 것도 기적입니다. 숫자에 매달릴수록 삶은 초라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홉’이 되면 ‘열’을 바라고, ‘열’이 되면 ‘백’에 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백’ 뒤에는 ‘천’이 있고, ‘만’과 ‘억’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는지요? 생각하면 숨이 가빠집니다.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면 숫자는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드리면, 더 큰 숫자는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우리는 말씀 한마디로 ‘사천 명’을 먹이신 분을 믿고 있습니다. 어떤 걱정이든 한 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5주간 토요일(2/13)
말씀의 초대
예로보암은 백성을 의심한다.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걱정한다. 그리하여 단과 베텔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한다. 엄청난 잘못이었다. 우상 숭배를 권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제1독서).
제1독서
<예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2,26-32; 13,33-34 그 무렵 예로보암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쩌면 나라가 다윗 집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나를 죽이고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임금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그러고 나서 금송아지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은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러 베텔과 단까지 갔다. 임금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의 자손들이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예로보암은 여덟째 달 열닷샛날을 유다에서 지내는 축제처럼 축제일로 정하고, 제단 위에서 제물을 바쳤다. 이렇게 그는 베텔에서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자기가 만든 산당의 사제들을 베텔에 세웠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도 예로보암은 그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또다시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산당의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그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직무를 맡겨 산당의 사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예로보암 집안은 이런 일로 죄를 지어, 마침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
주님!
오늘이 음력으로 마지막날입니다
하루만 있으면 경인년 새해가 시작되지요
제사준비를 하면서…
새해에는 모두가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체하지 않으며
영원히 변치않을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며
체하지 않으며 영원히 썩지않을 영원한 양식을 먹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으며
체하지 않도록 당신께 감사하며
그렇게 더도 덜도 말고
배부른 새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그렇게 살고 싶은마음 간절합니다
새해에는…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
묵상하며
(no cont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