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부활 제5주간 화요일(4/30)


    말씀의 초대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첫 번째 선교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활동 중에 유다인들의 주도로 군중의 돌에 맞아 죽을 위험까지 겪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여기며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한 가운데 자신들의 선교 활동을 완수하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시며 그들에게 평화를 남기신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달리 고난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고난을 이겨 내는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겁을 내서는 안 된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19-28 그 무렵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그런데 그다음 구절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시니,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입니까? 프란치스코 성인이 어느 날 우물에서 물을 긷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운 뒤 작은 나뭇조각을 물에 띄우고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물통에 나뭇조각을 띄우고 갑니까?” 하고 프란치스코가 묻자 그녀는 “물통이 흔들려도 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에서 성인은 ‘마음의 동요가 일 때,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띄우면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십자가를 전제로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고 하셨지만, 이후 제자들의 삶은 평화롭지 않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박해를 받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결코 평화롭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잃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평화를 위해서는 돈, 무기, 강력한 통치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화를 위해서는 오직 하나,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온갖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평화를 너에게 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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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5주간 화요일(4/30)


      말씀의 초대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첫 번째 선교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활동 중에 유다인들의 주도로 군중의 돌에 맞아 죽을 위험까지 겪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여기며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한 가운데 자신들의 선교 활동을 완수하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시며 그들에게 평화를 남기신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달리 고난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고난을 이겨 내는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겁을 내서는 안 된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19-28 그 무렵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그런데 그다음 구절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시니,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입니까? 프란치스코 성인이 어느 날 우물에서 물을 긷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운 뒤 작은 나뭇조각을 물에 띄우고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물통에 나뭇조각을 띄우고 갑니까?” 하고 프란치스코가 묻자 그녀는 “물통이 흔들려도 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에서 성인은 ‘마음의 동요가 일 때,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띄우면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십자가를 전제로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고 하셨지만, 이후 제자들의 삶은 평화롭지 않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박해를 받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결코 평화롭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잃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평화를 위해서는 돈, 무기, 강력한 통치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화를 위해서는 오직 하나,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온갖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평화를 너에게 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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