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팟 주교는 1580년 무렵 우크라이나의 동방 교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뛰어난 상인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장사보다는 영혼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수도원장까지 맡아 수도회 개혁을 주도하였다.
주교가 된 그는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가
1623년 이교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1867년 비오 9세 교황이 요사팟 주교를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믿음의 아들인 티토에게 편지로 인사하면서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언급한다.
교회의 지도자는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을 죄짓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누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그가 회개하면 용서해 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원로들을 임명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시작입니다. 1,1-9
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으로,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제때에 복음 선포를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드러내셨습니다.
나는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선포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러한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까닭은,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로는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자녀들도 신자이어야 하고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실 감독은 하느님의 관리인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나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손님을 잘 대접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자제력이 있으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가르침으로 남을 격려할 수도 있고
반대자들을 꾸짖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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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11/12)
요사팟 주교는 1580년 무렵 우크라이나의 동방 교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뛰어난 상인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장사보다는 영혼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수도원장까지 맡아 수도회 개혁을 주도하였다. 주교가 된 그는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가 1623년 이교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1867년 비오 9세 교황이 요사팟 주교를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믿음의 아들인 티토에게 편지로 인사하면서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언급한다. 교회의 지도자는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을 죄짓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누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그가 회개하면 용서해 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원로들을 임명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시작입니다. 1,1-9 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으로,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제때에 복음 선포를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드러내셨습니다. 나는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선포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러한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까닭은,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로는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자녀들도 신자이어야 하고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실 감독은 하느님의 관리인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나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손님을 잘 대접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자제력이 있으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가르침으로 남을 격려할 수도 있고 반대자들을 꾸짖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물질주의가 만연된 이 시대에 영적인 벗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 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힘들지만 다른 이에게 영적인 벗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친구를 얻으려면 먼저 내 자신이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이 자기의 벗이 될 만한지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좋은 친구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충고입니다. 그는 우정을 이야기하면서 우정의 조건은 ‘유사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대개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립니다. 자기 자신이 덕이 있고 선량하면 주변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입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빠른 것이 느린 것이고, 느린 것이 빠른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익이나 쾌락에 끌려 빨리 친해진 관계는 오래가지 않지만 선(善)과 덕(德)으로 맺어진 사이는 세월이 흘러도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남에게 영적인 벗이 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친구는 나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친구와 영적인 우정을 맺고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의 노력과 선한 행동으로 친구의 얼굴에서 웃음을 발견하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는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에게 겨자씨 한알만큼의 믿음이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져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말씀을 실천 할수 있을텐데...
참 어렵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는 까닭은 저에게 겨자씨 한알만큼의 믿음이 없다는 이유이지요
믿음이 없으니 남을 용서한다는 것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잘잘못을 따지고 단죄하고 뭐 그런 것은 얼마든지 ...
아마 저의 전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참 구제불능이지요
당신을 믿는다고 떠들어대면서
입으로만 언제나 입으로만 이지요
행동으로는 용서도 겨자씨 한알만큼의 믿음도...
저에게는 없음을 고백합니다
믿음이 없으니 사랑도 용서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당신을 원망하고 저에게만 사랑을 주시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고 심술도 부리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사랑을 용서를 떠들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박애주의자인 것처럼...
사랑이 많은 신앙인인 척
척 척 척!
참 많은 “척”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
사랑이 없으면서 있는 척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용서도 믿음도 사랑도 없는데 있는 척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에게는 사랑도 믿음도 용서도 애저녁에 할 마음조차
없는지도 모릅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니 고민하는 척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새기며
이제부터라도 저도 신앙인인 척하며 당신을 속이고
사람들을 속이고 저 자신마저 속이며 광대처럼 살아 온
삶을 반성하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힘들지라도
노력하며 당신께서 도와주신다는 믿음으로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신앙가 헬레나가 아닌 복음을 실천하며 사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아니!
실천을 해야 겠다고 언제부터?
바로 오늘부터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부터...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
당신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세상에 빛을 내며,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켜라.
아멘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묵상하며
♬ 믿음으로 간청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