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 날)](2/02)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예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한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6세기에는 시리아에서 이 축일이 거행되었고, 로마는 7세기 후반에 이를 받아들였다. 8세기 중반에는 ‘성모 취결례(정화) 축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18세기 프랑스 전례에서 ‘주님 봉헌’으로 바뀌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교황청 수도회성은 해마다 맞이하는 이 봉헌 생활의 날에 모든 신자가 수도 성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찾아오신다. 마치 불이 은과 금을 순수하게 하고, 잿물이 옷을 깨끗하게 하듯, 이스라엘의 사제직을 정화시키시려는 것이다(제1독서). 이스라엘에는 하느님 차지인 첫아들을 부모가 사서 기른다는 뜻에서 성전 비용을 바치는 속량법이 있었다(탈출 13,2-5 참조). 이에 따라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다. 그런데 그들은 성전에서 시메온의 예언을 통하여 아들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차지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들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로 봉헌되신다는 점을 깨닫는다(복음).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또는 히브 2,14-18>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32 짧은 독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며 ‘봉헌’의 의미를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때에 하신 말씀을 통해 묵상해 봅니다. 첫 번째로 새길 말씀은 수난 전날 밤의 기도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봉헌이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 새길 말씀은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기도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봉헌은 자기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넘어 원수처럼 여겨지는 이들까지도 봉헌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도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기도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34) 봉헌은 자신의 좋은 점이나 뛰어난 점뿐만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분노, 미움, 슬픔, 하느님에게서 느끼는 소외감 등 어둡고, 약하고, 고통스러운 부분까지도 바치는 것입니다. 네 번째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봉헌이란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새길 말씀은 앞의 네 가지 말씀을 통해 드러난 봉헌의 삶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신 내용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미사 자체가 봉헌이며, 주님 봉헌은 오늘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요컨대, 봉헌이란 미사를 원동력으로 삼아 ① 하느님의 뜻에 따라, ② 사람들을 위하여, ③ 자신의 어두운 부분까지 포함하여, ④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기 때부터 예수님께 주어지신 봉헌의 삶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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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 날)](2/02)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예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한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6세기에는 시리아에서 이 축일이 거행되었고, 로마는 7세기 후반에 이를 받아들였다. 8세기 중반에는 ‘성모 취결례(정화) 축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18세기 프랑스 전례에서 ‘주님 봉헌’으로 바뀌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교황청 수도회성은 해마다 맞이하는 이 봉헌 생활의 날에 모든 신자가 수도 성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찾아오신다. 마치 불이 은과 금을 순수하게 하고, 잿물이 옷을 깨끗하게 하듯, 이스라엘의 사제직을 정화시키시려는 것이다(제1독서). 이스라엘에는 하느님 차지인 첫아들을 부모가 사서 기른다는 뜻에서 성전 비용을 바치는 속량법이 있었다(탈출 13,2-5 참조). 이에 따라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다. 그런데 그들은 성전에서 시메온의 예언을 통하여 아들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차지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들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로 봉헌되신다는 점을 깨닫는다(복음).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또는 히브 2,14-18>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32 짧은 독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며 ‘봉헌’의 의미를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때에 하신 말씀을 통해 묵상해 봅니다. 첫 번째로 새길 말씀은 수난 전날 밤의 기도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봉헌이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 새길 말씀은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기도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봉헌은 자기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넘어 원수처럼 여겨지는 이들까지도 봉헌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도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기도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34) 봉헌은 자신의 좋은 점이나 뛰어난 점뿐만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분노, 미움, 슬픔, 하느님에게서 느끼는 소외감 등 어둡고, 약하고, 고통스러운 부분까지도 바치는 것입니다. 네 번째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봉헌이란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새길 말씀은 앞의 네 가지 말씀을 통해 드러난 봉헌의 삶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신 내용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미사 자체가 봉헌이며, 주님 봉헌은 오늘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요컨대, 봉헌이란 미사를 원동력으로 삼아 ① 하느님의 뜻에 따라, ② 사람들을 위하여, ③ 자신의 어두운 부분까지 포함하여, ④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기 때부터 예수님께 주어지신 봉헌의 삶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봉헌
    
    
    
    

  2. guest 님의 말: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주님!
    주님 봉헌축일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봉헌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웟습니다
    아니!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하며 살았습니다
    외인들보다 교우들보다 어느 누구보다 더...
    갖고 싶었습니다
    베푸는 삶을 살기보다 받고 싶고 ...
    받는 것에 익숙해있어 죄책감도 들지 않았지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어쩌다 선행(자칭)을 했다고
    생각하면 자랑하고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으로 똘똘뭉친
    삶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베풀지 못하면서 남들을 평가하고 단죄하고
    시쳇말로 제가 하면 로맨스고 남들이 하면 스캔들이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베푸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생각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을 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받기보다는 주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나눔을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짐해봅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묵상하며

    ♬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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