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주님 공현 후 금요일(1/07)


    말씀의 초대
    세상을 이기는 힘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 믿음은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수난의 피를 흘리셨다는 성령의 증언을 믿는 것이다(제1독서). 당시 나병 환자들은 별도의 장소에서 격리된 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길을 갈 때는 가는 곳마다 자신에게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치며 다녀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들에게 다가가,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시며 치유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5-13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16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병 환자 시인 한하운 님의 ‘파랑새’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나병이 주는 고독과 사무치는 서러움이 묻어 있는 시입니다. 그 흉해진 얼굴을 내밀 수 없어 소록도 외딴섬에 꼭꼭 숨어 살아야 했던 시인은, 죽어서라도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르고 싶어 합니다. ‘푸른 슬픔’이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노래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이런 슬픈 노래를 부를지 모릅니다. 육신의 얼굴은 열심히 가꾸며 살지만, 정녕 우리의 흉한 내면의 얼굴은 바라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거짓과 시기, 질투와 분노, 온갖 욕망들이 종기처럼 돌출해 있는 내면의 얼굴은 나의 얼굴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혼의 나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병의 특징은 감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살점이 하나둘 떨어지고 더욱더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갑니다. 육신의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혼이 병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이렇게 아무런 감각 없이 점점 더 본디의 맑고 깨끗한 얼굴을 잃어 갑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던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제 우리 내면을 치유하고 싶어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 앞에 나서서 겸손되이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사람, 과연 그 사람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새로운 나를 지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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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주님 공현 후 금요일(1/07)


      말씀의 초대
      세상을 이기는 힘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 믿음은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수난의 피를 흘리셨다는 성령의 증언을 믿는 것이다(제1독서). 당시 나병 환자들은 별도의 장소에서 격리된 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길을 갈 때는 가는 곳마다 자신에게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치며 다녀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들에게 다가가,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시며 치유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5-13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16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병 환자 시인 한하운 님의 ‘파랑새’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나병이 주는 고독과 사무치는 서러움이 묻어 있는 시입니다. 그 흉해진 얼굴을 내밀 수 없어 소록도 외딴섬에 꼭꼭 숨어 살아야 했던 시인은, 죽어서라도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르고 싶어 합니다. ‘푸른 슬픔’이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노래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이런 슬픈 노래를 부를지 모릅니다. 육신의 얼굴은 열심히 가꾸며 살지만, 정녕 우리의 흉한 내면의 얼굴은 바라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거짓과 시기, 질투와 분노, 온갖 욕망들이 종기처럼 돌출해 있는 내면의 얼굴은 나의 얼굴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혼의 나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병의 특징은 감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살점이 하나둘 떨어지고 더욱더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갑니다. 육신의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혼이 병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이렇게 아무런 감각 없이 점점 더 본디의 맑고 깨끗한 얼굴을 잃어 갑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던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제 우리 내면을 치유하고 싶어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 앞에 나서서 겸손되이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사람, 과연 그 사람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새로운 나를 지으셨네
    
    
    

  2. guest 님의 말: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신의 말씀을 100% 믿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면서 묵상을 했지만
    나병환자의 마음도 온전히 이해하지는 않았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있었지만….
    그런데…
    몇 년동안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다보니 나병환자의 심정을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저도 나병환자처럼 남편의 건강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램과 당신께서 저의 아품을 헤아려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참 이기적인 생각이지요?
    하지만 저의 생각이 이기적이라고 해도 저의 뜻대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집안에 우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품이고 고통인지 새삼 느낍니다
    그것도 몇 년동안….
    웃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늘이 지고 걱정이 되고….
    그런 저의 마음이 이기적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언제나 합리화를 시키고 있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정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고…
    놀러한번 제대로 간적없고 앞만보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면서

    하지만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제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반성이 되었습니다
    저 자신만의 영화를 위해 남보다 저만 잘살기 바랬고
    베풀기보다 제가 더 많이 갖기를 원했고..
    무엇이든지 제가 더 잘나고 제가 잘되고 세상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제가 더 잘 살기를 원했습니다
    참 이기적이고 복음적이지 못한 삶을 꿈꾸고 바라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입으로만이 아닌 몸과 마음을 다해 당신을 온전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멘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묵상하며

    ♬ 새로운 나를 지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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