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연중 제25주간 목요일(9/22)


    말씀의 초대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유다 공동체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마리아인들의 반대 때문에 성전 재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까이 예언자는 성전 재건을 독촉하며 성전을 통하여 만군의 주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실 것임을 선포한다(제1독서). 헤로데는 예수님을 자신이 목을 베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죄 때문에 혼란 속에 두려움을 안고 사는 권력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복음).
    제1독서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받으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8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고대 벽화나 상형 문자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세모로 그리고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픈 이유는 죄를 지을 때마다 세모꼴 양심이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서리가 마음을 긁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범죄를 하면서 모서리는 점점 닳아 동그랗게 변하고 맙니다. 결국 어른이 되면 잘못을 해도 별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도 이렇게 날카로운 양심을 가진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과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이 어느덧 양심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습니다. 이제는 의인 요한의 생명을 잔칫상의 오락거리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헤로데에게는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자신은 어둠 속에 사라지고 두려움과 정치적 생존 본능만이 번뜩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지은 죄를 되돌아보며 뉘우치고 자신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성찰과 정화의 시간이 없이 거듭되는 죄는 양심을 무뎌지게 하며, 양심이 무뎌지면 마침내 바다 한가운데에서 좌표를 잃은 배처럼 우리는 제 모습을 잃고 표류하고 맙니다. 어느 날 문득 이전의 내가 아닌 낯선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이것이 헤로데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26. Une soif emplit notre ame 우리 영혼 가득한 갈망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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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5주간 목요일(9/22)


      말씀의 초대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유다 공동체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마리아인들의 반대 때문에 성전 재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까이 예언자는 성전 재건을 독촉하며 성전을 통하여 만군의 주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실 것임을 선포한다(제1독서). 헤로데는 예수님을 자신이 목을 베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죄 때문에 혼란 속에 두려움을 안고 사는 권력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복음).
      제1독서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받으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8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고대 벽화나 상형 문자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세모로 그리고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픈 이유는 죄를 지을 때마다 세모꼴 양심이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서리가 마음을 긁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범죄를 하면서 모서리는 점점 닳아 동그랗게 변하고 맙니다. 결국 어른이 되면 잘못을 해도 별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도 이렇게 날카로운 양심을 가진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과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이 어느덧 양심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습니다. 이제는 의인 요한의 생명을 잔칫상의 오락거리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헤로데에게는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자신은 어둠 속에 사라지고 두려움과 정치적 생존 본능만이 번뜩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지은 죄를 되돌아보며 뉘우치고 자신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성찰과 정화의 시간이 없이 거듭되는 죄는 양심을 무뎌지게 하며, 양심이 무뎌지면 마침내 바다 한가운데에서 좌표를 잃은 배처럼 우리는 제 모습을 잃고 표류하고 맙니다. 어느 날 문득 이전의 내가 아닌 낯선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이것이 헤로데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26. Une soif emplit notre ame 우리 영혼 가득한 갈망 있으니
    
    
    

  2. guest 님의 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하였다”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도 당신을 만나 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아요
    정말 저를 사랑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하지요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도 당신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복음묵상을 합니다
    제대로 하지 못한 묵상이지만 마음만은 ...
    당신이 보고 싶고 그립고 당신을 만난다면
    저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기쁨도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밤이 깊었습니다
    몇시간째 컴퓨터와 씨름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숙제는 해야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고장난 컴퓨터를
    붙잡고 실갱이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하였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꿈속에서나마 당신을 만나 힘들고 지친 저의 몸과 마음이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당신을 믿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삼으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 헬레나로 살겟습니다
    아니!
    노력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아멘


    ♬ You raise m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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