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연중 제23주일(9/05)


    ▦ 오늘은 연중 제23주일입니다.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형식주의와 타협주의에 빠지지 않고, 공상과 환상을 좇지도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십자가가 있지만, 십자가 없는 인생을 꿈꾸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살면서 내려놓는 짐이 아닙니다. 자칫하여 십자가를 내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자신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미사를 정성스럽게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바로 지혜이시고, 진리이시며, 구원이시다. 참된 지혜이신 분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옥중에서 만난 오네시모스에 관하여 필레몬에게 편지를 쓴다. 바오로는 종의 신분인 오네시모스를 아들로 여기기 때문에, 필레몬에게 자신을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이기를 청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또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도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의미는 곧 ‘자기 포기’를 뜻한다(복음).
    제1독서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9,13-18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 그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필레몬서 말씀입니다.9ㄴ-10.12-17 사랑하는 그대여,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5-33 그때에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약간의 고통이라도 우선 피하고자 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거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받는 고통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지만, 남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고통은 참으로 감내하기 힘들어합니다. 그만큼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타인에게는 너그럽지 못한 우리입니다. 십자가는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십자가는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자신을 위한 길이라면 누구라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죽고 남을 살리는 행위가 곧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은 몹시도 힘든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면서 걸어간다면,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바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그 길을 걸으시면서 온갖 모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 이미 당신께서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걸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걷는 이 십자가의 길을 평화의 길, 생명의 길, 참행복의 길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에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면 결코 그 길은 진정한 의미에서 십자가의 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고통의 길 주님의 길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3주일(9/05)


      ▦ 오늘은 연중 제23주일입니다.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형식주의와 타협주의에 빠지지 않고, 공상과 환상을 좇지도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십자가가 있지만, 십자가 없는 인생을 꿈꾸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살면서 내려놓는 짐이 아닙니다. 자칫하여 십자가를 내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자신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미사를 정성스럽게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바로 지혜이시고, 진리이시며, 구원이시다. 참된 지혜이신 분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옥중에서 만난 오네시모스에 관하여 필레몬에게 편지를 쓴다. 바오로는 종의 신분인 오네시모스를 아들로 여기기 때문에, 필레몬에게 자신을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이기를 청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또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도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의미는 곧 ‘자기 포기’를 뜻한다(복음).
      제1독서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9,13-18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 그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필레몬서 말씀입니다.9ㄴ-10.12-17 사랑하는 그대여,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5-33 그때에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약간의 고통이라도 우선 피하고자 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거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받는 고통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지만, 남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고통은 참으로 감내하기 힘들어합니다. 그만큼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타인에게는 너그럽지 못한 우리입니다. 십자가는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십자가는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자신을 위한 길이라면 누구라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죽고 남을 살리는 행위가 곧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은 몹시도 힘든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면서 걸어간다면,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바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그 길을 걸으시면서 온갖 모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 이미 당신께서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걸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걷는 이 십자가의 길을 평화의 길, 생명의 길, 참행복의 길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에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면 결코 그 길은 진정한 의미에서 십자가의 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고통의 길 주님의 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