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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성 요셉(5/1)


    184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성 요셉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 교회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선언하였다. 당시 조선교구의 2대 교구장인 앵베르 주교의 청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비오 9세 교황은 성 요셉을 ‘모든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고(1870년),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노동자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하여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생명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 보호받고 발전되어야 한다. 그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책임이며 의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을 찾아가신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적 모습은 ‘못 보고’, 외적 모습만 보고 있다. 말씀에는 감동하면서, 말씀을 주시는 내적 힘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분의 출신을 따지며, 인간적 편견에 사로잡힌다. 잘못된 선입관이 은총을 막고 있다(복음).
    제1독서
    <너희는 온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1,26ㅡ2,3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고향 사람들의 반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던 것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감동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목수는 ‘요셉 성인’을 가리킵니다. 동네에서 가재와 농기구 따위를 만들고 수리하면서 사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흠이 될는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아들이 예언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판관기에 등장하는 ‘입타’는 창녀의 아들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기준’으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분께서 ‘세상의 판단 기준’에 매이실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편견’을 깨지 못했습니다. 목수의 아들로서는 기적을 베풀 수 없다는 편견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마술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 출신은 소용이 없습니다.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모습은 외면하고 ‘곁다리’만 좇으면 언제나 ‘엉뚱해지는’ 법입니다. 생각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요셉 성인을 ‘노동자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목수였기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을 일하면서 사셨기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면서 성가정을 보호하셨기에 공경하고 있습니다. 요셉 성인 또한 주님께서 부르신 예언자였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목수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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