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위령의 날 – 첫 미사(11/02)


    위령의 날은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날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오늘 세 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해 왔다. 이 특전은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욥은 친구들의 몰이해 속에 고통을 겪으며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받아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 계신 주님을 깨닫고 구원자이신 그분을 뵙기를 갈망한다(제1독서). 희망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근거이다. 신앙인은 이루어질 구원의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희망하는 바를 믿는 것은 이미 삶 속에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다(제2독서). 우리 삶 속에는 참된 행복이 숨어 있다. 가난해도, 슬픔 속에서도, 때로는 온갖 박해와 고통 속에서도 하늘 나라의 참된 행복은 그 안에 있다. 그 행복을 깨닫고 사는 사람은 하늘 나라를 이미 사는 사람이다(복음).
    제1독서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 욥기의 말씀입니다. 19,1.23-27ㄴ 욥이 말을 받았다.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주었으면!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5-11 형제 여러분,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저울에 행복을 달면 /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 불행 49% 행복 51%면 /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 행복의 조건엔 /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 …… // 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 / 또 불행하게 합니다. / 나는 오늘 그 1%를 /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놓았습니다. /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행복하다고 ……. 이해인 수녀님의 “1%의 행복”이라는 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의 무게를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기울기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삶이라는 것이 온전히 행복할 수도 그렇다고 온전히 불행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다고 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말 못할 슬픔이 잠겨 있고,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희열과 행복이 감추어 있습니다. 사실 행복과 불행은 우리 마음이 어디에 기울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영성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야 하는 신앙인은 늘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걷는 사람입니다. 1%의 차이가 우리의 모습을 다르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 말은 성과 속의 저울 양편에 놓인 우리 마음처럼 1%만 더 주님께 관심을 기울여도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인의 삶에는 가난해도, 슬퍼도, 때로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세상이 주는 행복과 다른 행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 역시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서 1%의 마음 기울기에 달려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기억하소서(Call to remembra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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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위령의 날 – 첫 미사(11/02)


      위령의 날은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날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오늘 세 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해 왔다. 이 특전은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욥은 친구들의 몰이해 속에 고통을 겪으며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받아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 계신 주님을 깨닫고 구원자이신 그분을 뵙기를 갈망한다(제1독서). 희망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근거이다. 신앙인은 이루어질 구원의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희망하는 바를 믿는 것은 이미 삶 속에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다(제2독서). 우리 삶 속에는 참된 행복이 숨어 있다. 가난해도, 슬픔 속에서도, 때로는 온갖 박해와 고통 속에서도 하늘 나라의 참된 행복은 그 안에 있다. 그 행복을 깨닫고 사는 사람은 하늘 나라를 이미 사는 사람이다(복음).
      제1독서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 욥기의 말씀입니다. 19,1.23-27ㄴ 욥이 말을 받았다.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주었으면!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5-11 형제 여러분,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저울에 행복을 달면 /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 불행 49% 행복 51%면 /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 행복의 조건엔 /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 …… // 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 / 또 불행하게 합니다. / 나는 오늘 그 1%를 /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놓았습니다. /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행복하다고 ……. 이해인 수녀님의 “1%의 행복”이라는 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의 무게를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기울기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삶이라는 것이 온전히 행복할 수도 그렇다고 온전히 불행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다고 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말 못할 슬픔이 잠겨 있고,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희열과 행복이 감추어 있습니다. 사실 행복과 불행은 우리 마음이 어디에 기울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영성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야 하는 신앙인은 늘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걷는 사람입니다. 1%의 차이가 우리의 모습을 다르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 말은 성과 속의 저울 양편에 놓인 우리 마음처럼 1%만 더 주님께 관심을 기울여도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인의 삶에는 가난해도, 슬퍼도, 때로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세상이 주는 행복과 다른 행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 역시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서 1%의 마음 기울기에 달려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기억하소서(Call to remembrance )
    
    
    

  2. guest 님의 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며칠 전 친구와 함께 성당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성체조배가하고 싶어 성당에
    들어가 친구와 함께 성체조배를 하는데 자꾸만 분심이 들고 기도가 잘 되지 않아
    멍하니 앉아있는 자신 과는 달리 열심히 조배를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자신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자들이나 외인들에게 하느님을 믿는 사람임을
    자랑으로 여기며 앵무새처럼 지껄였던 입인데 수님을 바라보면서 제대로 된
    기도한번 하지 못하고 옆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친구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위선적인 사람이었는지를 …….

    그런데….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체조배를 했던 그날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성체조배를 하면서 예수님께 무슨 말씀을 드렸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묵상 하면서 자꾸만 성체조배 했던 일이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당신께 성체조배를
    자주 하라는 예수님의 암시 같기도 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 성서말씀이 저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보니 어제와 같은
    복음말씀이라 묵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자신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제하고 오늘 같은 복음말씀을 접하는데도 하루사이에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다는 사실에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니 복음묵상의 매력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쁘기도 합니다

    위령의 날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며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영성체송에서 했던 이 말씀을 깊이 새기며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그 분의 뜻을 따라 사는 신앙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묵상하며

    좋은하루 되세요


    ♬ 기억하소서(Call to remembra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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