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사순 제4주간 토요일(3/24)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려고 할 때에는 많은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주님의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제1독서). 예수님에 대하여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최고 의회 의원들과 바리사이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성전 경비병들과 니코데모 같은 사람들이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도 믿지 않고, 오직 그분의 출신과 율법으로만 예수님을 판단한다(복음).
    제 1독서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1,18-20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40-53 그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인 반응은 다양합니다. 예수님을 예언자요 메시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같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단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집과 인습의 사슬에 꼭 매여서 오직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만을 고집하는 자들입니다. 평소 좋아하던 구상(具常) 선생의 ‘은총에 눈을 뜨니’라는 시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제사 비로소/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을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 만상이/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 강아지는 태어난 지 보름이 되면 눈을 뜬다고 합니다. 구상 시인은, 이제 막 눈을 뜬 강아지만큼만이라도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인다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보화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히면 눈이 멀고, 따라서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눈에 보이는 사물에만 집착하지 않고 믿음과 사랑이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이 달라 보이니 모든 일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 모니카

♬ O Domine Jesu Chri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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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4주간 토요일(3/24)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려고 할 때에는 많은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주님의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제1독서). 예수님에 대하여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최고 의회 의원들과 바리사이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성전 경비병들과 니코데모 같은 사람들이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도 믿지 않고, 오직 그분의 출신과 율법으로만 예수님을 판단한다(복음).
      제 1독서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1,18-20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40-53 그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인 반응은 다양합니다. 예수님을 예언자요 메시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같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단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집과 인습의 사슬에 꼭 매여서 오직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만을 고집하는 자들입니다. 평소 좋아하던 구상(具常) 선생의 ‘은총에 눈을 뜨니’라는 시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제사 비로소/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을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 만상이/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 강아지는 태어난 지 보름이 되면 눈을 뜬다고 합니다. 구상 시인은, 이제 막 눈을 뜬 강아지만큼만이라도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인다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보화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히면 눈이 멀고, 따라서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눈에 보이는 사물에만 집착하지 않고 믿음과 사랑이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이 달라 보이니 모든 일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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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 Domine Jesu Christe
      
    
    

  2. 저녁노을 님의 말: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이 빠를 수록 그분과의 일치가 이루는 시간이 빨라지고
    나의 주변은 그만큼 빨리 하느님나라가 되겠지요.
    오늘 내가 가꾸어 갈 하느님나라를 생각하며 자신을 다독입니다.
    촉촉히 적시는 단비처럼 내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말씀으로
    만나야 할 이웃들과의 시간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오늘은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셀 기도모임에 갑니다.
    잘해야한다는 생각이 앞서 늘 하느님의 뜻을 거스렸던 지난 날들의 보속으로
    오늘은 더 많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다가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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