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6/13)


    안토니오 성인은 1195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파도바의 안토니오라고 불리는 것은 파도바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이다. 성인은 모로코에서 최초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수사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에 도착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아 평소 친분이 있던 작은 형제회에 입회한다. 사제로 서품되어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고해 사제와 유명한 설교가로서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이끌었다. 평소 몸이 약했던 성인은 36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1232년)에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슬프고 가난해 보이지만 그들은 진리와 말씀의 힘으로 마음은 늘 기쁘고 풍요롭다. 매질과 모욕, 옥살이를 당해도 그들은 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진실한 사랑을 전한다. 초대 교회의 예수님 제자들의 선교 모습이다(제1독서). 이스라엘의 복수 동태법은 무자비하게 복수를 하는 것에서 가해자를 보호하고 형평성에 따른 동등한 형태의 벌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것마저도 거부하시면서 오히려 더욱더 적극적인 사랑을 바라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6,1-10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살면서 억울한 일이 많습니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소외를 당하고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벌이나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기도 하고, 누명을 쓰거나 이유 없이 해를 입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기도 합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고통을 안겨 준 사람에게 그만큼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면 얼마나 시원하겠습니까? 내가 받은 슬픔과 고통을 그들도 똑같이 받아 보아야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정의가 바로 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24)는 ‘복수 동태법’이라는 법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그와는 반대로 더 억울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고”, “속옷을 가지려거든 겉옷까지 내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구나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느냐고 항변하고 싶어집니다.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은 ‘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만 갚을 때 그 악의 세력은 더욱 번창해 갑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 대 주는 누군가의 ‘바보 같은 사랑’과 희생이 있을 때라야 악은 그 힘을 잃고 맙니다. 사회에 질서와 정의를 세우는 것은 인간이 만든 법과 힘일 것 같지만, 사실은 더 깊은 곳에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입니다. 전능하신 힘을 가지신 주님께서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바보 같은 사랑을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자캐오나무-그대 사랑에 눈뜰 때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6/13)


      안토니오 성인은 1195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파도바의 안토니오라고 불리는 것은 파도바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이다. 성인은 모로코에서 최초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수사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에 도착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아 평소 친분이 있던 작은 형제회에 입회한다. 사제로 서품되어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고해 사제와 유명한 설교가로서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이끌었다. 평소 몸이 약했던 성인은 36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1232년)에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슬프고 가난해 보이지만 그들은 진리와 말씀의 힘으로 마음은 늘 기쁘고 풍요롭다. 매질과 모욕, 옥살이를 당해도 그들은 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진실한 사랑을 전한다. 초대 교회의 예수님 제자들의 선교 모습이다(제1독서). 이스라엘의 복수 동태법은 무자비하게 복수를 하는 것에서 가해자를 보호하고 형평성에 따른 동등한 형태의 벌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것마저도 거부하시면서 오히려 더욱더 적극적인 사랑을 바라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6,1-10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살면서 억울한 일이 많습니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소외를 당하고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벌이나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기도 하고, 누명을 쓰거나 이유 없이 해를 입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기도 합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고통을 안겨 준 사람에게 그만큼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면 얼마나 시원하겠습니까? 내가 받은 슬픔과 고통을 그들도 똑같이 받아 보아야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정의가 바로 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24)는 ‘복수 동태법’이라는 법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그와는 반대로 더 억울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고”, “속옷을 가지려거든 겉옷까지 내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구나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느냐고 항변하고 싶어집니다.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은 ‘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만 갚을 때 그 악의 세력은 더욱 번창해 갑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 대 주는 누군가의 ‘바보 같은 사랑’과 희생이 있을 때라야 악은 그 힘을 잃고 맙니다. 사회에 질서와 정의를 세우는 것은 인간이 만든 법과 힘일 것 같지만, 사실은 더 깊은 곳에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입니다. 전능하신 힘을 가지신 주님께서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바보 같은 사랑을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자캐오나무-그대 사랑에 눈뜰 때
    
    
    

  2. guest 님의 말: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엄마!

    책하고 옷 그리고 중요한 물건들 소포로 부쳤구요
    나머지 잡다한 물건들은 필요한 친구들한테 선물했어요
    23일날 한국에 도착해요 전화할께요

    그래 수고했다
    짐 정리 잘하고 티나할머니한테 감사의 인사 드리고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필요한 물건들 선물로 주고와라
    한국에 도착하면 전화해 마중나갈께

    주님!
    오늘 바울리나가
    영국에서 영어연수한다고 간지 6년만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온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바울리나의 전화를 받고나니 기쁘기도 하면서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산란하기도 했습니다
    6년동안….
    정말 힘들고 가슴아팠던 일들이 많았지요
    당신께서도 아시겠지만 억울한 일도 많았고 죽고 싶은만큼….
    하지만 그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참고 지냈던 힘의 원동역은 당신께서
    저를 사랑해주셨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너무 너무 힘들고 지치고 억울하고 외로웠던 지난 6년동안…..
    복음묵상을 하면서 당신께 원망도 하고 당신께 저의 잘못을 빌고
    6년동안 제가 한 것은 복음묵상이 아니라 지치고 힘들었던 저의 삶을
    고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을 원망도 많이 했지요
    딸아이한테 학비를 보내느라 제대로 잠 한번 편하게 잘수 없었던 6년동안
    남편은 아프다고 학비걱정 한번 하지 않은체 자신만을 생각함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런 남편을 불쌍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많이 미워했습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남편이 미워서….
    사실은 저도 위로 받고 싶었는데….

    이제 6년동안의 유학생활을 끝내고 집에 온다고 합니다
    무거웠던 저의 몸과 마음도 가벼워 지리라 생각하니 기쁩니다
    딸아이가 오면 그동안 미워했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착해서가 아니라 저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사실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가슴아픈 일인지
    제 자신 너무도 잘알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말씀을 깊이 새기며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당신을 생각하며
    저도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저에게아품과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해주어야겟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딸 바울리나를 아무 탈없이 유학생활을 하게 해주신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아멘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묵상하며

    ♬ 자캐오나무-그대 사랑에 눈뜰 때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