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왜 그러세요? 잘 살려고 노력해도 남을 죄짓게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고 하시니 무서워서 사람만나기도 어렵고, 일하기도 어렵고, 뭔가 움직이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작은 이들”은 분명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겠지요. 그리고 오늘날은 바로 내 옆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겠지요.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이들,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을 욕한 적 참 많음을 고백합니다.
제 마음에 안 들면 욕했고, 판단했고, 또 협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이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일을 할 때 힘을 빼앗고, 계속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데, 빛의 속도의 천 배 이상으로 판단을 하고 있으니 막을 방법이 지금으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진다면 판단하지 않고, 죄 짓지 않고, 방해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연자매를 걸지 않고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머리에 바이러스를 심어서 속도를 좀 늦추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좀더 생겨,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바이러스가 바로 용서와 사랑의 바이러스일텐데…,
만들자니 실력이 좀 부족하고…,
어디 좀 파는 곳은 없을까요?
그리고 주님!
저는 늘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제가 일흔 일곱 번을 죄를 짓고도 늘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저에게 “제 형제가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거 너무 어려운 것 아시죠?
물론 주님 말씀은 “무조건 용서해 주어라. 너도 용서받으면서 살고 있지 않느냐?”라는 말씀인데, 제 마음이 옹졸해서 참 안 됩니다.
또 주님께서는 “안 되는 것이 어디있어!”하시면서 “겨자씨 한 할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 그것이 저에게 복종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주님! 제가 그런 믿음이 없습니다요.
잘 아시잖습니까?
사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전에 좋아했던 사람도, 그의 잘못된 행동 하나를 보면 싫어지는데 어떻게 조건 없이, 요즘 광고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용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못 들은 걸로 하면 안될까요?
……,
주님! 저늘 늘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죄를 짓고 용서만 청하는 제 자신이 뻔뻔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참 두꺼워져서 당연히 용서를 청합니다.
주님! 제가 당연히 용서를 청하는 것처럼, 제 형제들에게도 당연히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꼭 명심하게 해 주십시오.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소홀함을 무관심으로 갚지 않으며, 불평을 방관으로 갚지 않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