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성주간 수요일(3/31)


    말씀의 초대
    유다 이스카리옷은 스승을 떠날 생각을 굳힌다. 스승님께서도 그가 떠나갈 것을 아신다. 그렇지만 말리지 않으신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이후 유다는 배신자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복음).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유다는 스승님을 팔아넘기는 대가로 ‘은돈 서른 닢’을 받습니다. 그가 먼저 수석 사제들에게 제안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말 돈 때문에 그랬을까요? 배신의 원인이 돈이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삼 년을 제자로 있던 사람이 다만 돈 때문에 돌아섰다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돈 때문에 망치고 있는 이들을 봅니다. 돈 빌린 사람이 ‘갚지도 않고’ 성체를 모신다고, 성당에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거래 때문에 ‘대부 대자’ 관계인 사람들이 법정에 서는 것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멍든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보다 돈을 먼저 생각한 결과입니다. 유다 역시 스승님보다 ‘다른 무엇’을 우선으로 여긴 것이 아닐는지요? 그러나 결과는 배신이었습니다. 그는 스승님을 배반하고 자살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감한 일입니다. 하지만 내적 성찰이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고집’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비장하신 말씀입니다. 그만큼 가슴 아프시다는 표현입니다. 이렇듯 스승님께서는 제자의 배신을 받아들이심으로써 자신의 십자가 길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Psalmus / 사순절 그레고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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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주간 수요일(3/31)


      말씀의 초대
      유다 이스카리옷은 스승을 떠날 생각을 굳힌다. 스승님께서도 그가 떠나갈 것을 아신다. 그렇지만 말리지 않으신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이후 유다는 배신자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복음).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유다는 스승님을 팔아넘기는 대가로 ‘은돈 서른 닢’을 받습니다. 그가 먼저 수석 사제들에게 제안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말 돈 때문에 그랬을까요? 배신의 원인이 돈이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삼 년을 제자로 있던 사람이 다만 돈 때문에 돌아섰다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돈 때문에 망치고 있는 이들을 봅니다. 돈 빌린 사람이 ‘갚지도 않고’ 성체를 모신다고, 성당에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거래 때문에 ‘대부 대자’ 관계인 사람들이 법정에 서는 것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멍든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보다 돈을 먼저 생각한 결과입니다. 유다 역시 스승님보다 ‘다른 무엇’을 우선으로 여긴 것이 아닐는지요? 그러나 결과는 배신이었습니다. 그는 스승님을 배반하고 자살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감한 일입니다. 하지만 내적 성찰이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고집’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비장하신 말씀입니다. 그만큼 가슴 아프시다는 표현입니다. 이렇듯 스승님께서는 제자의 배신을 받아들이심으로써 자신의 십자가 길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Psalmus / 사순절 그레고리안
    
    
    

  2. guest 님의 말:


    성주간 수요일(3/31)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에 관한 노래다. 그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등을 내밀고,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뺨을 내맡긴다. 사람들이 비웃지만 그는 당당하다. 수난하시는 메시아를 상상하게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의탁하는 이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0,4-9ㄴ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Psalmus / 사순절 그레고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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