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대림 제2주간 금요일(12/10)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유익과 평화와 의로움을 바라신다고 전한다.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뒷걸음질 치셔서가 아니라 백성이 당신을 저버렸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지 않던 군중을 이젠 당신의 말씀도 듣지 않는다고 나무라신다. 백성은 요한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듣지 않았고, 예수님의 말씀에 평화와 기쁨을 느꼈지만, 역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비판하려 든다(복음).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군중의 귓전에는 회개하라던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아직도 생생하게 울려 옵니다. 그의 말이 구구절절이 옳지만, 귀에 거슬리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백성은 그에게 희망을 걸고 구름떼처럼 모여듭니다. 혹시 구약에서 오시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나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기에 앞서 생활 방식을 바꾸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에 고개를 내젓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며, 군중 가운데 계시는 분이 메시아이심을 선언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모두 세례자 요한을 외면하고 맙니다. 세례자 요한이 죽임을 당하자, 사람들의 이목은 모두 주님께 쏠립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지내시니까 그들은 주님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한때 그들은 주님을 메시아로 여겼고, 왕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요구가 거절되는 것처럼 보이자, 주님을 사정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또 바라는 대로 주님께서 움직여 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유로우신 분이십니다. 누구의 요구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께서 온 정성을 다 기울여 백성에게 다가가시고, 병을 고쳐 주시며,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보여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욕심을 비우고 오로지 주님께만 모든 희망을 건다면, 그 부담은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참행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지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희망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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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 제2주간 금요일(12/10)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유익과 평화와 의로움을 바라신다고 전한다.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뒷걸음질 치셔서가 아니라 백성이 당신을 저버렸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지 않던 군중을 이젠 당신의 말씀도 듣지 않는다고 나무라신다. 백성은 요한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듣지 않았고, 예수님의 말씀에 평화와 기쁨을 느꼈지만, 역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비판하려 든다(복음).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군중의 귓전에는 회개하라던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아직도 생생하게 울려 옵니다. 그의 말이 구구절절이 옳지만, 귀에 거슬리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백성은 그에게 희망을 걸고 구름떼처럼 모여듭니다. 혹시 구약에서 오시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나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기에 앞서 생활 방식을 바꾸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에 고개를 내젓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며, 군중 가운데 계시는 분이 메시아이심을 선언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모두 세례자 요한을 외면하고 맙니다. 세례자 요한이 죽임을 당하자, 사람들의 이목은 모두 주님께 쏠립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지내시니까 그들은 주님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한때 그들은 주님을 메시아로 여겼고, 왕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요구가 거절되는 것처럼 보이자, 주님을 사정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또 바라는 대로 주님께서 움직여 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유로우신 분이십니다. 누구의 요구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께서 온 정성을 다 기울여 백성에게 다가가시고, 병을 고쳐 주시며,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보여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욕심을 비우고 오로지 주님께만 모든 희망을 건다면, 그 부담은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참행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지요.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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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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