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제거하려 했다.
그의 활동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에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
사건이 확대되자, 카이사리아의 총독
페스투스는 황제에게 보고서를 올린다.
그는 단순한 종교 문제라고 해명하고 있다(제1독서).
스승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신다.
그때마다 베드로 또한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질문과 대답은 그만큼 중요하고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것에 앞서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정신으로 양들을 돌보라는 것이다(복음).
제1독서
<이미 죽은 예수를,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5,13ㄴ-21
그 무렵 아그리파스 임금과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하여 페스투스에게 인사하였다.
그들이 그곳에서 여러 날을 지내자,
페스투스가 바오로의 사건을 꺼내어 임금에게 이야기하였다.
“펠릭스가 버려두고 간 수인이 하나 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발을 당한 자가 고발한 자와
대면하여 고발 내용에 관한 변호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사람을 내주는 것은
로마인들의 관례가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곳으로 함께 오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다음 날로 재판정에 앉아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발한 자들이 그를 둘러섰지만,
내가 짐작한 범법 사실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바오로와 다투는 것은, 자기들만의 종교와 관련되고,
또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뿐이었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 그곳에서 이 사건에 관하여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바오로는 그대로 갇혀 있다가
폐하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황제께 보낼 때까지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에,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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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7주간 금요일(5/21)
말씀의 초대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제거하려 했다. 그의 활동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에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 사건이 확대되자, 카이사리아의 총독 페스투스는 황제에게 보고서를 올린다. 그는 단순한 종교 문제라고 해명하고 있다(제1독서). 스승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신다. 그때마다 베드로 또한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질문과 대답은 그만큼 중요하고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것에 앞서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정신으로 양들을 돌보라는 것이다(복음).
제1독서
<이미 죽은 예수를,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5,13ㄴ-21 그 무렵 아그리파스 임금과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하여 페스투스에게 인사하였다. 그들이 그곳에서 여러 날을 지내자, 페스투스가 바오로의 사건을 꺼내어 임금에게 이야기하였다. “펠릭스가 버려두고 간 수인이 하나 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발을 당한 자가 고발한 자와 대면하여 고발 내용에 관한 변호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사람을 내주는 것은 로마인들의 관례가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곳으로 함께 오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다음 날로 재판정에 앉아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발한 자들이 그를 둘러섰지만, 내가 짐작한 범법 사실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바오로와 다투는 것은, 자기들만의 종교와 관련되고, 또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뿐이었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 그곳에서 이 사건에 관하여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바오로는 그대로 갇혀 있다가 폐하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황제께 보낼 때까지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에,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몸의 구조는 보통, 음식을 오전에는 몸 밖으로 내어 보내고, 오후에는 섭취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갈수록 섭취가 많아지는 현실입니다. 자연히 배설에 신경 쓰는 사회로 바뀌고 있습니다. 배설을 잘해야 몸도 건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지 않은 것을 버릴수록 견실해지고, 끊을수록 강인해집니다. ‘상투스’(sanctus)는 라틴 말로 ‘거룩하다’라는 뜻입니다. 어원은 ‘끊다’라는 동사입니다. 끊고 절제해야 거룩해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나무를 분재하는 곳을 가 보면, 연한 가지를 철사로 묶어 두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제멋대로 자라는 것을 막는 것이지요. 절제된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십니다. 그만큼 사랑이 어렵다는 가르침입니다. 스승님께서는 베드로를 훤히 알고 계셨습니다. 격정적인 성격을 잘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성격을 죽이라는 당부입니다. 맡겨진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삶’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원하지 않는 곳으로도 가야 한다.’ 베드로의 삶이 그렇게 바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이 들면 누구나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 삶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노년이 됩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헬레나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헬레나야!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헬레나야!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
사실은요! 주님!
입으로만 당신을 사랑하는 것같습니다
제가 아쉽고 당신께 바라는 것이 있을 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언제나 입으로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좋았다 싫었다…
저의 변덕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 좋았다 싫었다 합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이기적인 저의 모난 성격으로 당신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동안의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해봅니다
아니!
한번이라도 진실되게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야한다고
저의 이기심으로 당신을 배반하는 어리석은 신앙가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반성해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진실한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기를 기도해봅니다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며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묵상하며
♬ 요한의 아들 시몬아 / 권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