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연중 제6주간 수요일(2/16)


    말씀의 초대
    노아가 사십 일간의 홍수가 끝나고 이레 뒤에 땅에 물이 말랐는지를 확인하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더니, 비둘기가 올리브 잎을 물고 왔다. 비둘기와 올리브 잎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노아와 함께, 옛 시대는 가고 새로운 이스라엘이 시작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눈먼 이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치유하신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다(복음).
    제1독서
    <노아가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8,6-13.20-22 사십 일이 지난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그는 또 물이 땅에서 빠졌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려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자 비둘기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첫째 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나를 가치 있는 삶으로 이끌어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겠다./ 손으로만 더듬어 알 수 있었던 선생님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그녀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겠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나무와 꽃들 그리고 노을을 보고 싶다. 헬렌 켈러의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이라는 글의 첫 부분입니다. 헬렌 켈러는 한 살 때 심한 열병으로 청각과 시각을 영구히 잃고 캄캄한 절벽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중증 장애인을 앤 설리번 선생님은 정성과 사랑으로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헬렌 켈러는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게 된다면, 나무와 꽃들, 저녁노을과 밤하늘의 별들보다 가장 먼저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 낸 그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벳사이다의 눈먼 이가 눈을 뜹니다. 그가 육신의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바라본 사람이 예수님입니다. 그에게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은, 단지 육신의 눈이 밝아졌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든 이를 용서하시고 품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얼굴’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오늘의 나를 만들어 내신 분께서 계십니다. 내 인생에, 숱한 사람들과 만남 안에 내 인생을 섭리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세상 것에 눈먼 이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분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 눈이 열린 사람은 행복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눈을 뜨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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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6주간 수요일(2/16)


      말씀의 초대
      노아가 사십 일간의 홍수가 끝나고 이레 뒤에 땅에 물이 말랐는지를 확인하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더니, 비둘기가 올리브 잎을 물고 왔다. 비둘기와 올리브 잎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노아와 함께, 옛 시대는 가고 새로운 이스라엘이 시작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눈먼 이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치유하신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다(복음).
      제1독서
      <노아가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8,6-13.20-22 사십 일이 지난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그는 또 물이 땅에서 빠졌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려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자 비둘기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첫째 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나를 가치 있는 삶으로 이끌어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겠다./ 손으로만 더듬어 알 수 있었던 선생님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그녀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겠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나무와 꽃들 그리고 노을을 보고 싶다. 헬렌 켈러의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이라는 글의 첫 부분입니다. 헬렌 켈러는 한 살 때 심한 열병으로 청각과 시각을 영구히 잃고 캄캄한 절벽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중증 장애인을 앤 설리번 선생님은 정성과 사랑으로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헬렌 켈러는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게 된다면, 나무와 꽃들, 저녁노을과 밤하늘의 별들보다 가장 먼저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 낸 그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벳사이다의 눈먼 이가 눈을 뜹니다. 그가 육신의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바라본 사람이 예수님입니다. 그에게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은, 단지 육신의 눈이 밝아졌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든 이를 용서하시고 품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얼굴’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오늘의 나를 만들어 내신 분께서 계십니다. 내 인생에, 숱한 사람들과 만남 안에 내 인생을 섭리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세상 것에 눈먼 이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분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 눈이 열린 사람은 행복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눈을 뜨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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