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 날)(2/02)


    ‘주님 봉헌 축일’은 예수님 탄생 40일째 되는 날 루카 복음(2,22-39)이 전하는 바와 같이 마리아와 요셉이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날 1년 동안 사용할 초를 축복하고 행렬을 하는 장엄 입당식을 하도록 권하고 있다. 초의 축복과 행렬을 통하여, 시메온이 고백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빛’이심을 드러낸다. 한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지정하여, 수도자를 비롯한 모든 교회의 봉헌 생활자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한 의미와 소명을 되새기도록 하였다.
    말씀의 초대
    말라키 예언자는 만군의 주님께서 성전에 홀연히 나타나시어 이스라엘의 제사를 정화하심으로써 주님 마음에 들도록 하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이러한 예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에 봉헌되심으로써 성취되었음을 드러낸다. 시메온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고, 자신의 눈으로 ‘주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4<또는 히브 2,14-18>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3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이산가족 가운데 한 분이 꿈에 그리던 가족을 상봉하고 나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꼭 하고 싶던 일을 마침내 이루었을 때 흔히 이런 말을 씁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목적하던 바를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의 시메온이 바로 이런 경우라 하겠습니다. 시메온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으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이 위로받는 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에 정결례를 위해 봉헌하러 오신 마리아와 요셉에게서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고,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시메온은 자신이 평생을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임을 깨닫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실 이런 기다림의 삶입니다. 어쩌면 평생 동안 내가 믿고 기다리는 주님을 삶 속에서 깊이 깨닫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100년을 넘게 살든, 단 몇 년을 살든, 중요한 것은 주님을 깊이 깨닫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놓고 나면 우리 인생에 무엇이 남을 수 있는지요? 지금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주님을 깊이 만날 때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당신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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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 날)(2/02)


      ‘주님 봉헌 축일’은 예수님 탄생 40일째 되는 날 루카 복음(2,22-39)이 전하는 바와 같이 마리아와 요셉이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날 1년 동안 사용할 초를 축복하고 행렬을 하는 장엄 입당식을 하도록 권하고 있다. 초의 축복과 행렬을 통하여, 시메온이 고백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빛’이심을 드러낸다. 한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지정하여, 수도자를 비롯한 모든 교회의 봉헌 생활자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한 의미와 소명을 되새기도록 하였다.
      말씀의 초대
      말라키 예언자는 만군의 주님께서 성전에 홀연히 나타나시어 이스라엘의 제사를 정화하심으로써 주님 마음에 들도록 하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이러한 예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에 봉헌되심으로써 성취되었음을 드러낸다. 시메온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고, 자신의 눈으로 ‘주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4<또는 히브 2,14-18>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3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이산가족 가운데 한 분이 꿈에 그리던 가족을 상봉하고 나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꼭 하고 싶던 일을 마침내 이루었을 때 흔히 이런 말을 씁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목적하던 바를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의 시메온이 바로 이런 경우라 하겠습니다. 시메온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으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이 위로받는 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에 정결례를 위해 봉헌하러 오신 마리아와 요셉에게서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고,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시메온은 자신이 평생을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임을 깨닫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실 이런 기다림의 삶입니다. 어쩌면 평생 동안 내가 믿고 기다리는 주님을 삶 속에서 깊이 깨닫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100년을 넘게 살든, 단 몇 년을 살든, 중요한 것은 주님을 깊이 깨닫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놓고 나면 우리 인생에 무엇이 남을 수 있는지요? 지금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주님을 깊이 만날 때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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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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