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연중 제11주간 금요일(6/18)


    말씀의 초대
    아탈야는 이제벨의 딸로서, 여호람과 함께 유다를 통치하였다. 아탈야는 다윗의 후손을 모조리 죽이려 한다. 그러나 아하즈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요아스를 보호하려고 군인들과 계약을 맺고, 사제들이 반기를 들었으며, 마침내 백성의 반란이 일어나자 아탈야의 통치 계획은 허사가 되고 만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신다. 땅에다 쌓아 두는 보물은 결국 좀먹거나 도둑이 들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삶에서 가치관의 변화를, 곧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재물을 섬길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요구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람들은 요아스에게 기름을 부은 다음,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1,1-4.9-18.20 그 무렵 아하즈야의 어머니 아탈야는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서는,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요람 임금의 딸이며 아하즈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살해될 왕자들 가운데에서, 아하즈야의 아들 요아스를 아탈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겨 두었으므로, 요아스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아탈야가 나라를 다스리는 여섯 해 동안, 요아스는 유모와 함께 주님의 집에서 숨어 지냈다. 칠 년째 되던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어 카리 사람 백인대장들과 호위병 백인대장들을 데려다가, 자기가 있는 주님의 집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는 그들과 계약을 맺고 주님의 집에서 맹세하게 한 다음, 왕자를 보여 주었다. 백인대장들은 여호야다 사제가 명령한 대로 다 하였다. 그들은 저마다 안식일 당번인 부하들뿐만 아니라 안식일 비번인 부하들까지 데리고 여호야다 사제에게 갔다. 사제는 주님의 집에 보관된 다윗 임금의 창과 방패들을 백인대장들에게 내주었다. 호위병들은 모두 무기를 손에 들고, 주님의 집 남쪽에서 북쪽까지 제단과 주님의 집에 서서 임금을 에워쌌다. 그때에 여호야다가 왕자를 데리고 나와, 왕관을 씌우고 증언서를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은 다음, 손뼉을 치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아탈야가 호위병들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백성이 모인 주님의 집으로 가서 보니, 임금이 관례에 따라 기둥 곁에 서 있고, 대신들과 나팔수들이 임금을 모시고 서 있었다.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는 가운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아탈야는 옷을 찢으며, “반역이다, 반역!” 하고 외쳤다.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가 군대를 거느린 백인대장들에게 명령하였다. “저 여자를 대열 밖으로 끌어내시오. 그를 따르는 자가 있거든 칼로 쳐 죽이시오.” 여호야다 사제는 이미 “주님의 집에서 그 여자를 죽이지 마라.” 하고 말해 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여자를 체포하였다. 그러고 나서 아탈야가 왕궁의 ‘말 문’으로 난 길에 들어서자, 거기에서 그 여자를 죽였다. 여호야다는 주님과 임금과 백성 사이에, 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을 맺게 하였다. 또한 임금과 백성 사이에도 계약을 맺게 하였다. 그 땅의 모든 백성이 바알 신전에 몰려가 그것을 허물고, 바알의 제단들과 그 상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었다. 그들은 또 바알의 사제 마탄을 제단 앞에서 죽였다. 여호야다 사제는 주님의 집에 감독을 세웠다.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였다. 아탈야가 왕궁에서 칼에 맞아 죽은 뒤로 도성은 평온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현세적 인간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재물을 섬길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을 섬기자니 눈앞의 재물이 탐나고, 재물을 섬기자니 양심이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하느님보다는 재물을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느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재물은 눈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다 쌓아 두지 말고, 하느님과 재물 가운데 양자택일하여 하느님만 주인으로 섬길 것을 명령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바로 그 가치관이 각 사람의 존재 방식, 생활 방식과 인생관을 결정하지요. 그렇다면 지금 나 자신에게 절대적인 가치는 무엇입니까? 하느님입니까? 재물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나눔과 섬김과 형제애를 발휘하시고, 정의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시고 살리십니다. 그러나 재산을 축적하는 일에 눈이 멀면 어떤 형태나 경로로든지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착취하거나 노예화하고, 또 더러는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렇게 얻어 낸 재산은 결국 우리의 인생이 다하는 날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따름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늘에 쌓은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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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1주간 금요일(6/18)


      말씀의 초대
      아탈야는 이제벨의 딸로서, 여호람과 함께 유다를 통치하였다. 아탈야는 다윗의 후손을 모조리 죽이려 한다. 그러나 아하즈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요아스를 보호하려고 군인들과 계약을 맺고, 사제들이 반기를 들었으며, 마침내 백성의 반란이 일어나자 아탈야의 통치 계획은 허사가 되고 만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신다. 땅에다 쌓아 두는 보물은 결국 좀먹거나 도둑이 들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삶에서 가치관의 변화를, 곧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재물을 섬길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요구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람들은 요아스에게 기름을 부은 다음,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1,1-4.9-18.20 그 무렵 아하즈야의 어머니 아탈야는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서는,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요람 임금의 딸이며 아하즈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살해될 왕자들 가운데에서, 아하즈야의 아들 요아스를 아탈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겨 두었으므로, 요아스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아탈야가 나라를 다스리는 여섯 해 동안, 요아스는 유모와 함께 주님의 집에서 숨어 지냈다. 칠 년째 되던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어 카리 사람 백인대장들과 호위병 백인대장들을 데려다가, 자기가 있는 주님의 집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는 그들과 계약을 맺고 주님의 집에서 맹세하게 한 다음, 왕자를 보여 주었다. 백인대장들은 여호야다 사제가 명령한 대로 다 하였다. 그들은 저마다 안식일 당번인 부하들뿐만 아니라 안식일 비번인 부하들까지 데리고 여호야다 사제에게 갔다. 사제는 주님의 집에 보관된 다윗 임금의 창과 방패들을 백인대장들에게 내주었다. 호위병들은 모두 무기를 손에 들고, 주님의 집 남쪽에서 북쪽까지 제단과 주님의 집에 서서 임금을 에워쌌다. 그때에 여호야다가 왕자를 데리고 나와, 왕관을 씌우고 증언서를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은 다음, 손뼉을 치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아탈야가 호위병들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백성이 모인 주님의 집으로 가서 보니, 임금이 관례에 따라 기둥 곁에 서 있고, 대신들과 나팔수들이 임금을 모시고 서 있었다.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는 가운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아탈야는 옷을 찢으며, “반역이다, 반역!” 하고 외쳤다.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가 군대를 거느린 백인대장들에게 명령하였다. “저 여자를 대열 밖으로 끌어내시오. 그를 따르는 자가 있거든 칼로 쳐 죽이시오.” 여호야다 사제는 이미 “주님의 집에서 그 여자를 죽이지 마라.” 하고 말해 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여자를 체포하였다. 그러고 나서 아탈야가 왕궁의 ‘말 문’으로 난 길에 들어서자, 거기에서 그 여자를 죽였다. 여호야다는 주님과 임금과 백성 사이에, 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을 맺게 하였다. 또한 임금과 백성 사이에도 계약을 맺게 하였다. 그 땅의 모든 백성이 바알 신전에 몰려가 그것을 허물고, 바알의 제단들과 그 상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었다. 그들은 또 바알의 사제 마탄을 제단 앞에서 죽였다. 여호야다 사제는 주님의 집에 감독을 세웠다.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였다. 아탈야가 왕궁에서 칼에 맞아 죽은 뒤로 도성은 평온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현세적 인간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재물을 섬길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을 섬기자니 눈앞의 재물이 탐나고, 재물을 섬기자니 양심이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하느님보다는 재물을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느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재물은 눈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다 쌓아 두지 말고, 하느님과 재물 가운데 양자택일하여 하느님만 주인으로 섬길 것을 명령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바로 그 가치관이 각 사람의 존재 방식, 생활 방식과 인생관을 결정하지요. 그렇다면 지금 나 자신에게 절대적인 가치는 무엇입니까? 하느님입니까? 재물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나눔과 섬김과 형제애를 발휘하시고, 정의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시고 살리십니다. 그러나 재산을 축적하는 일에 눈이 멀면 어떤 형태나 경로로든지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착취하거나 노예화하고, 또 더러는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렇게 얻어 낸 재산은 결국 우리의 인생이 다하는 날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따름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늘에 쌓은 제물 
    
    
    

  2. guest 님의 말: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께 저의 마음을 들킨 것같아 부끄러웠습니다
    맞아요 주님!

    저의 마음은 ……
    재물이 있는 것에 온통 마음을 뺏기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안그런 척….
    솔직하고 정직한 척 ….
    한국사람은 여덟가지 ” 쳬”로 망했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 저 같은 사람을 두고 한말 같습니다

    못난 사람이 잘난 척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
    없는 사람이 있는 척
    등등…..
    그 중에서도 재물에 대한 욕심은….
    아마 두째 가라면 섭섭해 할 사람이 바로 저 헬레나 입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당신께서는 저의 마음 보를 알고 계시지요?
    어느 때는 ….
    주일에 성당에서 봉헌을 할 때에도 설렁탕 한그릇 정도를 봉헌하면서
    갈등을 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2차 헌금을 할 때입니다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실 때에도….
    미사 오기 전 집에서 봉헌금을 준비해왔는데….
    헌금봉투에 자꾸 눈길이 갑니다
    저보다 재물이 많은 사람이 봉헌금을 적게 내는 것을 볼 때면….
    제 주제도 모르면서 너무 많이 내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봉헌금을 적게 내는 사람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재물이 그렇게 많은데도 봉헌금을 적게 내다니 하면서
    가장 중요한 미사시간에 분심이 들어 미사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때도….

    주님!
    제가 그렇습니다
    자기 주제도 모르면서 남이 얼마를 봉헌하는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참 주제 넘는 행동이지요?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말씀에 반성을 해보며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분수를 아는 신앙인
    주제를 아는 신앙인
    적어도….

    당신의 자녀로써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으로 살아야한다고
    다짐 또 다짐을 해봅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아멘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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