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9/23)


    비오 성인은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났으며,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사제가 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처럼 손과 발, 가슴에서 피를 흘려 ‘오상의 비오 신부’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918년부터 성인이 세상을 떠난 1968년까지 50년 동안 오상의 고통을 간직한 채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희생하며 살았다. 2002년 6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를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하까이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느님의 불기둥이 백성 가운데에 머물러 있었음을 떠올리게 하며, 이제는 그분의 영이 백성에게 머물게 되리라고 전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신앙의 열성으로 지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통해 많은 복을 받게 되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신다.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 신앙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여기에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합당한 응답을 해야 한다(복음).
    제1독서
    <머지않아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5ㄴㅡ2,9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이었다. 그해 일곱째 달 스무하룻날에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너는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와 나머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 가운데 이 집의 옛 영화를 본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느냐? 지금은 이 집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너희 눈에도 있으나마나 하지 않느냐? 그러나 즈루빠벨아, 이제 용기를 내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야, 용기를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일을 하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대로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에 머무를 터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 정녕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머지않아 나는 다시 하늘과 땅, 바다와 뭍을 뒤흔들리라. 내가 모든 민족들을 뒤흔들리니 모든 민족들의 보화가 이리 들어오리라. 그리하여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은도 나의 것, 금도 나의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이 집의 새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이곳에 평화를 주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당신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2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면 무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런저런 궁색한 대답은 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대답은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질문이 어려우면 스스로 “나는 나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어 보면 어떨지요? 이것 또한 이런저런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수록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것이 진정 나인가 다시 물으면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이렇게 자신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날마다 눈 뜨고 살아 있는 내 자신도 모르는데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쭈어 보면 어떨지요? 그것 또한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실지 이것저것 추측해 볼 수 있지만, 나에게 깊이 와 닿는 진정한 대답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질문은 사실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누구이신지를 깨달으면,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고, 내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를 알면 주님도 누구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그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으면 다른 두 가지 대답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안고 사는 이런 근원적인 물음은 어느 날 한 순간 은총으로 깨달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화두처럼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물음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물음에 대한 온전한 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 안에 해답이 있다고 하듯, 이런 물음을 안고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삶 깊은 곳에 답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라고 하셨지요. 우리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 온전히 드러나는 날,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뵙게 됩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는 물음 속에 하느님 얼굴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사람의 아들 / 갓등2집-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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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9/23)


      비오 성인은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났으며,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사제가 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처럼 손과 발, 가슴에서 피를 흘려 ‘오상의 비오 신부’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918년부터 성인이 세상을 떠난 1968년까지 50년 동안 오상의 고통을 간직한 채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희생하며 살았다. 2002년 6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를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하까이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느님의 불기둥이 백성 가운데에 머물러 있었음을 떠올리게 하며, 이제는 그분의 영이 백성에게 머물게 되리라고 전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신앙의 열성으로 지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통해 많은 복을 받게 되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신다.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 신앙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여기에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합당한 응답을 해야 한다(복음).
      제1독서
      <머지않아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5ㄴㅡ2,9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이었다. 그해 일곱째 달 스무하룻날에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너는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와 나머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 가운데 이 집의 옛 영화를 본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느냐? 지금은 이 집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너희 눈에도 있으나마나 하지 않느냐? 그러나 즈루빠벨아, 이제 용기를 내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야, 용기를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일을 하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대로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에 머무를 터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 정녕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머지않아 나는 다시 하늘과 땅, 바다와 뭍을 뒤흔들리라. 내가 모든 민족들을 뒤흔들리니 모든 민족들의 보화가 이리 들어오리라. 그리하여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은도 나의 것, 금도 나의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이 집의 새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이곳에 평화를 주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당신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2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면 무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런저런 궁색한 대답은 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대답은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질문이 어려우면 스스로 “나는 나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어 보면 어떨지요? 이것 또한 이런저런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수록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것이 진정 나인가 다시 물으면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이렇게 자신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날마다 눈 뜨고 살아 있는 내 자신도 모르는데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쭈어 보면 어떨지요? 그것 또한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실지 이것저것 추측해 볼 수 있지만, 나에게 깊이 와 닿는 진정한 대답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질문은 사실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누구이신지를 깨달으면,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고, 내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를 알면 주님도 누구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그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으면 다른 두 가지 대답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안고 사는 이런 근원적인 물음은 어느 날 한 순간 은총으로 깨달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화두처럼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물음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물음에 대한 온전한 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 안에 해답이 있다고 하듯, 이런 물음을 안고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삶 깊은 곳에 답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라고 하셨지요. 우리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 온전히 드러나는 날,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뵙게 됩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는 물음 속에 하느님 얼굴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사람의 아들 / 갓등2집-아멘
    
    
    

  2. guest 님의 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이십니다(베드로사도)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제가 아쉽고 필요할 때는 하느님!
    제가 즐겁고 기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분은 하느님이 아님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원망을 하게 되는 분 역시 하느님(헬레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하신말씀에
    저의 마음은 언제나 당신이 제일 먼저가 아님을 고백 합니다
    입으로만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
    당신은 저에게 있어 힘들고 어려울 때 원망의 대상이시며
    즐겁고 기쁠 때는 당신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저는 당신을 믿은 것이 아니라 당신의 능력만을 믿으며 저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며 저에게 도움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원망만을 했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도…….
    당신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저에게 사랑을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주시는 당신께 감사드리며 이기적인 제 자신이
    당신의 깊은사랑을 깨달아 베드로사도처럼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다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을 갖으며 오늘하루도 당신의 사랑 안에
    기쁘고 행복한 헬레나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만 주시는 바보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저에 대한 당신의 사랑 또한 변함없으시기를 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1서 4,8)
    사랑밖에 모르시는 하느님!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 하신하느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묵상하며


    ♬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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