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연중 제23주간 금요일(9/10)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복음 선포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의무라고 말한다. 복음 선포는 신앙인의 직무로서 맡겨져 있다. 보수를 받으려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거저 전하는 것이며, 복음을 위하여 일을 하고, 복음에 동참하려고 선포한다는 것이다. 바오로에게는 복음이 삶의 전부이다(제1독서). 새로운 사회의 인간관계는 심판하고 단죄하는 관계가 아니라, 용서하고 자기 자신을 선물로 주는 관계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빼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고 하는 현실을 개탄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9,16-19.22ㄴ-27 형제 여러분,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9-4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福音)은 복된 말씀, 기쁜 소리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 자체가 사명이고 의무이며 직무라는 뜻입니다. 사명이기 때문에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고, 의무이기 때문에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직무이기 때문에 삶으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되,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는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지요. 눈먼 이는 곧 위선자이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이며, 불신하는 자들입니다. 만일 위선자가 아니라면 사람들에게 주님을 제대로 증언하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사람은 먼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서로가 서로에게 향기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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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3주간 금요일(9/10)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복음 선포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의무라고 말한다. 복음 선포는 신앙인의 직무로서 맡겨져 있다. 보수를 받으려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거저 전하는 것이며, 복음을 위하여 일을 하고, 복음에 동참하려고 선포한다는 것이다. 바오로에게는 복음이 삶의 전부이다(제1독서). 새로운 사회의 인간관계는 심판하고 단죄하는 관계가 아니라, 용서하고 자기 자신을 선물로 주는 관계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빼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고 하는 현실을 개탄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9,16-19.22ㄴ-27 형제 여러분,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9-4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福音)은 복된 말씀, 기쁜 소리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 자체가 사명이고 의무이며 직무라는 뜻입니다. 사명이기 때문에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고, 의무이기 때문에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직무이기 때문에 삶으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되,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는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지요. 눈먼 이는 곧 위선자이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이며, 불신하는 자들입니다. 만일 위선자가 아니라면 사람들에게 주님을 제대로 증언하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사람은 먼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서로가 서로에게 향기가 되어
    
    
    

  2. guest 님의 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눈먼 소경이 되고 싶었습니다
    눈먼 소경이 되어 당신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따라가고…
    눈먼 소경이 되어 욕심도 버리고 모든 고민과 미움도 버리고…
    위선도 버리고 눈먼 소경이 되어 ….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세속의 모든 욕심과 고민 이기심 미움등…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순수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께서 주신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번민도 미움도 욕심도 이기심도 모두 다…
    버리고 깨끗하게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말씀을 성찰하며
    위선적인 저의 모습에서 벗어나 순수하고 깨끗한모습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눈먼 소경이 된다해도…
    아멘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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