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6/20)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시고 앞으로 보여 줄 미지의 땅으로 떠나라고 명령하신다. 아브람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길을 떠남으로써 신앙의 역사가 시작된다. 주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큰 민족이 될 것을 약속하시며 복을 내리시고 모든 이의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제1독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잘 보지만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남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은 교만에서 나온다(복음).
    제1독서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2,1-9 그 무렵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아브람은 아내 사라이와 조카 롯과, 자기가 모은 재물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아브람은 그 땅을 가로질러 스켐의 성소 곧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는 그곳을 떠나 베텔 동쪽의 산악 지방으로 가서, 서쪽으로는 베텔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 차츰차츰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생 동안 직접 보지 못하는 얼굴이 있습니다. 늘 함께 있지만 오로지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얼굴입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은 직접 이리저리 살펴볼 수 있지만 자신의 얼굴은 반사경에 비추어 보아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 사람들이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잘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논어』에 우리가 잘 아는 ‘일일 삼성’(一日三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의외로 잘 모르고 삽니다. 남의 마음이나 행동은 무엇이 옳은지 평가를 잘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이나 행동은 주관적 편견에 빠져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객관화하여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삽니다. 그렇다면 우리 내면의 얼굴은 얼마나 자주 살펴보고 있는지요?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을 잘도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내면의 행동과 태도는 얼마나 자주 올바르게 식별하고 반성하는지요? 우리가 하루에 거울을 들여다보는 횟수만큼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아도 우리의 내면은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만큼만 자신을 되돌아보고 올바르게 행동하여도 우리는 누구보다도 성숙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안의 그빛 (Con Dios-서울대교구 연합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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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2주간 월요일(6/20)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시고 앞으로 보여 줄 미지의 땅으로 떠나라고 명령하신다. 아브람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길을 떠남으로써 신앙의 역사가 시작된다. 주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큰 민족이 될 것을 약속하시며 복을 내리시고 모든 이의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제1독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잘 보지만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남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은 교만에서 나온다(복음).
      제1독서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2,1-9 그 무렵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아브람은 아내 사라이와 조카 롯과, 자기가 모은 재물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아브람은 그 땅을 가로질러 스켐의 성소 곧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는 그곳을 떠나 베텔 동쪽의 산악 지방으로 가서, 서쪽으로는 베텔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 차츰차츰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생 동안 직접 보지 못하는 얼굴이 있습니다. 늘 함께 있지만 오로지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얼굴입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은 직접 이리저리 살펴볼 수 있지만 자신의 얼굴은 반사경에 비추어 보아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 사람들이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잘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논어』에 우리가 잘 아는 ‘일일 삼성’(一日三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의외로 잘 모르고 삽니다. 남의 마음이나 행동은 무엇이 옳은지 평가를 잘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이나 행동은 주관적 편견에 빠져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객관화하여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삽니다. 그렇다면 우리 내면의 얼굴은 얼마나 자주 살펴보고 있는지요?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을 잘도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내면의 행동과 태도는 얼마나 자주 올바르게 식별하고 반성하는지요? 우리가 하루에 거울을 들여다보는 횟수만큼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아도 우리의 내면은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만큼만 자신을 되돌아보고 올바르게 행동하여도 우리는 누구보다도 성숙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안의 그빛 (Con Dios-서울대교구 연합팀)
    
    
    

  2. guest 님의 말: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주님!
    어제는 오랫만에 잠을 잤습니다
    아들녀석 덕분에….
    피곤이 누적되어 지친 저의 모습이 안되 보였는지 쉬라고 ….
    오랫만에 일찍 누어있으려니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온갖 공상과 망상으로 잠이 오지 않고 복음묵상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
    산란한 마음을 접고 꿈나라로 갔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
    지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기를 비는 마음으로 성호를 긋고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말씀에 온갖 위선과 교만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저에게 하신말씀 같았습니다
    자신은 정직한 척 열심한 신앙인인 척 남들이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는 것은
    신앙심이 없어서이고 제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하는 것은 여건이 되지 않아서라고
    남들한테는 한없이 인색하면서 자신한테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관대한 비겁한 모습들이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부끄럽다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복음말씀을 읽고 또 읽어보고 묵상을 하면서
    저에게 가장 적절한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눈에 티눈을 보면서 저의 들보를 빼내지 못하는 정직하지 못한 저의 마음

    복음을 묵상하면서

    마음부터 정직하고 순수해야하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노력하는 신앙인으로…..
    남의 허물을 감싸주며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핑계되지 않으며 겸손하고 정직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순수해야 한다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부족한 저의 모든 부분이 당신의 사랑과 자비로
    치유되기를 기도해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말씀을 성찰하며

    겸손한 신앙인 정직한 신앙인 사랑이 많은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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