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부활 제2주간 목요일(4/19)


    말씀의 초대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자신들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불안해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부활과 성령을 체험한 사도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소 하느님께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영원하신 하느님을 증언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복음).
    제 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며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6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에게 당신을 세상에 알리도록 모든 권한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인간이 아드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아드님을 믿어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드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진노를 사서 영원한 생명에서 배제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믿음과 불신,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결단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 해야 할 결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 집 문 앞에 서시어 결단의 문을 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묵시 3,20). 신학자 파울 틸리히는 믿음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라면 믿음에 왜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을까? 하느님 사랑의 깊이는 우리 인간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끝을 모르는 사랑의 심연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하느님 사랑의 심연에 완전히 뛰어내리려면 용기, 곧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기서’ 내리는 결단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 모니카

♬ 하늘영광 땅을 덮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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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부활 제2주간 목요일(4/19)


      말씀의 초대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자신들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불안해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부활과 성령을 체험한 사도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소 하느님께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영원하신 하느님을 증언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복음).
      제 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며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6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에게 당신을 세상에 알리도록 모든 권한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인간이 아드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아드님을 믿어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드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진노를 사서 영원한 생명에서 배제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믿음과 불신,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결단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 해야 할 결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 집 문 앞에 서시어 결단의 문을 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묵시 3,20). 신학자 파울 틸리히는 믿음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라면 믿음에 왜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을까? 하느님 사랑의 깊이는 우리 인간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끝을 모르는 사랑의 심연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하느님 사랑의 심연에 완전히 뛰어내리려면 용기, 곧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기서’ 내리는 결단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 모니카
    
    ♬ 하늘영광 땅을 덮으리
      
    
    

  2. 저녁노을 님의 말:

    자유로워진다는 것…
    어둡고 긴 동굴에서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을 따라 힘겹게 빠져 나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거미줄에 걸리고 얼굴과 몸에 상처를 입으며 겨우 올라갔는데
    희미한 불빛은 또 다른 구릉 넘어에 있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요즘 나는 동굴 밖의 아름다운 정원에 나와 있는 모습을 봅니다.
    예쁜 잔디에서 따스한 햇살아래 벌나비와 꽃들에 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물에 비친 나의 모습은 좋아만 할것은 아님을 봅니다.
    굴속을 지내오면서 (그 세월을 겪어내면서) 묻어 굳어 버린 딱지들,
    여기저기 생긴 상채기들을 어루만지며
    거룩함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 살기에 맞갖은 모습이 되려고 노력한답니다.

    제가 선택한 삶은 가난하고 굴욕적인 시간들이었으나 영혼은 늘 자유로웠고,
    주님만은 내편이라는 강한 믿음이 솟구치면서 늘 예수님 생각하며
    힘든 일들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것은 예수님 생각하며 일하며 빚을 갚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내 잘못으로 인한 보속을 치루는 동안 아이들은 주님이 맡아 키워 주셨습니다.
    잘 자라 주었고 지금은 사회인이되어 좋은 직장에 예쁜 각시얻어 신자가정을 이루고 잘살고 있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남편도 복직하여 늦은 나이임에도 현직에 있으며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느님께 맡기는(순종하는)것 정말 복음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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