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4/11)


    스타니슬라오 성인은 1030년 무렵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한 뒤 주교가 된 그는 뛰어난 설교와 영적 지도로 많은 이를 하느님께 인도하였다. 스타니슬라오 주교는 크라쿠프의 교구장으로 활동하던 중 폴란드 국왕의 불의와 폭정을 꾸짖으며 그를 파문하였다. 이에 국왕은 스타니슬라오 주교에게 반역죄를 덮어씌워 1079년 4월 11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던 그를 성당에서 끌어내어 살해하였다. 1253년에 시성된 스타니슬라오 주교는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유다의 지도자들은 사도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증언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다(제1독서).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그러나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땅에 속한 것에만 관심을 두어 그분을 거부하며 영원한 생명도 얻지 못한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6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프랑스의 철학자 중에서 ‘사르트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신(神)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철학자이자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종교적 가르침이 없이도 인간은 충분히 선할 수 있다면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노년에 폐부종(肺浮腫)이라는 병으로 입원했습니다. 의사가 그에게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을 때, 그는 의사에게 욕을 하면서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마음의 평화를 잃은 채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언론 매체들은 ‘사르트르는 왜 그렇게 괴로워하며 죽어야만 했던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외쳤던 그의 말로가 왜 그토록 비참했던가?’ 하며 실망과 아쉬움의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독자 한 명이 신문에 이렇게 기고했다고 합니다. “사르트르는 분명 신앙인이 아니다. 그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르트르는 현실 세계에 대해서는 뛰어난 지성을 자랑하였지만, 하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의 증언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이 비참했던 것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도, 희망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 세상의 삶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하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소홀하지는 않습니까?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 사랑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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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4/11)


      스타니슬라오 성인은 1030년 무렵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한 뒤 주교가 된 그는 뛰어난 설교와 영적 지도로 많은 이를 하느님께 인도하였다. 스타니슬라오 주교는 크라쿠프의 교구장으로 활동하던 중 폴란드 국왕의 불의와 폭정을 꾸짖으며 그를 파문하였다. 이에 국왕은 스타니슬라오 주교에게 반역죄를 덮어씌워 1079년 4월 11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던 그를 성당에서 끌어내어 살해하였다. 1253년에 시성된 스타니슬라오 주교는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유다의 지도자들은 사도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증언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다(제1독서).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그러나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땅에 속한 것에만 관심을 두어 그분을 거부하며 영원한 생명도 얻지 못한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6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프랑스의 철학자 중에서 ‘사르트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신(神)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철학자이자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종교적 가르침이 없이도 인간은 충분히 선할 수 있다면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노년에 폐부종(肺浮腫)이라는 병으로 입원했습니다. 의사가 그에게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을 때, 그는 의사에게 욕을 하면서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마음의 평화를 잃은 채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언론 매체들은 ‘사르트르는 왜 그렇게 괴로워하며 죽어야만 했던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외쳤던 그의 말로가 왜 그토록 비참했던가?’ 하며 실망과 아쉬움의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독자 한 명이 신문에 이렇게 기고했다고 합니다. “사르트르는 분명 신앙인이 아니다. 그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르트르는 현실 세계에 대해서는 뛰어난 지성을 자랑하였지만, 하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의 증언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이 비참했던 것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도, 희망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 세상의 삶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하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소홀하지는 않습니까?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 사랑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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