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성녀 마르타 기념일(7/29)


    마르타 성녀는 베타니아 출신으로, 마리아와 라자로와 자매·남매 사이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집에 자주 머무르셨고, 마르타와 마리아는 주님 일행을 정성껏 영접하였다. 뿐만 아니라, 라자로가 죽어서 나흘 동안 무덤에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요청으로 그의 오빠를 죽음에서 일으키셨다. 마르타는 대단히 활동적인 여인이다.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충실히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마르타를 활동적 신앙인의 모범으로 공경하고, 마리아를 관상 생활의 모범으로 공경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요한은 올바른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우리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자고 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따라서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지도 못한다(제1독서). 마르타는 생명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청하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시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마르타는 예수님께 원망 어린 말씀을 건넨다. 마르타는 아직까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완전히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라자로를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이 기적은 당신의 부활을 미리 보여 주신 사건이다. 마르타는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망설이지 않고 확신에 찬 신앙을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또는 루카 10,38-42> 그때에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르타의 오빠 라자로가 죽었습니다. 마르타는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잃었기 때문에 그 슬픔은 누구보다도 깊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반쯤은 볼멘 소리이고, 반쯤은 원망에 가깝습니다. 주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에도 가시 돋친 대답을 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르타의 소망은 오빠가 지금 여기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라자로를 다시 살려 내십니다. 이는 마르타의 신앙 고백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마르타는 주님이 원망스럽지만,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부활이시요 생명이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미사 때마다 주님의 몸을 모시며, 마르타의 신앙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의 힘이 주어질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Credo, Missa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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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마르타 기념일(7/29)


      마르타 성녀는 베타니아 출신으로, 마리아와 라자로와 자매·남매 사이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집에 자주 머무르셨고, 마르타와 마리아는 주님 일행을 정성껏 영접하였다. 뿐만 아니라, 라자로가 죽어서 나흘 동안 무덤에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요청으로 그의 오빠를 죽음에서 일으키셨다. 마르타는 대단히 활동적인 여인이다.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충실히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마르타를 활동적 신앙인의 모범으로 공경하고, 마리아를 관상 생활의 모범으로 공경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요한은 올바른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우리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자고 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따라서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지도 못한다(제1독서). 마르타는 생명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청하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시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마르타는 예수님께 원망 어린 말씀을 건넨다. 마르타는 아직까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완전히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라자로를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이 기적은 당신의 부활을 미리 보여 주신 사건이다. 마르타는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망설이지 않고 확신에 찬 신앙을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또는 루카 10,38-42> 그때에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르타의 오빠 라자로가 죽었습니다. 마르타는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잃었기 때문에 그 슬픔은 누구보다도 깊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반쯤은 볼멘 소리이고, 반쯤은 원망에 가깝습니다. 주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에도 가시 돋친 대답을 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르타의 소망은 오빠가 지금 여기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라자로를 다시 살려 내십니다. 이는 마르타의 신앙 고백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마르타는 주님이 원망스럽지만,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부활이시요 생명이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미사 때마다 주님의 몸을 모시며, 마르타의 신앙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의 힘이 주어질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Credo, Missa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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