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153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1. 말씀읽기: 요한 21,1-14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2. 말씀연구

 부활을 체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증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그들의 의지가 굳건하지 못해서입니다. 믿고는 있지만 두려움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성령을 받게 되면 몰라보게 달라질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까지 제자들은 그렇게 믿음과 혼동 사이에서 갈등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내가 가진 신앙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야만 증거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스승의 명령에 따라 사도들은 갈릴래아로 돌아갔습니다. 부활을 체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자들에게는 굳건한 믿음이 없습니다. 유다인들을 두려워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배와 그물을 버렸다가 다시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그 자리에는 베드로와 토마스, 나타나엘과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다른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디에 있는지는 전해주지 않습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제자들 중에 시몬 베드로가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하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으나 그 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고기 잡는 기술을 다 잊어 먹은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고기들이 제자들을 우습게 알아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사람 낚는 어부이지 고기 잡는 어부로 부르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부르셨을 때 이들은 배와 그물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물을 다시 잡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불신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었기에 그물을 버렸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믿지 못했기에 다시 그물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순간 방심하면 다시 그물(불신)을 잡게 됩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 한다면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날이 밝아올 무렵,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배에서 예수님을 보았으나 누구신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얘들아(아들들이여)”라는 말은 손아랫사람에게 친밀하게 이야기를 걸 때에 쓰는 상용어였습니다. 그리고 사냥꾼이나 어부에게 있어서 잡았느냐고 묻는 것은 하나의 인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잡은 것이 없을 때에는 대답을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여기서도 간단히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웃음이 납니다. 한 마리도 못 잡은 이유는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얘들아, 그물 버리고 나를 따랐는데, 다시 그물을 잡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서 그런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요.^*^”



저는 낚시에는 소질이 없습니다. 그래서 낚시를 가면 낚싯대를 드리우고, 이것저것 차린 것 실컷 먹고 오는 낚시를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제가 큰 거 하나 잡았는데 자라였습니다. 잡으려고 잡은 것이 아니라 딴 짓 하는데 자꾸 움직여서 들어봤더니 자라였습니다. 큰 녀석을 잡고서 놔주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끈으로 자라 허리를 묶어서 좌대 기둥에다 묶어 놨는데 어찌나 시끄러운지. 혹시 자라 엄마가 와서 화낼까봐 놔준 기억이 있습니다. 낚시에 관심 없는 사람도 이렇게 한 마리는 잡는데, 한 마리도 못 잡는 것은 실력이나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그 때의 그물은 아마도 배의 왼쪽에 걸어 놓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면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는데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수확을 얻게 됩니다.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은 고기들이 지능이 낮다고 합니다. 그래서 입이 찢어져도 다시 낚시에 걸려 옵니다. 그런데 그전에는 고기들의 지능이 그렇게 낮지 않았다고 합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사랑하는 물고기 커플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 물고기 커플이 드디어 분위기를 잡고 어느 밤, 사랑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해”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바다가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놀란 물고기 커플은 서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다 가운데에서 둘이 건널 수 없는 마른 땅의 벽이 생겨 버리고, 그 땅으로 사람들이 건너가는 것을 바라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건너편으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다가갈 수 없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건너간 뒤, 그 뒤를 따르던 기마와 기병이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물이 덮쳐서 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물고기들은 놀랐습니다. 그 후로 물고기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잊어 먹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감정을 잊고 살던 물고기들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피하는 그런 관계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사랑의 메시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날 밤도 어부들의 그물을 피해서 이리저리 피하느라고 힘든 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작은 배 위에서 군중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물고기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물고기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성하고 서로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물이 날라 와서 그들을 잡아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물을 오른쪽에 던져 보라고 하자 시몬 베드로 일행이 그물을 던졌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많은 물고기들이 그물에 걸려들었습니다. 물고기들은 그물에 걸려들어 예수님을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 그러실 수 있습니까?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왜 저희들은 잡나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길을 떠나셨고,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물고기들의 성토대회가 열렸습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배반하실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인간만을 위하십니까?”그러자 나이 많은 물고기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심오하신 계획을 어찌 우리 같은 물고기가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되는 것일세…,”



그렇게 3년이 흐른 어느 날, 그날도 밤새 어부들의 그물을 피해서 이리 저리 움직이느라고 고단했던 아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에 예수님께서 보이시는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물고기들에게 나타나신 것이었습니다. 물고기들은 기뻐서 예수님께 부활 인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부활을 축하해요. 저희는 그러실 줄 알았어요…,”그렇게 모여서 예수님께 부활인사를 드리는데, 다시 그물이 날라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그물을 오른쪽으로 던져 보아라.”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젊은 물고기들이 잡혀가면서 말했습니다. “원로님!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이렇게 하셔도 되는 거예요?”



원로들은 대책회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제일 많은 원로 물고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서운함을 느껴서야 되겠는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우리의 기억력이 문제가 되는군. 오늘 잡혀간 153마리의 물고기들은 먼 훗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숫자가 될걸세. 그걸 우리가 막으면 안 되지. 우리 모두 하느님께 기도하세.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기억력을 최소화 시켜 달라고…,”

그 후로 물고기들은 지능이 낮아졌다고 합니다. ^^ 믿거나 말거나…,<홍어록 12장>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기적적인 고기잡이를 한 적이 있었던(루가5,1-11)것을 회상하였던 요한은 이것을 보고 곧 “저분은 주님이십니다.”하고 베드로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곧은 성품과 격정적 행동파인 베드로는 일을 할 때 입는 작업복 위에 겉옷을 두르고 호수에 뛰어듭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에 빨리 가려고 그렇게 물에  뛰어든 것 같습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제자들은 그물을 끌어 올리면서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습니다. 얼마나 설렜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또 얼마나 죄송스러웠을까요? 버린 그물을 다시 잡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하는 그들의 처지가…, 제자들은 고기가 가득 든 그물을 끌고 뭍으로 왔습니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숯불을 피워 놓으셨고, 생선과 빵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밤새도록 헛고생한 제자들을 위한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고기는 예수님에 의해서 잡힌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 않을까요? “네가 잡은 고기(네가 인도한 형제자매)를 내 앞에 데려 오너라.”그런데 한 사람도 없다면 어떻게 할까요?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시몬 베드로는 배에 가서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물 속에는 백 쉰 세 마리나 되는 큰 고기가 가득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도 그물은 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153”은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것은 1에서 17까지를 더한 숫자입니다. 17은 또 10과 7을 더한 숫자입니다. 그리고 10과 7은 모두 완전한 숫자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적으로, 낙담하여 옛날의 삶으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다시 생기를 주시고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게 하십니다. 또한 기적적인 고기잡이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선교를 의미하며 터지지 않는 그물은 교회의 상징(마태13,47-50)이며, 잡은 고기는 사도적 선교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신자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와서 아침을 먹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아침은 결국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든 예수님께 누구시냐고 묻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존경과 일종의 공포에 사로잡혀 그것조차 선뜻 할 수 없었습니다.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방과 생선을 집어서 제자들을 먹이십니다. 제자들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셨던 예수님.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변화될 것 입니다. 부활을 믿게 될 것이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저분은 주님이십니다.”하고 소리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즉각 예수님께로 달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자가 예수님을 알아보는 방식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음성으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주실 때의 모습으로, 요한은 예수님께서 예전에 하셨던 기적의 기억으로…, 나는 어떻게 “당신은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지, 나는 어떻게 “당신은 하느님의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지 기억해 봅시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그렇게 즉각 받아들이는지도…,



②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 보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그리고 고기잡이는 내가 전문가인데…, 누가 나에게 조언을 할 때,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혹시 누구처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앞서서 판단하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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