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연중 제32주일(11/06)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리석은 처녀는 과거에 매여 있고 미래에 대하여 걱정만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는 현재에 충실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만이 하늘 나라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순간순간이 주님께서 오시는 시간이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날입니다. 우리 삶에서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만날 수 있는 지혜를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지혜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 있다. 이것을 발견하고 깨닫고자 갈망하고 찾아 나서는 사람만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충만한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머무는 자리이다(제1독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고 죽음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는다. 곧 믿는 이들은 살아서도 주님과 떼어 놓을 수 없지만 죽음도 떼어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죽음이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신다(제2독서). 슬기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준비하고 깨어 있는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의 차이다. 과거에 매달리는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 깨어 있음이 아니다. 늘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깨어 있는 삶이다(복음).
    제1독서
    <지혜를 찾는 이들은 그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6,12-16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4,13-18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정교회 신학자 에프도키모프는 그의 책 『영적 삶의 나이』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현대인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멀리 달아나려고 합니다. 그의 정신은 시간을 죽이는 법을 개발하는 데 활용됩니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공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추상적으로 환치된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성으로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영원성은 오로지 현재에 맞닿아 있고 온전히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사람에게 그 영원성을 줍니다. 영원성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과 영원한 현재의 이미지 가운데 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구엔 반 투안,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에서 재인용). 깨어 있음은 막연하게 미래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매달리는 것도 아닙니다. 일상의 순간순간을 봉헌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대 신학자 칼 라너는 우리의 일상 안에 하느님의 ‘무언의 신비’가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일도 참으로 인간다운 삶의 본질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영원한 ‘하느님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하는 순간도, 가정에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순간도 하느님의 숨은 은총이 드러나고 우리 삶의 본질을 구현하는 시간입니다. 일상에서 싫지만 해야 하고, 피하고 싶지만 겪어야 하는 일들이 사실은 소중한 봉헌 행위이며 하느님의 현존과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는 주어진 현재를 하느님의 시간으로 여기며,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지만, 미련한 처녀는 자신의 과거나 미래에만 매달려서 현재를 소모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현재만이 하느님의 영원성에 가 닿아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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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32주일(11/06)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리석은 처녀는 과거에 매여 있고 미래에 대하여 걱정만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는 현재에 충실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만이 하늘 나라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순간순간이 주님께서 오시는 시간이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날입니다. 우리 삶에서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만날 수 있는 지혜를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지혜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 있다. 이것을 발견하고 깨닫고자 갈망하고 찾아 나서는 사람만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충만한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머무는 자리이다(제1독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고 죽음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는다. 곧 믿는 이들은 살아서도 주님과 떼어 놓을 수 없지만 죽음도 떼어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죽음이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신다(제2독서). 슬기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준비하고 깨어 있는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의 차이다. 과거에 매달리는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 깨어 있음이 아니다. 늘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깨어 있는 삶이다(복음).
      제1독서
      <지혜를 찾는 이들은 그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6,12-16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4,13-18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정교회 신학자 에프도키모프는 그의 책 『영적 삶의 나이』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현대인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멀리 달아나려고 합니다. 그의 정신은 시간을 죽이는 법을 개발하는 데 활용됩니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공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추상적으로 환치된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성으로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영원성은 오로지 현재에 맞닿아 있고 온전히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사람에게 그 영원성을 줍니다. 영원성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과 영원한 현재의 이미지 가운데 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구엔 반 투안,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에서 재인용). 깨어 있음은 막연하게 미래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매달리는 것도 아닙니다. 일상의 순간순간을 봉헌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대 신학자 칼 라너는 우리의 일상 안에 하느님의 ‘무언의 신비’가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일도 참으로 인간다운 삶의 본질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영원한 ‘하느님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하는 순간도, 가정에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순간도 하느님의 숨은 은총이 드러나고 우리 삶의 본질을 구현하는 시간입니다. 일상에서 싫지만 해야 하고, 피하고 싶지만 겪어야 하는 일들이 사실은 소중한 봉헌 행위이며 하느님의 현존과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는 주어진 현재를 하느님의 시간으로 여기며,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지만, 미련한 처녀는 자신의 과거나 미래에만 매달려서 현재를 소모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현재만이 하느님의 영원성에 가 닿아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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