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이날은 성찬 전례를 거행하지 않는다.
대신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 그리고 영성체 예식만 거행한다.
본디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말씀 전례만 있었다.
그러다 차츰 십자가 경배와 영성체 예식이
도입되어 오늘의 전례로 고정되었다.
전례 개혁 이전에는 집전 사제만 성체를 모셨지만,
1955년 전례 개혁 이후로는 모든 교우에게 영성체가 허용되었다.
오늘은 금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킨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예수님의 죽음과 수난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뻐하며 이날을 보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절을 시작합시다.
말씀의 초대
그는 망가지고, 멸시받고, 배척당했다.
하느님께 천대받은 자로 여겨졌다.
인간의 고통을 대신 짊어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주님의 뜻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이스라엘은 다시 축복을 받게 된다.
그는 예언자가 노래한 ‘주님의 종’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지 않으셨다.
우리와 똑같이 유혹받고 번민하셨다.
그렇지만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찾으셨고, 그분께 순명하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지닌 채 대사제가 되신 것이다(제2독서).
제1독서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2,13ㅡ53,12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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