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하고 있는데,
한국 천주교회도 국가와 같이 이날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여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와 인권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이날 각 교구마다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주님의 종은 온갖 수치와 모욕을 거부하지도 물러서지도 않는다.
오로지 주님께서 의롭다 인정하시니 주님을 믿고 얼굴을
차돌처럼 들고 온갖 박해를 묵묵히 견딘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에 제자들이 근심스러워진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같은 식탁에서 빵을 나누어도 배반자가 있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도 한마디 여쭙는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복음)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0,4-9ㄱ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 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 | | | | | | | |
성주간 수요일(장애인의 날)(4/20)
우리나라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하고 있는데, 한국 천주교회도 국가와 같이 이날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여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와 인권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이날 각 교구마다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주님의 종은 온갖 수치와 모욕을 거부하지도 물러서지도 않는다. 오로지 주님께서 의롭다 인정하시니 주님을 믿고 얼굴을 차돌처럼 들고 온갖 박해를 묵묵히 견딘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에 제자들이 근심스러워진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같은 식탁에서 빵을 나누어도 배반자가 있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도 한마디 여쭙는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복음)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0,4-9ㄱ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 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유다를 왜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뻔히 배신할 줄 아시면서 유다 같은 사람을 왜 제자로 삼고 발을 씻어 주시고 빵을 함께 나누셨을까요?’ 누군가 불만스러운 듯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해 왔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사랑은 따지고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를 부르실 때 따지고 계산해서 그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어부면 어부인 대로, 세리면 세리인 대로 사랑은 존재 그대로 부르는 것입니다. 어쩌다 그들이 나중에 당신께 침을 뱉고 돌아서도, 값을 매겨 짐승처럼 당신을 팔아넘겨도 있는 그대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로 부르심을 받아 제자가 되었지만 우리 또한 얼마나 예수님을 배반하고 삽니까? 그래도 우리를 불러 주시고 사랑하시는 것이 예수님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사실 베드로와 유다 모두 배반자로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문지기 하녀 앞에서도 쩔쩔매며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루카 22,33; 마태 26,69-70 참조). 그런데 유다와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끝까지 예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배반을 했지만 먼발치에서라도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따릅니다. 반대로 유다의 시선은 끝까지 자신에게 가 있었습니다. 결국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보지 못하고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자살을 하고 맙니다. 우리가 같은 죄의 어둠 속에 있어도, 자신을 바라보면 ‘절망스러운 어둠’이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새벽을 기다리는 어둠’이 됩니다. 우리 모두 늘 주님을 배반하며 사는 죄인이지만, 그리고 미사에 참례하고 같은 빵을 나누며 살지만, 베드로와 유다처럼 다른 운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안에 갇혀 있느냐, 주님을 향해 열려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주님!
엊그네 머리에 재를 얹은 것 같은데 어느새 성주간이 돌아왔네요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다짐했던 일들을 실천하지 못해
반성을 하면서 그야말로 반성만 하면서 복음묵상을 했지요
그리;고 또 다시 다짐을 내년에는 꼭 실천을 하겠다는 ….
하지만 언제나 공수표만 날리고 있습니다
언제나 내년에는 다음에는 하면서 ㅠ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이버성당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비록 지키지 못할지라도 저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기쁘다는 생각도 들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말씀에 저에게 하신말씀 같아 뜨끔했습니다
반성도 하면서 다짐도 하고….
복음묵상을 통해서 저의 단점과 부족함 못된 심성 나쁜 습관 이기심 시기 질투 등등
참 많은 것을 주고 받는 사이버성당에서의 복음묵상을 한지 10여년이 되지만
아직도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의 신앙심을 반성하면서
해마다 다짐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성숙한 신앙인
헬레나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며 반성하지 않는 외인만도 못한 신앙가 헬레나는
되지 않아야 한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자신있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비겁한 신앙가 헬레나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
아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