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연중 제25주일(9/18)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5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포도밭에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아침 일찍부터 부름 받은 사람도 있고 오후 늦게 부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부름을 받았든 부름을 받은 것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주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같지 않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 위에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도 주님께서는 용서하신다. 죄인들과 불의한 사람을 포기하시지 않고 기다리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서 필리피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바오로 사도의 희망은 닥쳐 올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온 몸으로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임을 고백한다. 복음을 전파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오로 사도는 삶과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제2독서). 바리사이들과 유다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자신들의 충실성에 대하여 마땅한 대가를 받으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는 비유 말씀으로 우리 인간의 생각과 기대와는 달리, 주님께서는 주도권을 가진 자유로운 사랑을 지니신 분이심을 드러내신다(복음).
    제1독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5,6-9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1,20ㄷ-24.27ㄱ 형제 여러분, 나는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계산법이 우리와 달라서 때때로 우리는 당황합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그대로 둔 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마태 18,12 참조), 세상 사는 이치와 전혀 다른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오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포도밭에 아침부터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일이 거의 끝날 무렵에 와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받습니다. 마치 평생을 착하게 산 사람이나, 평생 강도 짓을 하다가 죽기 바로 전에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죽은 강도가 똑같은 대접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루카 23,42 참조). 예수님의 계산법이 이렇다면, 평생 즐길 것 즐기고 제멋대로 놀다가 죽기 얼마 전에 회개하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느 만큼 생활이 안정되고 시간도 여유가 있을 때, 그때부터 열심히 성당에 나가고 봉사도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끝까지 회개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은 부름 받는 순간부터 주님께 “예!” 하고 응답하며 그 길을 충실하게 사는 일을 말합니다. 일찍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억울해할 일도, 늦게 부름 받았다고 덜 억울해할 일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다고 자랑할 것도, 반대로 짧게 했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의 일은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느냐를 따지는 ‘양’(量)의 개념도 아니고 맡겨진 일을 얼마나 잘했느냐를 따지는 ‘질’(質)의 개념도 아닙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응답하여 얼마나 변화된 삶을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찾아 나서리 / 주비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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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5주일(9/18)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5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포도밭에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아침 일찍부터 부름 받은 사람도 있고 오후 늦게 부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부름을 받았든 부름을 받은 것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주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같지 않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 위에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도 주님께서는 용서하신다. 죄인들과 불의한 사람을 포기하시지 않고 기다리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서 필리피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바오로 사도의 희망은 닥쳐 올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온 몸으로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임을 고백한다. 복음을 전파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오로 사도는 삶과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제2독서). 바리사이들과 유다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자신들의 충실성에 대하여 마땅한 대가를 받으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는 비유 말씀으로 우리 인간의 생각과 기대와는 달리, 주님께서는 주도권을 가진 자유로운 사랑을 지니신 분이심을 드러내신다(복음).
      제1독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5,6-9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1,20ㄷ-24.27ㄱ 형제 여러분, 나는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계산법이 우리와 달라서 때때로 우리는 당황합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그대로 둔 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마태 18,12 참조), 세상 사는 이치와 전혀 다른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오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포도밭에 아침부터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일이 거의 끝날 무렵에 와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받습니다. 마치 평생을 착하게 산 사람이나, 평생 강도 짓을 하다가 죽기 바로 전에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죽은 강도가 똑같은 대접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루카 23,42 참조). 예수님의 계산법이 이렇다면, 평생 즐길 것 즐기고 제멋대로 놀다가 죽기 얼마 전에 회개하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느 만큼 생활이 안정되고 시간도 여유가 있을 때, 그때부터 열심히 성당에 나가고 봉사도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끝까지 회개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은 부름 받는 순간부터 주님께 “예!” 하고 응답하며 그 길을 충실하게 사는 일을 말합니다. 일찍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억울해할 일도, 늦게 부름 받았다고 덜 억울해할 일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다고 자랑할 것도, 반대로 짧게 했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의 일은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느냐를 따지는 ‘양’(量)의 개념도 아니고 맡겨진 일을 얼마나 잘했느냐를 따지는 ‘질’(質)의 개념도 아닙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응답하여 얼마나 변화된 삶을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찾아 나서리 / 주비루스
    
    
     
    

  2. guest 님의 말: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할때마다 느끼는 것은 ……
    저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수 있는지…

    어떻게…

    하루종일 일한 사람과 하시간동안만 일한 사람의 품삯이 같은지…

    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계산법과 저의 계산법이 판이하게 틀린지….

    그러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감히
    엉검생신 당신의 마음까지 제 마음대로 하려는 못된 심성이…..
    저 라는 사람은 구제불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만의 극치인 저의 욕심과 건망진마음이 당신의 말씀까지 “토” 를 달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으면서 ……
    저에게만 인색한 사랑을 주신다고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남의 것만 크게 보이니….
    눈뜬 장님이 되어있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드니…..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쥐꼬리만큼은 있나봅니다
    당신께서 저만 바라봐 주시기를 기대하는 어린이만도 못한 쩨쩨한 저의 신앙심이
    오늘따라 유난히 작게 보입니다
    아직은 저의 신앙이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꼴찌가 되지 않도록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자신의 능력과 신앙심을 과대포장하지 않으며 겸손하게 신앙인답게….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묵상하며


    ♬ 내 생애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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