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사순 제3주간 토요일(3/09)


    말씀의 초대
    호세아 예언자가 백성을 다그치며 주님께 돌아가라고 호소한다. 이는 단순히 희생 제물이나 번제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느님에 대한 신의와 그분을 아는 예지를 갖추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두 사람의 기도를 소개하신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의인으로 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주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는 반면, 세리는 하늘을 향해 감히 눈을 들지도 못한 채 죄인인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십사고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6,1-6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9-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는 나무랄 데 없는 신앙생활을 하였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자신에 대해 만족하며 죄인과 다르게 살 수 있었음에 하느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 반면, 세리는 언제나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았고, 그러한 자신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가 아닌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바리사이가 의인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여기시는 것일까요? 한 유다 청년이 율법 학자에게 자랑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는 『탈무드』를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사실 유다교 경전인 『탈무드』는 그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에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율법 학자는 이에 감탄하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그대가 『탈무드』를 세 번이나 읽었다고? 그러면 『탈무드』는 그대를 몇 번이나 읽었는가?” 청년은 이 말에 크게 깨닫고 돌아갔습니다. 바리사이가 기도한 대로 강도 짓도, 불의도, 간음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그를 의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일주일에 단식을 두 번이나 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쳤다고만 해서 의로운 것도 아닙니다. 의로움이란 하느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헤아리시고 변화시키시도록 자기 자신을 그분께 겸손하게 내어 드리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위대한 일을 하여도 의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 스스로 의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Ostende nobis 주님 당신의 자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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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3주간 토요일(3/09)


      말씀의 초대
      호세아 예언자가 백성을 다그치며 주님께 돌아가라고 호소한다. 이는 단순히 희생 제물이나 번제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느님에 대한 신의와 그분을 아는 예지를 갖추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두 사람의 기도를 소개하신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의인으로 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주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는 반면, 세리는 하늘을 향해 감히 눈을 들지도 못한 채 죄인인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십사고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6,1-6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9-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는 나무랄 데 없는 신앙생활을 하였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자신에 대해 만족하며 죄인과 다르게 살 수 있었음에 하느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 반면, 세리는 언제나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았고, 그러한 자신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가 아닌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바리사이가 의인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여기시는 것일까요? 한 유다 청년이 율법 학자에게 자랑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는 『탈무드』를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사실 유다교 경전인 『탈무드』는 그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에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율법 학자는 이에 감탄하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그대가 『탈무드』를 세 번이나 읽었다고? 그러면 『탈무드』는 그대를 몇 번이나 읽었는가?” 청년은 이 말에 크게 깨닫고 돌아갔습니다. 바리사이가 기도한 대로 강도 짓도, 불의도, 간음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그를 의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일주일에 단식을 두 번이나 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쳤다고만 해서 의로운 것도 아닙니다. 의로움이란 하느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헤아리시고 변화시키시도록 자기 자신을 그분께 겸손하게 내어 드리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위대한 일을 하여도 의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 스스로 의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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