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노동자 성 요셉(5/01)


    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님의 양아버지이다. 목수 일을 한 성인은 오늘날 노동자의 수호자로 공경받고 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19 참조). 그는 꿈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아기 예수와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를 보호하려고 멀리 이집트까지 피해 갔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해마다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의 기념일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셉 성인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공경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그리고 사람에게 모든 피조물을 맡기시며 복을 내리셨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사람들을 가르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편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너희는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26─2,3<또는 콜로 3,14-15.17.23-24>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격이 조금 급한 선배 사제가 본당에서 겪었던 일 가운데 하나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편견과 오해에서 빚어진 잘못을 겸손하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본당 수녀님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스스로 강론 시간에 힘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 본당에는 미사 강론 때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귀를 기울이는 신자들과 달리, 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수녀님이 계셨답니다. 그 모습은 강론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아니면 강론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러한 수녀님의 모습이 눈에 띌 때마다 선배 사제의 마음은 좋지 않았고, 급기야 화까지 치밀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아 수녀님께 꼭 지적하리라고 마음먹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 강복을 위하여 들어갔다가 수녀님의 훈화를 듣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그날의 강론을 간추린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수녀님은 늘 그날의 강론을 요약하고 거기에 조금 보충한 내용으로 훈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수녀님이 강론 시간에 고개를 숙였던 것은 그 내용을 하나하나 받아 적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선배 사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작은 편견 하나가 다른 이의 좋은 점을 발견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한 편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회당에서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시지만 그들은 예수님 안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과 가문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참모습을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어떤 편견과 세속적인 기준에 사로잡혀 그들 안에 묻혀 있는 보물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목수의이야기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노동자 성 요셉(5/01)


      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님의 양아버지이다. 목수 일을 한 성인은 오늘날 노동자의 수호자로 공경받고 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19 참조). 그는 꿈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아기 예수와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를 보호하려고 멀리 이집트까지 피해 갔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해마다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의 기념일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셉 성인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공경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그리고 사람에게 모든 피조물을 맡기시며 복을 내리셨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사람들을 가르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편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너희는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26─2,3<또는 콜로 3,14-15.17.23-24>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격이 조금 급한 선배 사제가 본당에서 겪었던 일 가운데 하나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편견과 오해에서 빚어진 잘못을 겸손하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본당 수녀님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스스로 강론 시간에 힘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 본당에는 미사 강론 때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귀를 기울이는 신자들과 달리, 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수녀님이 계셨답니다. 그 모습은 강론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아니면 강론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러한 수녀님의 모습이 눈에 띌 때마다 선배 사제의 마음은 좋지 않았고, 급기야 화까지 치밀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아 수녀님께 꼭 지적하리라고 마음먹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 강복을 위하여 들어갔다가 수녀님의 훈화를 듣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그날의 강론을 간추린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수녀님은 늘 그날의 강론을 요약하고 거기에 조금 보충한 내용으로 훈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수녀님이 강론 시간에 고개를 숙였던 것은 그 내용을 하나하나 받아 적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선배 사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작은 편견 하나가 다른 이의 좋은 점을 발견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한 편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회당에서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시지만 그들은 예수님 안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과 가문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참모습을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어떤 편견과 세속적인 기준에 사로잡혀 그들 안에 묻혀 있는 보물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목수의이야기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